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축설계고옴에서 1등으로 당선된 유선엔지니어링의 작품. 국가보훈처.
지난달 설계공모 과정에서 ‘불공정’ 논란이 벌어졌던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하 기념관)에 대해 심사 결과를 무효로 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내려지면서 일단 법적 분쟁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념관 건립위원 중 일부가 절차에 문제제기를 하며 사퇴 의사를 밝히고 건립위원회도 당선작을 대폭 보완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7일 설계공모에 참여했던 건축사사무소 53427(소장 고기웅)이 심사 과정이 불공정했기 때문에 정부가 1등을 한 업체와 계약을 맺으면 안된다며 제기한 ‘임시지위보전과 계약체결및이행금지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건축사사무소 53427은 “설계심사 가이드라인과 같은 설계지침 등을 만드는 ‘기념관 건립사업 기본계획 수립용역’을 담당했던 유선엔지니어링이 설계공모에 참여해 최고 점수를 받은 것은 정당하지 않다”며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설계공모를 관리했던 조달청은 “국가계약법에 기본계획용역을 맡은 업체를 설계공모에 배제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며 절차에 흠결이 없다고 주장해왔고 재판부도 공모 참가 자격에 제한이 없다는 법 규정을 들어 조달청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하지만 국민을 대표해 사실상 ‘건축주’의 역할을 맡고 있는 기념관 건립위원회는 법적 판단과 별개로 당선작 원안 그대로 설계해선 안된다는 입장이다. 이종찬 건립위원장은 8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우리는 그동안 용역을 맡았던 유선엔지니어링은 공모 참여 자격이 없음을 조달청에 계속 전달해왔고 건립위원들 사이에서도 ‘당선작이 임정의 가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며 “심사 과정에 문제를 제기해온 건축 전문가들도 건립위원에서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등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우리는 당선작을 대폭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해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쪽에도 역량 있는 건축 전문가들을 건립위원으로 추가로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독립공원(서울 현저동)과 맞붙어 있는 현재 서대문구의회 자리에 지어지는 기념관은 올 4월에 착공 예정이었다.
건축계에선 ‘법적 규정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조달청의 주장을 놓고, ‘법의 사각지대’에 기대어 공정성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국제설계경기에선 설계공모 준비(preparation work of competition)에 참여했던 사람은 지원할 수 없도록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있다. 서울의 도시 공간에 대해 자문하는 김영준 서울총괄건축가는 “국제적 기준에 맞지 않을 뿐더러, 시험 출제자가 시험에 응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일 아니냐”며 “임정수립 100년 만에 지어지는 소중한 공간 설계가 이처럼 비상식적으로 진행되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 역시 조달청처럼 국가계약법 규정을 준수하고 있지만, 서울시에선 이제까지 기본계획을 세웠던 업체가 설계심사에서 당선된 적이 한번도 없다. 조달청은 최근 3년간 조달청이 10건의 설계심사를 진행했는데 이중 기본계획용역을 세운 업체가 당선된 것은 이번 기념관 건이 유일하다.
조달청 관계자는 “우리도 불공정 시비가 벌어질 요소가 있다고 판단돼 법 개정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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