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에서 죽어가던 주인공 버선발을 살린 할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거라는 게 모든 거짓의 뿌리요, 모든 거짓의 알짜(실체)’라구요. ‘내 거란 곧 거짓이요, 거짓은 썩물(부패)이요, 그리하여 그것은 곧 막심(폭력)이요, 따라서 그 막심은 바로 사갈(죄)’이라고 하죠. 바로 그 ‘내 거’라는 생각이 오늘날 자본주의의 뿌리인데, 그런 점에서 이번 책은 반인류·반생명적 자본주의 문명에 던지는 커다란 말뜸(화두)입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신작 <버선발 이야기>를 내고 13일 낮 서울 대학로의 한 찻집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버선발 이야기>는 머슴의 아들로 태어난 주인공 버선발(=벗은 발)이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그에 맞서 싸운다는 내용을 담은 이야기다. 설화적 형식 안에 민중 사상과 미학을 담았다. 버선발이 질문과 탐구, 경험과 모색을 거쳐 인간적 성숙을 이룬다는 점에서는 서양 문학의 주요한 갈래인 성장소설 또는 교양소설을 닮았다.
새 책 <버선발 이야기>를 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사진 가운데)이 13일 낮 서울 대학로의 한 찻집에서 기자들과 만나 책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이수호 민주노총 전 위원장, 오른쪽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다.
“버선발이 민중의 피눈물로 깨우친 ‘다슬’(깨달음)이 노나메기입니다.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벗나래(세상)를 만들자는 게 바로 노나메기거든요. 노나메기에는 민중의 생각, 민중의 삶, 민중의 예술, 민중의 사상, 민중의 꿈이 고대로 담겨 있습니다. 그 대목을 쓰면서 저는, ‘나는 늙어서 죽지만,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보다 더 멋진 깨우침이 어디 있겠냐구요.”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와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도 동석했다. 유 교수는 1970년대 초부터 이어져온 백 소장과 인연을 소개하며 “백 선생님의 여러 면모 중에서도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은 이분이 민족미학의 원형을 갖고 계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어른들한테 들은 이야기 속 민중의 용기와 희망을 놓치지 않고 이렇게 책으로 만들어 내놓으신 게 고맙다. 가히 인간문화재로 지정할 만하다”고 말했다.
백 소장의 다른 책들에서도 그렇지만 이 책에서도 그는 영어와 한자말, 외래어를 한마디도 쓰지 않았다. 흔히 쓰는 한자말들도 순우리말로 바꿔 쓰고 그 풀이를 본문과 말미에 붙였다. 새뚝이(주어진 판을 깨는 미적 전환의 계기), 모뽀리(합창), 괏따 소리(거짓을 깨뜨리고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는 소리) 같은 백 소장 특유의 미학 개념들도 만날 수 있다. “썰렁하게 빈 밭, 거기에 아무렇게나 쌓아둔 조짚 낟가리 같다고나 할까. 그렇게 납작납작 엎드린 집들이 즐비한 마을(…)”이라는 책 도입부에서 보듯 토속적 비유와 문체미가 읽는 맛을 더한다.
백 소장은 “어젯밤 이 책을 다 읽고 혼자서 울었다”며 “언젠가 기회가 되면 무대에서 버선발 이야기를 말림(=온몸으로 하는 공연)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기자간담회 진행을 맡은 송경동 시인은 “다음달 중에 독후감 공모전을 열고 출판기념회를 겸한 통일문제연구소 창립 50주년 기념식, 그리고 독자들과 만남 자리도 준비하고 있다”며 “박원순 서울시장, 심상정 의원,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명진 스님, 심재명 명필름 대표 등 여러분들이 <버선발 이야기> 읽기 운동 동참 의사를 밝혔다”고 소개했다.
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