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의 외딴섬, 또는 강남의 음지로 불리는 수서의 임대아파트 단지는 그 큰 규모에도 여전히 인근 주민들의 눈엣가시였다. 집값 내려간다고 하는 정도는 불평 축에도 못 꼈다. 임대아파트 애들이랑은 놀지 말라며 문둥병자 취급하는 부모 중에 박사며 교수며 의사가 있었다.”
김윤영의 단편소설 <철가방추적작전>은 임대아파트를 둘러싼 씁쓸한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취약계층에게 살 집을 제공하기 위해 지어진 임대아파트가 실제로는 이들을 고립시키는 한국 사회의 폐부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소설을 원작으로 새달 9일에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개막하는 동명의 연극은 임대아파트와 민간아파트 아이들이 함께 다니는 중학교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평소에 같이 밥도 먹고 공도 차지만 사는 곳에 따라 아이들 사이엔 위화감이 생긴다. 가출한 16살 정훈이를 쫓는 여교사 봉순자를 통해 연극은 상대를 판단하는 수단이 된 아파트를 둘러싼 차 별적 시선을 드러내 보여줄 예정이다.
갈등, 이타주의자 등 매년 다른 주제로 사회 현상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두산인문극장’을 7년째 진행하고 있는 두산아트센터가 올해엔 ‘아파트’를 선택했다. 연극 <철가방추적작전>(4월9일~5월4일)를 포함해 석달동안 공연·전시·강연을 통해 아파트 속에 비친 한국 사회를 조명한다. 욕망과 성취의 대상이자 차별과 좌절의 공간이 된 아파트를 주제로 다양한 생각거리를 만들 예정이다.
27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박찬종 두산아트센터 제너럴 매니저는 “함께 사는 것의 가치를 생각하다가 공동체의 삶을 떠올렸고 아파트라는 주제에 접근하게 됐다”면서 “아파트는 활발한 커뮤니티여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되고 있더라. 아파트가 우리가 갖고 있는 화두의 집약체라는 생각을 했다”고 주제를 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27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두산인문극장 2019’ 간담회가 열렸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공연은 모두 세 편이 선보인다. <철가방추적작전>에 이어 무대에 오르는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5월14일~6월8일)는 영화감독 이창동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고생 끝에 아파트를 갖게 된 교사 준식과 이복동생 민우가 함께 살면서 벌어지는 일을 통해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안정의 척도가 된 아파트를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다원예술인 <포스트 아파트>(6월18일~7월6일)는 안무가 정영두, 건축가 정이삭, 작곡가 카입이 함께 준비 중이다. 연출도 맡은 정영두 안무가는 “전시가 될지, 공연이 될지 아직 정해진 게 없이 ‘다원’이라는 형식에서 접점을 찾고 있다. 출산율 저조로 슬럼화된 아파트, 인공지능이 함께 사는 아파트 등 다양한 미래의 아파트를 그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기획전시 <아워 파라다이스, 아마도 멋진 곳이겠지요>(5월1일~6월22일 두산갤러리)는 구지윤·김인배·이용주·조익정·황문정 5명의 작가가 아파트가 이루는 풍경의 안팎을 설치나 드로잉 등의 작품으로 보여준다. 새달 8일부터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시작되는 강연은 한국, 돈, 생활, 정치, 욕망, 기억, 골목, 미래 등 8가지 키워드로 풀어낸다. 박철수 서울시립대 교수, <문화방송>(MBC) <손에 잡히는 경제> 진행자 이진우, 정헌목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정재호 미술작가 등이 각각의 키워드로 아파트를 이야기한다. (02)708-5001.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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