해방 이후 처음 찾아온 3·1절에 여학생들이 덕수궁에 모여서 부른 노래의 악보. 시간여행 제공
해방 이후 첫 3·1절에 불린 노래 악보가 나왔다. 1949년 총무처 공모에서 선정된 것으로 알려진 정인보 작사, 박태현 작곡의 현행 ‘3·1절 노래’보다 3년 빨라 해방 이후 처음으로 만들어진 3·1절 창작곡으로 추정된다.
근현대 생활유물 수집·연구가인 김영준 시간여행 대표는 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번에 발견된 A4 용지 8장짜리 ‘3·1 운동의 노래’ 악보는 자유신문사가 판매용으로 만든 것으로 판단된다. 인쇄 상태가 뚜렷해 내용이 잘 보인다”고 말했다. 이 노래는 역사소설가로 유명한 월탄 박종화가 작사하고, 경기고녀(경기여고의 옛 명칭) 음악교사였던 김순애가 작곡했다. 악보 표지에는 운보 김기창의 직인이 찍힌 삽화가 그려져 있고, 악보 7면에는 제작 연월일인 ‘1946.2.11’이란 숫자가 찍혀 있다. 뒤표지에는 임시 정가가 5엔으로 표기됐다. 김 대표는 “미군정 초기엔 원 대신 엔이 사용됐다”고 덧붙였다.
<자유신문>은 1945년 정인익이 창간한 일간지로, 한국전쟁 때 잠시 폐간됐다가 1961년까지 발행됐다. 김 대표는 “1946년 2월21일치 자유신문 기사를 보면 ‘본사에서 선정한 3·1 운동의 노래는 학무국에서도 이날 조선 각 학교에서 기념식을 거행할 때 부르도록 결정했다’고 설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1946년 3월2일치 신문은 해방 이후 첫 3·1절에 서울에서만 4곳에서 기념행사가 열렸다고 보도했는데 이 중 이승만 박사, 김구 선생 등이 참여한 보신각 행사가 끝난 뒤 오후 2시에 덕수궁에서 여고 연합 합창단이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고 말했다. 모두 3절로 이뤄진 노래는 후렴구가 “무궁화 핀 삼천만리 화려한 강산/ 민족은 영원히 멸치 않는다”이다. 김 대표는 “당시 라디오 방송에서 김순애 지휘에 맞춘 연합 합창단 노래가 3일간 15분씩 방송됐다고 해 방송국에 찾아봐 달라고 요청했는데 테이프를 찾진 못했다”고 전했다. 이 노래가 그동안 왜 알려지지 않았는지는 의문이다. 김 대표는 “자유신문사의 논조 및 역사와 연관 있어 보이는데 앞으로 더 밝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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