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인형의 집, 파트2>에 출연하는 배우 손종학(왼쪽부터), 서이숙, 우미화, 박호산. 엘지아트센터 제공
1879년 초연된 헨리크 입센의 연극 <인형의 집>은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었다. 여성에게 선거권도 주지 않던 19세기에 남편과 세 아이를 두고 자아를 찾아 집을 떠나는 노라의 이야기는 사회에 충격을 줬다. 그렇게 떠난 노라는 어떻게 살았을까?
미국의 극작가 루커스 네이스는 <인형의 집, 파트 2>(2017)를 통해 15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노라를 그린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선보였던 연극으로, 새달 10~28일 서울 강남구 엘지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노라와 남편 토르발트 역은 요즘 방송과 영화 전방위에서 맹활약 중인 배우 서이숙(52)·우미화(45)·손종학(52)·박호산(47)이 맡았다. 20일 엘지아트센터에서 만난 네 명의 배우는 한목소리로 “원작이 여성의 이야기라면, 이 작품은 거기서 나아간 인간 대 인간의 소통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이야기는 여성과 사회에 관한 글을 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노라가 남편과의 이혼 절차를 마무리짓고자 집에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노라는 다시 만난 남편과 유모, 딸을 만나 설전을 벌이는데 각 인물의 상황이 모두 설득력이 있어 토론거리를 제공한다. 예컨대 집을 떠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던 노라와 달리 남편은 “같이 해결하는 것 대신, 당신은 도망갔다”고 비난한다.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고 원망하는 딸에게 노라는 “넌 내가 너한테 뭘 줬는지 모르고 있어. 왜냐하면 내가 널 위해 하려는 건, 널 위해 만들려고 하는 세상은 시작되지 않았거든” 하고 되받아치는 식이다. 우미화는 “희곡을 보면 무대가 원형극장 형태여도 된다고 쓰여 있다. 원형극장에서 (배우들과 관객들이) 토론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느낌이길 원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호산도 “대사의 스펙터클이 크다. 코믹한 상황도 있고. 가정이 있다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생각거리를 던져준다”고 했다.
<인형의 집, 파트 2>는 일방적으로 노라의 주장만을 담지 않고 각 인물의 상황을 개연성 있게 들려준다. 배우들도 대사를 읽으며 인물에 공감하는 바가 크다. “토르발트의 대사 중에 ‘정말 사는 게 어렵다’는 것이 있어요. 토르발트가 가장이란 굴레 때문에 눌러왔던 걸 표출할 때 저도 공감되더라고요.”(손종학) “두 자아가 만나서 하나의 자아로 합쳐지고, 서로의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노라와 토르발트는 끊임없이 대화하지만 해결은 안 되죠. 그러나 문제점을 이야기하며 서로 성장하는 느낌은 있어요.”(서이숙) “노라 대사 중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질문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대사가 있어요. 나 역시 사회, 관습, 규범 테두리에서 살아가면서 질문하고, 온전히 듣고 살아왔는지 생각하며 노라에 접근하고 있죠.”(우미화) “토르발트는 체계에 익숙해진 사람이에요. 아무 문제 없이 (모든 것이) 잘 굴러가고 있는데, 내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왜 노라는 다르게 생각하지라고 의아해하죠. 각자의 입장에서 맞는 부분들이 있어요.”(박호산)
돌아온 노라는 결국 다시 집을 나간다. 네이스가 펼친 원작의 15년 뒤 이야기에 배우들은 만족할까? “노라는 깨치고 돌아왔는데 다시 15년 전과 똑같이 논쟁을 벌여요. 네이스의 발상은 아름다운데 다음 단계에서 나아가지 못한 것 같아 좀 아쉽죠.”(서이숙) “집 떠난 노라 이야기가 몇 작품 더 있는데 그중에 성공한 노라를 그린 작품이 없는 거로 알아요. 그런데 이번 작품을 보면 유모가 멋지게 돌아온 노라를 보고 깜짝 놀라거든요. 집 떠난 노라가 고생만 했을 거라는 상상이 깨져서 재밌고, (관객들도) 궁금해했으면 좋겠어요.”(우미화)
이번 작품은 네 배우가 어떻게 짝을 이뤄 연기하느냐에 따라 네 가지 다른 작품이 나온다. 네 배우의 호흡은 어떨까? “손종학씨는 묵직하고, 박호산씨는 발랄하죠. 종학씨가 말이 느려 꽉 채워가는 느낌이 있는데 토르발트의 저런 면이 노라는 답답했겠구나 하다가 박호산씨의 재기발랄한 토르발트를 보면 노라는 자기가 보고 싶은 모습만 남편에게 봤구나 식으로 해석이 달라져요.”(서이숙) “두 노라도 느낌이 완전히 다르죠. 분명히 다른데 말로 설명하기가 힘드네. 하하.”(박호산)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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