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간하면 병원 안 가고 내 의지로 서려고 하는데 어제는 병원에 가야겠더라고. 자신도 없고 심장도 마구 뛰어요. 선생님 두 분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선생님들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보여드릴까 봐 부담이 돼요.”
지난 22일 서울시 강남구 자택에서 만난 명창 안숙선(70)은 이틀째 연습을 쉴 만큼 기운이 없어 보였다. 그가 이토록 안절부절못하는 건 다음 달 5~7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에스(S)씨어터에서 올리는 창극 <두 사랑> 때문이다. 62년 소리인생에서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판소리 명창 만정 김소희(1917~1995)와 가야금병창 명인 향사 박귀희(1921~1993)의 이야기가 큰 축으로 펼쳐진다.
1년 남짓 안 명창의 구술을 기록한 이동연(54)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가 극본을 쓴 <두 사랑>은 안 명창과 연극배우(고수희), 소리꾼(권송희)가 한 무대에서 대사와 소리, 몸짓으로 극을 풀어간다. 안 명창은 내레이터처럼 이야기를 하면서 판소리, 소고춤, 가야금병창을 선보이고, 고수희는 두 스승의 목소리를 전하며 무대 위에서 안 명창과 대화한다. 권송희는 성악과 판소리를 오가며 결을 맞춘다. 이날 함께 만난 이 교수는 “좋은 작품이 될 거라 확신한다”면서 안 명창의 용기를 북돋웠다.
여덟살부터 가야금과 소리를 배운 안숙선은 남원춘향여성농악단에 속해 전국을 돌며 무대를 경험했다. 예술세상 마을프로젝트 제공
공연은 여덟살 어린 숙선이 전북 남원에서 이모인 가야금 명인 강순영에게 가야금을 배우며 국악에 입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어 서울에서 김소희, 박귀희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창극계 프리마돈나’로 활약하던 시절을 지나 누군가의 스승이 된 현재까지를 조명한다.
만정 김소희(왼쪽)와 안숙선 명창. 예술세상 마을프로젝트 제공
안 명창은 “판소리 다섯 바탕을 완창하도록 가르쳐주신 분들도 있는데 특히 이 두 스승만 꼽은 건 두 분이 아버지·어머니처럼 가정의 대소사, 건강까지 가까운 거리에서 챙겨주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 분은 내가 쓰러지지 않게 한약을 짓고, 장어를 고아 들통에 보내주시고, 내 손 잡고 병원 가자 해서 몸 이상도 체크하는 등 부모 역할을 해주셨어요. (이 공연은) 두 스승에 대한 사모곡이랄까요.”
극중에서 안 명창은 만정을 가리켜 “백목련 뽀얀 빛깔처럼 한없이 맑고 깊은 스승”이라고 표현하고, 향사는 “흐드러진 가을 국화 모양으로 너르고 푸근하기 그지 없는 스승”이라고 일컫는다. “예술가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돼라” “판소리는 들풀과 같아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던 만정은 격 높은 목련과도 같았고, 손 꼭 붙잡고 걸으며 “회의 나올 때 월남치마 입지 말고 남들처럼 정장 입어라, 옷맵시도 공인이 지켜야할 예의다”라고 일러주고 “항상 낙(낚)시줄 꼬누듯 뒷받침하고 있”겠다던 향사는 화사한 황국이었다.
안숙선 명창(왼쪽)과 향사 박귀희 명인. 예술세상 마을프로젝트 제공
큰 공연을 앞두곤 항상 소리 하나, 발림 하나까지 점검해주던 스승이 떠난 자리. “꽃은 해마다 찾아와도 그리운 얼굴은 다시 볼 일 없네”라며 애달파하는 제자의 마음은 만정제 춘향가를 향사의 가야금 병창에 얹은 ‘행군견월’(춘향이 몽룡과 이별한 뒤 부르는 노래)로 피어난다.
<두 사랑>을 기획한 이 교수는 안 명창과 같은 한예종 교수로 인연을 맺었고 2015년부터는 현대차 정몽구재단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를 함께하며 송흥록 등 명창들이 태어난 남원 운봉읍 비전마을에서 ‘동편제마을 국악거리축제’를 매년 진행하고 있다. 이 교수는 “선생님이 모노드라마처럼 자신의 인생을 공연으로 올려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서 이 공연이 시작됐다”며 “선생님 생애에 기념비적인 작품이 돼야 하는데 부담을 드리거나 누가 될까 봐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예술인생에 진한 영향을 끼친 두 스승을 기리는 창극 ‘두 사랑’에 출연하는 안숙선 명창(오른쪽)이 22일 오후 자택에서 이 공연을 기획한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함께 웃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안 명창이 스승과의 추억을 담아 공연하기로 결심한 건 그 역시 제자들을 가진 스승이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이 저를 가르칠 때 ‘이렇게 잘 못 하면 안 된다’, ‘큰일 난다’ 하셨는데 소리를 못해 격이 떨어지거나 제대로 전승이 안 될까 봐 걱정하신 것 같아요. 선생님들 돌아가신 나이가 지금 내 나이이에요. ‘목숨을 걸고 소리를 해야 남의 심금을 울릴 수 있다’고 했던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내 뒤까지 잘 전해주고 싶어요.” 이 교수는 “안 명창의 두 스승 이야기는 젊은 판소리꾼들에게 하는 따끔한 질책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안 명창은 지독한 연습 벌레다. “하루 2시간은 꼭 목을 푼다”는 안 명창은 “득음은 찰나의 순간일 뿐 연습을 통해 더 진한 득음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 교수가 “한여름에 운전기사를 하며 매니저 역할을 한 적이 있다. 선생님이 목 관리를 하신다고 에어컨을 못 틀게 하셔서 땀을 뻘뻘 흘렸는데 매니저의 삶이 이런 거구나 했다”고 농담을 던지자 안 명창이 “연습 안 하고 잘하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며 받아치곤 웃었다.
전석 무료인 공연은 이미 모두 매진이다. 티켓을 추가해달라는 요청이 많아 무대 앞쪽에 좌석을 더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이 교수는 “추가공연, 지방 순회공연 등 요청이 많은데 선생님의 상황을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02)960-0714.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