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오른쪽)·박은옥 부부가 7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린 데뷔 40돌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얘기하고 있다. 정태춘·박은옥 40 프로젝트 사업단 제공
“초등학교 때 처음 기타를 잡고, 바이올린을 배우고, 창작을 하면서 가수가 되어 상도 받았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마구 진행된 노래 인생을 살아왔지만, 주어진 환경 속에 열정을 다해 뛰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노래로 나의 존재와 실존적 고민, 세상에 관한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노래는 내 인생의 전부였습니다.”(정태춘)
“저는 40년 동안 목소리로 표현해왔습니다. 정태춘씨가 곡을 만들고 글 쓰는 걸 옆에서 보면서 부러웠습니다. 재능은 타고 나는 것이지,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란 걸 깨닫고 절망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음악 없는 삶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도 노래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박은옥)
자신의 삶에 있어 노래는 어떤 의미인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태춘·박은옥 부부는 이렇게 답했다. 7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린 데뷔 40돌 기념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다. 1978년 <시인의 마을>로 데뷔한 정씨와 이듬해 <회상>으로 데뷔한 박씨는 1980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박씨 데뷔 시점인 1979년을 기준 삼아 올해를 부부의 데뷔 40돌로 잡고 여러 기념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문화예술계 전반을 망라하는 144명이 ‘정태춘·박은옥 데뷔 4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꾸렸다.
정태춘씨가 7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린 데뷔 40돌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노래하고 있다. 정태춘·박은옥 40 프로젝트 사업단 제공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40이란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 모양새다. 정씨는 “이미 노래 창작을 접은 지 오래고 음악 시장에서 빠져나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40주년에 대한 특별한 소회는 없다. 다만 기념사업을 벌이며 만난 사람들과 팬들의 반응을 보면서 내 얘기를 오랫동안 진지하게 들어준 분들이 많구나 하는 점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씨도 “나는 숫자에 예민한 사람이 아니다”라면서도 “열심히 활동하지 않은 우리 두 사람을 기다려준 분들께 뭔가 선사해드리면 좋겠다, 40주년을 핑계로 공연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부부는 4~11월 제주, 서울, 부산 등 전국 15개 도시를 도는 순회공연 ‘날자, 오리배’를 펼친다. 또 4월께 40돌 기념 앨범 <사람들 2019>도 발표한다.
정씨의 빛나는 성취 중 하나는 가요 사전심의제 폐지다. 그는 7집 <아, 대한민국…>(1990)을 한국공연윤리위원회 사전심의를 받지 않은 채 ‘불법’으로 제작해 내놓았다. 이후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했고, 1996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받아냈다. 정씨는 “<아, 대한민국…>은 저항하는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이나 계획에서 나온 게 아니라 내 안의 분노에서 나온 앨범”이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방탄소년단 소속사의 방시혁 대표가 서울대 졸업 축사에서 ‘이렇게 되기까지 분노와 불평이 동력이 됐다’고 했다는 기사를 읽고 정태춘씨를 생각했다. 사전심의에 맞서 혼자 외롭게 싸운 6년간 정태춘씨가 가장 안돼 보이고 안쓰러워 보였다. 지금은 정태춘씨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은옥씨가 7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린 데뷔 40돌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얘기하고 있다. 정태춘·박은옥 40 프로젝트 사업단 제공
정씨는 10집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2002) 이후 더는 정식 앨범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박씨의 간청에 2012년 아내를 위해 만든 앨범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를 내긴 했지만, 기존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한다. 정씨는 “9집, 10집에 내 나름의 고민을 담았지만, 시장에서 반응이 없었다. 이제는 내 생각이 점점 더 깊어져 산업주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데, 그럴수록 대중 취향과는 더 멀어졌다. 그래서 요즘은 노래 대신 붓글로 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그는 붓글씨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붓글’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산업이 모든 걸 지배하는 데 반대하는 ‘반산’이라는 메시지를 붓글을 통해서도 강조하고 있다. 4월11~29일 서울 세종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다시, 건너간다’에서 그의 붓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정씨는 시장의 문제점을 힘주어 말했다. “이젠 시장이 모든 것을 장악했습니다. 시장에서 이윤이 발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깁니다. 40주년 기념사업을 계기로 모인 사람들끼리 시장 밖에서 뭔가를 만들어보자는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제 시장 메커니즘을 통하지 않고도 대중과 공유할 수 있는 예술문화, 시장 밖 예술이란 화두를 얘기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