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부터 지난 1월까지 진행된 국립현대미술관장 공모과정에서 최종 후보자 3명에 포함된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 재단 대표. 지난 12월 말 공모의 최종 검증 과정으로 치러진 고위공무원 역량평가를 유일하게 통과했다.
“명백히 절차상 잘못이 있습니다. 공모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점수가 다 드러났는데 입다물고 있다가 합격자는 놔두고 탈락자들은 재시험까지 치르게 해주다니요. 후진적이라고 봐요.”
지난해 10월부터 석달간 진행된 새 국립현대미술관장 공모에서 최종 후보자 세명에 포함됐던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 재단 대표(67·국립상하이미술대 교수)는 불편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후보자 3명이 지난 12월26일 마지막 검증단계로 치른 고위공무원 역량평가에서 유일하게 기준 점수를 넘겨 합격했으나, 관장으로 낙점받지 못했다. 역량평가는 정부기관에서 3급 이상 고위 공무원의 업무수행능력을 검증하는 제도다. 문체부는 이 역량 평가결과를 이 후보자의 관장 임명으로 마무리짓지 않고, 떨어졌던 두 후보자들(윤범모 동국대 석좌교수, 김홍희 전 서울시립미술관장)이 재시험을 치르도록 했다. 그뒤 두 후보자는 지난달 재시험을 통과했고, 문체부는 설 연휴를 앞둔 지난달 31일 윤범모 신임 관장을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도종환 장관이 애초 역량평가에서 탈락했던 윤씨를 신임 관장으로 낙점한 것이다. 윤 관장이 임명장을 받은 다음날인 2일 이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자신이 겪은 역량평가 과정의 전말과 생각을 털어놓았다.
“평가받아보니 쉽지않더군요. 평가 뒤 현장에서 우수통과자라고 바로 합격을 알려주더라구요. 2.5점 기준에 3.5 정도 점수가 나왔다고 기억합니다. 결과는 오늘 바로 문체부 인사계에 통보한다고 관계자가 말했어요. 다른 후보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몰랐지만요. 공식 합격통보는 그 결과가 문체부에 통보되고 한참 뒤인 1월중에야 왔습니다. 애초 유일하게 통과한 저를 관장 임명할지를 놓고 고민하다 재시험쪽으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공식통보가 늦어진 게 아닌가 짐작이 됩니다.”
이씨는 윤범모 관장을 광주 비엔날레 등에서 동고동락한 35년 친구이자 동료라고 했다. “임명 뒤 축하전화를 걸어 흔들리지 말고 가라고, 돕겠다고 격려해줬어요. 절차상 하자가 있으니, 뽑기를 잘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는 난처하더군요. 그래서 일체 외부 연락에는 응하지 않았어요. ”
공무원 인사 규정상 개방형 외부공모직 역량평가는 장관 재량으로 판단해 한차례 재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문체부 쪽은 “위법 소지는 없고 인사 재량권 안에서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역대 관장공모에서 역량평가에 합격한 후보를 제쳐두고 다른 탈락후보에게 재시험을 보게해서 관장을 맡긴 전례는 없다. 임명 직후부터 문체부가 윤 관장에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배경이다. 앞서 문체부는 12월초 최종 후보자가 확정된 뒤 역량평가 면제 방안을 인사혁신처와 협의하다 특정 후보 밀어주기 논란이 일자 철회하기도 했다.
“미술계 일각에서 코드 인사 운운하는데 아니라고 봐요. 절차를 잘못한거지요. 민간 개방형 임용 공모에서 재시험은 전례가 없는데, 심하게 무리한 것이죠. 문체부가 이렇게 일처리를 하니 해명조차 제대로 못하는 지경에 몰린 것 같습니다.”
이씨는 “윤 관장이 친구라 현재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최근 일부 관계자가 언론에 내가 개인적인 문제가 있어 관장 인선에서 제외했다는 등의 말을 흘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불쾌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윤범모 신임국립현대미술관장(왼쪽)이 지난 1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회의실에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뒤 함께 찍은 기념사진.
미술계에서는 이번 논란을 두고 관장 공모제 자체의 한계를 짚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직급이 문체부 2급 국장급에 불과하지만, 나라 미술을 대표하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연말 수장보존연구센터인 청주관 개관으로 아시아 굴지의 4관 체제 미술관으로 확대 개편되면서 국립현대미술관은 수장이 차관급인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청과 필적하는 조직 규모를 갖추게 됐다. 전문가들의 지원을 받아 역량평가 등으로 솎아낸다는 공모제 틀거지가 거대 미술관의 위상에 맞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용우씨는 “나이 칠십 가까운 전문가들 줄세워 시험치고 논란빚는 게 무슨 꼴인가. 제도 개선 측면에서 공모제는 없애야 하며, 공론화할 생각도 있다”고 밝혔다. 미술사가 최열씨도 “미술 분야 전문가를 뽑는데 행정관료 선발 잣대인 역량평가로 당락을 따지는 건 지엽말단적인 논란에 불과하다. 관장 직급을 차관급으로 높여 임명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자료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