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시인’ 신동엽(1930~1969)의 50주기(4월7일)를 맞아 그를 기리는 사업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심포지엄과 책 출간, 문학기행, 전시 등 행사 내용도 다채롭다. 지난 시절 이념 시비로 시집이 판매금지 되었던 그이지만, 교과서에 시가 실리고 50주기 행사를 문화체육관광부와 대산문화재단이 후원하는 등 가히 ‘신동엽 르네상스’라 이를 법한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분단 상황이 극적으로 변화하며 근본적 성찰이 필요한 시기가 지금이라고 봅니다. 이런 시기에 신동엽의 대표시 ‘껍데기는 가라’, 특히 그 가운데 “중립의 초례청”이라는 구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신동엽 시인 50주기가 시인의 이런 생각과 삶이 대중 속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2일 오전 서울 망원동 창비서교빌딩 지하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동엽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시인 겸 평론가 강형철 숭의여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신동엽 산문전집>과 역대 신동엽문학상 수상자들의 신작 시와 소설을 모은 작품집 출간, 그리고 심포지엄과 문학기행 등 올 한 해 동안 펼쳐질 여러 기념 행사를 설명하는 이 자리에는 강 이사장과 함께 정우영 신동엽학회 회장, 신동엽 시인의 장남인 신좌섭 서울의대 교수, 함순례 대전작가회의 회장이 참석했다.
2일 오전 서울 망원동 창비서교빌딩 카페에서 열린 신동엽 시인 50주기 사업 설명회에서 강형철 신동엽기념사업회 이사장(숭의여대 교수)이 발언하고 있다. 강 이사장의 오른쪽으로 순서대로 신동엽 시인의 아들인 신좌섭 서울의대 교수, 정우영 신동엽학회장, 함순례 대전작가회의 회장 등이 기자회견에 동석했다. 창비 제공
2013년에 나온 <신동엽 시전집>의 짝패로 출간된 <신동엽 산문전집>에는 시극 ‘그 입술에 파인 그늘’과 오페레타 <석가탑> 대본, 평론, 단상, 일기, 편지, 기행문, 라디오 방송대본 등이 묶였다. 특히 말미에 실린 ‘석림(石林) 신동엽 실전(失傳) 연보’는 연구자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한 자료로 보인다. 신동엽과 청년 시절 문학동인을 함께한 경찰 출신 인사 ‘노문’이 작성한 이 문건에 따르면, 신동엽은 6·25 전쟁 시기 부여군인민위원회 선전선동부에 속해 마을 순회강연 같은 활동을 했으며 인천상륙작전 이후 인민위원회 동료들과 함께 대둔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가던 중 한 달여 만에 대열에서 이탈했다. 신동엽의 부인 인병선은 2006년께 노문에게 보낸 편지에서 생전에 신동엽이 ‘빨치산 생활을 1달쯤 했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는데, 이 증언이 노문의 문건과 일치한다. 그러나 노문은 이 문건에서 “신동엽이 노동당에 입당했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며 “신동엽 그는 공산주의자도 아니고, 빨치산도 아니다. 그는 무정부주의자이며, 니힐리스트였다”고 증언했다.
이와 관련해 2일 기자간담회에서 신동엽의 아들 신좌섭 교수는 “아버님의 시에 진달래가 자주 등장하고,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진달래 산천’)라든가 서사시 <금강>에 묘사된 전쟁 상황 등을 근거로 아버님의 빨치산 활동에 의구심을 지닌 이들이 있는데, 저도 개인적으로 잘 아는 노문 선생님의 문건은 신뢰할 만한 자료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출판사 창비는 <신동엽 산문전집>과 함께 역대 신동엽문학상 수상자들의 신작을 모은 시집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과 소설집 <너의 빛나는 그 눈이 말하는 것은>도 내놓았다. 각각 신동엽의 시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 이길 것이다’와 ‘빛나는 눈동자’ 중 한 구절을 활용한 이 책들에는 하종오·곽재구·안희연·김현 등 시인 21명과 조해진·박민규·최진영·공선옥 등 소설가 10명의 작품이 실렸다.
5일 오전 10시30분부터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는 신동엽 50주기 학술회의가 열린다. 이 자리에서 강형철 이사장은 ‘한반도문학’이라는 새로운 범주 설정을 통해 신동엽 문학을 재평가할 예정이고, 신동엽문학관 사무국장인 김형수 시인은 서구의 이성적 합리주의를 넘어서는 신동엽의 사유를 동학 정신과 연결해 논의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6월15일은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가 독자들과 함께 성북구와 종로구, 광진구 등 신동엽의 서울 행적을 답사하는 인문기행 ‘신동엽의 서울시대’를 진행하며, 9월28~9일 신동엽의 고향 부여에 있는 신동엽문학관 일대에서는 한국작가회의 소속 문인들이 참여하는 전국작가대회를 겸한 신동엽 50주기 문학제가 열리고 11월 중에는 다시 신동엽 학술회의가 열리는 등 신동엽 50주기 기념 행사는 해가 저물도록 이어진다.
한편 김응교 교수는 2005년에 냈던 <시인 신동엽>을 손본 개정판 <좋은 언어로-신동엽 평전>(소명출판)을 냈으며, 최근 나온 문학 계간지 <푸른사상> 봄호도 신동엽 50주기 특집을 꾸몄다. 맹문재 주간이 신좌섭 교수와 대담을 했고, 이명원·김경복·정우영의 기고와 신동엽 대표 시 읽기 등의 꼭지를 곁들였다. 이명원 경희대 교수는 신동엽이 1961년에 발표한 평론 ‘시인정신론’을 “김수영의 참여시론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가장 개성적인 입론의 하나”라 평가했다. 이 글에서 신동엽이 제출한 ‘전경인’(全耕人)이라는 표현은 신동엽 50주기 추모 행사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으로도 활용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 신동엽학회장인 정우영 시인은 2일 간담회에서 “신동엽의 ‘전경인’이라는 말은 김수영의 ‘온몸의 시학’을 달리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며 “지난해와 올해 각각 50주기를 맞은 김수영·신동엽 시인을 기리는 다채로운 행사들은 두 분의 삶과 문학이 아직 유효하고 그들의 지향이 아직도 올바로 구현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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