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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물 특성 찾으려 과학·인문학 전공자 머리 맞댔죠”

등록 2019-04-04 18:35수정 2019-04-04 19:15

[짬] 샘표 우리맛연구팀 최정윤 팀장 등
최정윤 팀장(왼쪽부터), 김애진 연구원, 안형균 연구원.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최정윤 팀장(왼쪽부터), 김애진 연구원, 안형균 연구원.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봄나물 대표주자 달래. 잎만 놓고 보면 영락없는 쪽파에, 알싸한 맛이 올라온다. 향은 딴판이다. 뿌리에서 나오는 묵직한 냄새가 견과류를 연상시킨다. 달래 머리 부분을 잘게 다진 뒤 된장을 버무려 볶으면 고소한 맛이 더 강해진다. 생크림, 물엿 등을 섞어 졸이면 단맛도 더해진다. 버터가 한숟갈도 들어가지 않은 ‘은달래 버터.’ 봄의 맛이다.

샘표의 우리맛연구팀은 2017년 은달래(달래의 비늘줄기만 더 키워서 수확) 맛과 향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고소한 향을 찾아냈다. 두릅에서는 멍게 향이 난다고 보고 해산물과 함께 데쳐 두릅미역냉채를 선보였다. 가죽나물에서는 양고기 맛이 나니 간단히 데치면 고기의 감칠맛이 살아난다고 결론지었다. 이렇게 2년여간 봄나물 15종의 특성과 조리법을 연구한 결과를 담은 ‘봄나물 보고서’를 최근 펴냈다. 지난 3일 서울 중구 필동 샘표 본사에서 최정윤 우리맛연구팀 팀장과 김애진·안형균 연구원을 만났다.

우리맛연구팀은 2016년 샘표가 창립 70주년을 맞아 우리 식재료와 식문화 연구를 목표로 만든 조직이다. 요리사는 물론, 인문학·과학·영양학 전공자 등 전문연구원 21명이 일하고 있다. 외부자문 22명도 뒀다. 식재료와 조리과정을 최대한 요소별로 분해해 절차는 단순화하고, 맛은 충실한 요리를 만드는 게 목표다. 고문헌 연구부터 산지 탐방, 요리 연구·테스트와 결과 발표까지 길게는 2년여가 걸린다.

4년째 팀을 이끌어온 최정윤 팀장은 ‘우리맛’의 본질은 식물성 재료라고 했다. “한국은 1인당 채소 섭취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은 편이고, 채소가 밥상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기 때문”이란다. 연구팀 출범 직후 ‘땅의 채소’ 연구를 1호 과제로 내건 것도 그래서다. 특히 봄나물은 200여종에 이를 정도로 다채롭고 영양도 풍부하지만 ‘손질이 번거롭다’거나 ‘맛 내기 어렵다’며 요리를 꺼리는 이가 많은 탓에 공들여 연구했다.

2016년 창립 70년 때 팀 꾸려
요리사 등 전문연구원만 21명
최근 봄나물 15종 보고서 내
산지 60곳 찾은 거리만 5만㎞
간편한 조리법 연구에도 힘 쏟아

“우리맛 본질은 식물성 재료”

봄나물을 연구하려면 먼저 땅을 찾아야 했다. 식재료와 식문화를 연구하는 안형균 연구원은 ‘발품’을 맡았다. 봄나물 산지 60여 곳을 오간 거리만 5만㎞에 달한다. 처음엔 “살 것도, 팔아줄 것도 아니잖냐”며 문전박대하던 일부 생산자도 이내 두손 꼭 잡으며 “봄나물을 잘 알려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노지에서 눈·비·바람을 맞아 맛과 향이 강한 게 참냉이, 비닐막 속에서 큰 탓에 초록색을 더 띠면 풀냉이라고 알려준 것도 이들 농부다. 봄나물은 ‘쓰다’는 딱지를 떼는 게 다음 단계였다. 김애진 연구원은 기기 분석 등을 거쳐 흙 향, 허브 향, 쏘는 향, 바다 향 등을 찾아냈다. 기기가 채울 수 없는 부분은 요리사들의 ‘관능’에 기댔다. 그는 “고수 대신 참나물로 살사를 만들고, 박하향 나는 곰취를 칵테일에 얹은 건 모두 요리사들 혀끝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간편한’ 조리법 개발도 연구팀이 주력하는 부분이다. 최 팀장은 팬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나물요리법을 소개했다. 팬에 물과 나물을 올리고 끓은 물은 버린 뒤, 양념만 올려 졸이면 ‘볶은 나물’이 완성된다. 데치거나 물기를 짤 필요가 없고 조리 도구도 팬 정도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짜파게티 끌일 줄 아는 정도면 충분합니다.”(최 팀장) 안 연구원은 이른바 ‘레인지 업’ 가능한 채소 요리도 있다고 거들었다. 새송이버섯은 수분이 많기 때문에 전자레인지에 통째 넣어도 저절로 익는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원리만 이해하면, 복잡한 방식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연구 중심 주제는 ‘땅의 채소’(2016년·한국인이 많이 먹는 채소 11종), ‘산의 채소’(2017년·나물과 버섯), ‘바다의 채소’(2018년·해조류)로 옮겨갔다. 올해는 식물성 재료 연구에 더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식재료와 어울리는 소스인 장을 찾는 ‘장 페어링’ 연구도 이어갈 방침이다.

한식 형태의 전통적인 집밥보다는 간편식이나 배달 음식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우리맛 중심’ 요리라는 구호는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사람을 즐겁게 하는 밥상이 좋은 밥상이라고 봐요. 맛있고 건강할 때 즐겁겠죠. 간편식이 인기를 끌지만, 요리사만큼 요리를 즐기는 사람도 늘고 있어요. ‘즐거운 밥상’을 찾는 소비자가 있는 이상, 저희도 계속 연구할 겁니다.”(최 팀장)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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