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습니다. 그리고 불안합니다. ”
27일 약 2년간의 공사 끝에 문을 여는 국립현대미술관의 4번째 분관 청주관에 대해 기자가 만난 미술관 사람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혈세 577억원이 들어간 청주관은 파격적인 시설이다. 대표적인 소장명품 4000여점과 정부미술은행 작품 1100여점을 보관, 전시하는 국립미술품수장보존센터이며, 관객이 관람할 수 있는 개방형 수장고도 국내 최초로 운영하게 된다. 그런데도 관계자들은 자괴감을 감추지 못했다. 수장고 항온항습 환경과 관리 매뉴얼 같은 미술관 건립의 기본 상식을 무시하고 작품 반입과 시설 설치를 함께 강행한 탓이다. 개관 몇일전까지 작품을 공사판 속에 방치해놓고 속도전으로 덜컥 개관한 사실이 양심에 찔린다는 고백이 이어졌다.
<한겨레>(20일치)는 공사현장의 소음, 흙먼지가 그대로 들어오고 출입통제도 전혀 안된 청주관 수장고의 상황을 보도했다. 그뒤 미술관은 뒤늦게 보안인력을 배치하고 수장고 문을 폐쇄하는 등 법석을 떨었다. 항온항습 관리가 미비한 상태에서 귀중한 수장품들을 보안장치 없이 마구잡이로 들여온 사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해명이 없었다. 26일 청주관을 언론에 내보이는 설명회를 앞두고 개관준비단 간부는 이날 아침 내부통신망에 공지를 돌렸다. ‘수장고 개방은 폭탄이다…2, 4층 수장고 기자 진입할까봐 걱정… ’‘억지로라도 폐쇄해서 진입 못하게…’
기자는 이날 설명회에 참석해 열흘 전까지 난장판이던 1~5층 수장고와 전시장, 계단, 통로 등을 둘러봤다. 내부는 ‘상전벽해’란 느낌이 들만큼 단장됐다. 뒤섞여 방치됐던 1층 소장품들은 수장고의 3층 전시용 선반과 특수좌대에 진열됐다. 수장고들은 상당수 잠긴 채 보안요원들이 배치됐고, 계단발판과 보도블록도 완비된 상태였다. “23일부터 성탄절까지 직원과 용역 인력을 무제한 투입해 청소작업을 하라는 지시가 떨어져 모두 정신이 없었다”는 게 내부 전언이다.
질의 시간에 수장고 항온항습 관리에 대해 설비를 담당한 외주업체 직원에게 물었다. “이달 1일부터 매일 공조시설을 가동했다”는 말이 돌아왔다. 1주일전 잠입 취재당시 목격한 수장고의 처참한 상황과는 동떨어진 답변이다. 규정에 따르면, 수장고는 온도 20+5도 습도 55+5%를 유지해야 한다. 항온항습 기록 정보를 달라고 요구했더니 관계자는 “아직 정리중이라 보여줄 수 없다”며 말끝을 흐리더니 덧붙였다. “공조기기를 가동하는 중에 물건(소장품과 설비)들이 계속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내부 공기가 빠져나가므로 정상적인 세팅(측정 관리)을 하지 못했습니다. 물건들이 다 들어오면 정상적으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언제 물건이 다 들어오나요?”
수장고 내부 공간이 다 정비되지 않았는데 작품을 계속 들이다보니, 제대로 된 항온항습 측정관리를 하지 못했다는 실토였다. 미술관 쪽은 담배공장을 리모델링한 청주관의 모델로 영국 런던의 옛 발전소를 재활용한 테이트모던과 스위스 바젤의 수장고 미술관 샤울라거를 연구했다고 홍보해왔다. 하지만, 두 명문 미술관은 건물 안의 수장고 환경에 대한 철저한 실험과 작품 분류 배치를 모두 검토해 시안을 완성한 뒤 수장품을 들였다.
부실 개관 논란의 배경에는 행정직 기획운영단장이 개관준비단 업무를 도맡아 총괄한 것도 지목된다. 학예실은 개관 전시와 수장고 전시 외엔 사실상 개관 준비 작업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일부 학예직이 단장 산하 운영팀에 들어가 전시 준비만 하고 미술관의 생명인 수장고 항온항습 관리에는 제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청주관의 학예 전시 책임자인 장엽 운영과장은 전시실·수장고의 내부 보존 환경, 설비상황 등에 대한 질문에 “개관전시와 개관 뒤 운영프로그램만 관할할 뿐 아는게 전혀 없다. 그건 기술팀 쪽에나 물어보라”고 했다. 분관장 도입 같은 미술관 직제개혁의 절실한 근거를 청주관의 개관사태가 드러낸 셈이다. 청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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