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사정 지정이 예고된 만해 한용운의 거처 ‘심우장’. ㄱ자형의 팔작지붕 근대한옥이다.
서울 성북동 222-1번지, 삼청터널 올라가는 길목의 북정마을 아래 골짜기엔 햇볕 들지않는 항일지사의 옛집이 남아있다. 특이하게도, 정면이 북쪽을 향한 이 팔작지붕 기와집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로 참여했고, 시집 <님의 침묵>으로 알려진 만해 한용운(1879∼1944)의 거처 심우장(尋牛莊). 1933년 집터를 잡을 당시 서남쪽 방향의 총독부가 꼴보기 싫다며 반대인 동북쪽으로 틀어 지은 내력으로 유명하다. 44년 타계 때까지 그가 여생을 보낸 이 심우장이 국가사적으로 격이 높아진다.
문화재청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서울시 기념물인 ‘만해 한용운 심우장’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12일 밝혔다. 지정 대상은 99년 서울 성북구청이 매입한 정면 4칸, 측면 2칸의 ㄱ자모양 본채와 주변 구역 100여평이다. ‘심우(尋牛)’란 잃어버린 소를 찾는다는 뜻으로, 소를 사람에 비유해 ‘잃어버린 나’를 찾는 깨달음의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한용운은 나무를 다듬으며 심우당을 직접 공사해 지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도 만해가 거처하던 사랑방과 툇마루, 부엌, 찬방 등의 공간이 남아있다. 문화재청 쪽은 “전반적으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집 공간에서 민족지사, 문화계 인사들과 교류한 흔적들을 떠올려 볼 수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면서 “2017년 등록문화재가 된 경기도 구리의 한용운 묘소와 함께 항일독립운동 정신을 기릴 수 있는 뜻 깊은 장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성북구청은 심우장 일대를 복원·정비해 만해 기념공원으로 만드는 안을 추진중이어서 이번 사적 지정으로 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은 이와함께 1932년 1월8일 일본 도쿄에서 일왕 히로히토의 차에 폭탄을 던졌으나 실패하고 순국한 이봉창 의사(1900~1932)가 1931년 연말 작성한 선서문과 의건 관련 유물들도 문화재 등록을 예고했다. 예고된 유물들은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야…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서하나이다’는 내용의 국한문 선서문과 임시정부 지도자 백범 김구에게 의거자금을 요청한 친필 편지와 봉투, 의거자금 송금증서다. 선서문은 1931년 12월 13일 김구가 이 의사를 안중근 의사의 아우 안공근의 집으로 데려가서 선서식을 벌인 뒤 쓴 것으로 전해진다. 친필 편지와 봉투는 1931년 12월 24일 쓴 기록으로, 의거 실행을 ‘물품이 팔린다’는 말로 약속해 썼음을 알 수 있다. 또 송금증서는 그해 12월 28일 김구가 중국 상하이에서 도쿄에 있는 이 의사에게 의거자금 100엔을 보낸 증거자료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는 같은 해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일본군 장성들을 폭살한 상하이 의거의 기폭제가 됐던 사건으로 평가된다. 관련 유물들은 의거의 준비·전개 양상을 보여주는 이 의사의 유일한 유품들이란 점에서도 역사적 가치가 높다. 청 관계자는 “수년전부터 추진해온 근대 등록문화재 다변화 방침과 올해 3·1운동 100주년이란 시점이 맞물려 항일유산의 국가문화재 확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한용운 심우장과 이봉창 의사 관련 유물들은 앞으로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등록이 최종 확정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문화재청 제공
1932년 1월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졌던 이봉창 의사가 1931년 12월 백범 김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작성한 선서문. 문화재청은 이 선서문과 거사를 준비한 과정을 보여주는 관련 유물들의 문화재등록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