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규슈섬 대도시 후쿠오카 교외에는 다자이후 덴만구(천만궁)라는 유명한 신사가 있다. 봄철이면 경내에 활짝 피는 매화와 현지에서 으뜸가는 입시기도처로 잘 알려져 한국 관광객들도 즐겨 찾는 명소다. 하지만 한·중·일 역사학계는 지난 100여년간 전혀 다른 이유로 이 신사를 줄곧 주목해왔다. 1917년 이 신사의 제사 일을 보는 관리가 집에 소장한 보물을 조사하던 중 발견된 7세기 중국 당나라 때의 희귀문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고대사 논란의 주된 소재로 등장하는 삼국시대 한반도의 지리 풍속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인용 출처로 언급되는 <한원>(翰苑) 필사본이 그것이다.
국내 학계에서 일본에 전해져온 <한원>의 한문 텍스트를 고증하고 내용을 우리말로 풀어 해설한 역주본이 처음 나왔다.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고중세사연구소(소장 이성제) 산하의 한원강독회 회원 연구자 20여명이 3년여간의 강독과 비교연구 끝에 출간한 <역주 한원>이다. 윤용구 인천도시공사 문화재부장과 안정준 서울시립대 교수, 김지영 숙명여대 강사, 정동준 성균관대 연구교수, 위가야 성대박물관 학예사 등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한원>은 당나라 시대 중국과 그 변방 지역에 거주하는 민족들의 지리·풍속 등을 정리한 백과사전 성격의 책이다. 당대 역사가 장초금(張楚金)이 660년께 편찬하고, 옹공예(雍公叡)가 주를 붙여 애초 30권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대부분 사라지고 한반도 삼국과 왜국, 그리고 흉노와 오환, 선비 등 북방 일대의 이민족을 다룬 ‘번이부’ 1권만 9~10세기 일본에 전해져 원본을 베낀 필사본으로 남아 전해졌다. 이 ‘번이부’는 고구려의 관등과 정치상황, 면직물 등의 생산기반, 압록강의 기원, 삼한의 위치, 백제의 연대 호칭 등 현전하는 다른 사서에는 없는 희귀한 기록이 다수 들어 있을 뿐 아니라, 지금은 사라져 이름만 남은 역사서들인 <위략> <고려기> 등이 인용 근거로 언급돼 한·중·일 고대사 연구에 소중한 기반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이번에 나온 역주본은 고대사 이해에 필수적인 문헌이지만, 내용 자체가 난해하고 오기도 적지 않아 풀어 쓰는 역주가 어렵기로 유명했던 <한원> ‘번이부’의 원문 내용을 샅샅이 뜯어보며 우리말로 풀어 옮기고 해설을 단 것이다. 일본에서는 1922년, 중국에서도 1934년 이미 영인·역주본이 나와 한국에서의 간행은 한참 뒤늦었으나, 국내 학계의 고대 동아시아사 연구를 위해 중요한 디딤돌을 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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