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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도시·지역 재생 ‘함께’의 가치를 보다

등록 2019-01-20 08:34수정 2019-01-20 20:04

지역문화유산 활용 국제심포지엄

일 규슈, 방치된 이층집을 호텔로
‘농민과 협업’ 특산요리 레스토랑도
프랑스 리옹, 예술가·공무원 뭉쳐
텅 빈 도심을 보행 전용 공간으로

“지나친 관 주도·단기성과주의 한계
전문가·주민·공무원 머리 맞대야”
도시재생을 위한 역사자원으로 최근 재조명되고 있는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들. 일제강점기 소를 키우던 막사를 해방 뒤 개조해 국외 귀환동포와 전쟁 피난민의 주거시설로 재활용했다. 피란민의 주거역사를 지금가지 이어온 독특한 도시건축유산이다. 부산시 제공
도시재생을 위한 역사자원으로 최근 재조명되고 있는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들. 일제강점기 소를 키우던 막사를 해방 뒤 개조해 국외 귀환동포와 전쟁 피난민의 주거시설로 재활용했다. 피란민의 주거역사를 지금가지 이어온 독특한 도시건축유산이다. 부산시 제공
“우리 호텔에서 묵어보시겠습니까?”

엄숙한 학술대회장에서 일본의 젊은 교수는 나른한 웰빙영상을 틀면서 투숙을 권유했다. 발표자료로 틀어준 이 영상은 그가 일본 규슈 서쪽의 변방 고토섬에 제자들과 자스민 호텔을 차린 전말을 담은 다큐 기록물이었다.

지난 17일 낮 부산 동아대 부민 교정에서 열린 지역문화유산 개발·활용 국제심포지엄은 도쿠다 미츠히로 일본 규슈공업대 교수가 영상으로 발표한 지역 호텔 창업기가 참석자들 사이에 내내 화제가 됐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는 것 같다는 호평까지 나왔다. 도쿠다는 2017년부터 지역의 자연·역사 자원을 활용해 주민들에게 지속가능한 지역 재생을 안겨줄 수 있는 곳을 조사했다고 한다. 그 결과 고대 이래로 대륙과 서구의 숱한 문물들이 들어온 역사적 창구였던 규슈 서쪽의 고토섬을 점찍었다. 제자들과 사업팀을 꾸린 뒤 주민들과 논의해 섬에 빈 채 방치됐던 2층 집에 작은 호텔을 건립했다. 널찍한 웰빙 객실을 만들고 지역 농민들과 협력해 파프리카, 동백 등을 이용한 특산요리를 파는 레스토랑도 개업했다. 제자중 일부는 목수나 현지 직원이 되어 정착했고, 호텔은 주민들과 사업팀, 지역 전문가들이 수시로 만나 현안을 논의하는 사랑방이 됐다고 한다. 도쿠다 교수는 “지역재생의 핵심자원은 사람이다. 전문가, 주민이 함께 이야기하고 배우며 삶의 장소를 만들어내는 것”이라 했다.

지난 17일 낮 부산 동아대 부민교정에서 열린 국제학술심포지엄. 독일연구자 베네트 마부르거가 냉전시절 분단 베를린의 도시계획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노형석 기자
지난 17일 낮 부산 동아대 부민교정에서 열린 국제학술심포지엄. 독일연구자 베네트 마부르거가 냉전시절 분단 베를린의 도시계획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노형석 기자
동아대 인문역량강화사업단과 석당학술원 주최로 17~18일 열린 이번 학술행사에서는 독특한 국내외 도시재생, 지역재생 성과들이 줄줄이 펼쳐졌다. 이런 성과들에 얽힌 고민거리들을 전문가와 현장 기획자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이어졌다. 최근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목포 옛도심 투기 의혹’이 세간의 관심거리로 떠오른 터여서 근대건축유산의 재활용과 지역재생 등을 다룬 발표와 토론은 더욱 열기를 띠었다.

도쿠다 교수의 호텔실험처럼 전통과 자연 유산들을 활용한 일본 쪽의 현장 사례들이 우선 주목을 받았다. 오사카시립대학에서 온 코이케 시호코 교수는 오사카의 전통 연립주택인 나가야 가옥의 리노베이션 디자인과 일반 시민들에게 나가야 밀집지구의 가옥 안을 개방하는 오픈하우스 행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작은 딸림 정원과 연속적인 특유의 공간 지형을 갖춘 나가야 건축의 표준화를 통해 리노베이션 자체가 전통문화를 전승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짚었다. 국내 연구자들은 일본의 지역유산 재생 사례들이 국내와 비교해 크게 진일보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과정 자체에 학계와 주민, 기획자 등의 민간 주체들이 열정과 관심을 갖고 사업에 몰입하면서 교감을 모으는 과정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18일 부산 동아대 부민 교정에서 열린 국제학술심포지엄 둘쨋날 행사 모습. 프랑스등대협회의 뱅상 큐레이터가 유럽의 등대유산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노형석 기자
지난 18일 부산 동아대 부민 교정에서 열린 국제학술심포지엄 둘쨋날 행사 모습. 프랑스등대협회의 뱅상 큐레이터가 유럽의 등대유산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노형석 기자
프랑스 제2의 도시 리옹에서 90년대 이후 지속된 공공도시 재생 전략을 연구한 한지형 아주대 건축학과 교수의 발제도 인상적이었다. 인구증가와 도시영역 확대로 공백화된 도심을 보행 전용 공간으로 활성화시키기 위해 예술가, 디자이너, 건축가 등이 적극 개입해 도시 재생 계획의 바탕을 마련했다는 것이었다. 시청 등 중심 광장 바닥의 디자인과 지하 주차장의 공공예술, 밤의 빛의 축제 개념 등까지 먼저 예술가들이 기본 구상을 만들면 건축가와 도시계획가, 공무원들이 구체적인 실행안을 수년의 시간을 두고 치밀하게 만들었다는 한 교수의 설명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건축사가인 김종헌 배재대 교수는 도입 100년이 넘은 대표적인 해양건축유산인 팔미도, 가덕도 등지의 국내 근대 등대섬을 근대의 표상에서 케이팝 등 한국 특유의 대중문화를 세계로 전파시키는 ‘케이팝 아일랜드’로 새롭게 재생하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국내에서 최근 진행된 도시재생 사례들은 둘쨋날 건축가와 기획자, 연구자들 사이에 열띤 집중토론의 대상이 됐다. 일제강점기 소 키우던 우리를 전쟁 뒤 피난민촌으로 개조해 명맥을 잇다 최근 재생, 재개발을 놓고 진통을 빚고있는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 지난해 ‘한성 1918’이란 이름의 공공생활문화센터로 문을 연 부산 동광동 옛 한성은행 부산지점 건물, 50년 묵은 산복도로변 부산 좌천아파트 등을 놓고 지나친 관 주도와 문화적 상상력의 부족, 숙성할 논의 시간을 주지않는 단기 성과주의, 재정적 여건의 부실함 등 현장 기획자들의 생생한 고민과 지적, 하소연들이 쏟아져나왔다.

심포지엄 진행을 총괄한 김기수 동아대 건축과 교수는 “도시재생, 지역재생의 현안들에 대해 전문가, 주민, 공무원들이 각기 따로따로 영역과 책임을 분리해 바라보는 관행이 극복해야할 가장 큰 문제점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부산/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부산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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