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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항우가 판소리를 하네…창극과 경극의 만남 ‘패왕별희’

등록 2019-04-09 17:29수정 2019-04-10 12:33

리뷰 ㅣ창극 '패왕별희'
경극과 한국 전통 결합… ‘판소리 배틀’급 지략 싸움
야경꾼들 구수한 사투리에 손끝 하나, 소리 한자락까지 열연
창극 <패왕별희>. 국립극장 제공
창극 <패왕별희>. 국립극장 제공
“산을 뽑을 힘이 무슨 소용인가. 사랑하는 이 한명도 지키지 못하거늘.”

금박 장식이 붙은 검붉은 의상을 입은 초패왕 항우가 전쟁에 패해 연인 우희와 안타까운 이별을 맞는다. 슬픔에 빠진 항우의 펼쳐진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그의 용맹함을 상징하듯 하늘로 치솟아 있던 머리 위 깃털 장식도 그가 고개를 떨구자 기세를 잃은 듯 앞으로 기운다. 하얗게 분칠해 눈매만 빨간 우희는 검무를 추며 항우와의 이별을 준비한다. 보여지는 모든 것이 영락없는 중국 전통예술 ‘경극’인데 이게 웬걸. 배우들의 입에선 <춘향가>의 ‘사랑가’ 같은 절절한 마음을 담은 판소리가 흘러나온다. 경극과 창극의 만남으로 화제가 된 국립창극단의 창극 <패왕별희>다.

오는 14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선보이는 창극 <패왕별희>는 눈으로는 경극을 보여주고 귀로는 창을 들려주는 작품이다. 경극 배우이자 연출가인 대만 당대전기극장 대표 우싱궈가 연출을 맡고, 소리꾼 이자람이 작창과 음악감독을 맡았다. 동명의 경극을 재해석한 작품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초한전쟁이 배경이다. 초패왕 항우가 한나라 황제 유방에게 패하는 과정과 항우와 연인 우희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총 일곱장에 걸쳐 펼친다.

창극 <패왕별희>. 국립극장 제공
창극 <패왕별희>. 국립극장 제공
공연의 첫장 ‘오강의 노래’는 원작에 없는 항우의 할머니인 맹인 노파가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노파는 옛이야기를 들려주듯 노래를 부르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중국 역사를 잘 모르는 한국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세히 풀어낸 2장 ‘홍문연’에선 항우와 유방의 책사들이 ‘판소리 배틀’을 하듯 지략싸움을 펼치고, 중국 역사상 위대한 전투 중 하나로 꼽히는 4장 ‘십면매복’에선 배우 넷이 십만 대군의 전투 장면을 중국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박진감 있게 표현한다. 경극은 한정된 무대에서 선보이기 때문에 ‘4’라는 숫자로 ‘많다’를 상징한다고 한다. 깃발을 등에 꽂거나 손에 들고 흔드는 배우 네명이 무대를 좌우로 뛰어다니는 것으로 엄청나게 큰 전투를 표현했다. 시각적 요소에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 보여주는 경극과 판소리 다섯마당에서 길어올린 음악을 담은 창극의 이질감 없는 어우러짐은 5장 ‘사면초가’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경극의 광대 역 같은 야경꾼들이 도입부에 등장해 “시방, 뭣이여?”라는 전라도 사투리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얘기하는데 마당놀이를 보는 것처럼 유쾌하다. 항우와 우희의 절절한 사랑이 표현되는 6장 ‘패왕별희’는 손끝 하나, 긴소매의 움직임에도 애절함을 표현하며 창을 하는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인다. 새초롬한 눈빛과 요염한 몸짓으로 우희 역을 소화하는 여장남자 김준수, 떡 벌어진 어깨로 웅장한 장수의 기개를 보여주는 항우 역 정보권의 연기가 발군이다. 항우가 자결하며 끝나는 7장까지 지루할 틈 없이 눈과 귀를 채워주는 현대화된 고전은 그리스 신화, 에스에프(SF) 소설, 시와도 결합하며 세계화의 길을 찾는 창극의 무한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02)2280-4114.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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