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가>는 판소리 다섯 바탕(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 중 거의 유일하게 관객들의 눈물보가 터지는 작품이다. 사설에 슬픈 내용이 많고, 특히 진계면(단조 계열의 슬픈 선율) 소리가 진하게 담겨 있다.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이가 “나 죽기는 섧지 않으나 의지 없는 우리 부친을 차마 어이 잊고 가리. 삼백석에 팔려 제수로 가게 되니, 불쌍헌 아버지를 차마 어이 잊고 가리”라고 창을 하면 그 소리가 애달파 영락없이 울컥할 수밖에 없다.
새달 5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개막하는 창극 <심청가>는 ‘극’보다 ‘소리’의 맛을 살렸다. 애절한 독창과 웅장한 떼창까지 심금을 울리는 전통 판소리의 매력에 오롯이 집중한다. 지난해 초연 때 매진사례를 이룬 화제작이다. 지난 21일 국립극장에서 만난 유수정(59)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완창하면 5~6시간 걸리는 소리를 2시간 남짓(150분)으로 줄여 ‘엑기스’(진액)만 담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마당놀이 창시자인 손진책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연출한 <심청가>는 소리의 원형에 집중하기 위해 무대와 소품 등 다른 요소들을 최소화했다. 반주도 전통 국악기로만 이뤄지며, 판소리 요소인 소리·아니리(사설)·발림(몸짓)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소리꾼의 역량이 중요한 만큼 캐스팅도 초연과 비슷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유 감독이 안숙선 명창과 도창(창극의 해설자)을 맡아 번갈아 무대에 선다. 다만, 지난해엔 창극단원이었으나 이번엔 예술감독으로서 무대에 오른다는 점이 다르다.
유 감독은 “<심청가>가 그동안 수없이 무대에 올려졌지만 이 작품은 특히 판소리의 맛을 잘 살려냈다”며 “전통 소리를 진중하게 듣고 싶어하는 어르신들이나 핵심만 간결하게 보고 싶어하는 젊은 세대 모두에게 호소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꼽는 이번 작품의 백미는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기 직전에 부르는 범피중류 대목이다. “<심청가>의 가장 장중한 대목 중 하나로 보통 떼창을 하지 않는데 이번엔 심청이, 선원들, 도창 등이 함께 합창으로 불러 웅장하면서 감동이 더 클 거예요.”
유수정 국립창극단 신임 예술감독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4월 부임한 유 감독은 1987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창극 <춘향가>의 춘향, <심청가>의 심청 등 주역을 도맡아왔다. 가야금 명인 유대봉의 딸이자 수많은 명창을 길러낸 만정 김소희의 제자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로, <춘향가>와 <흥보가>를 여러 차례 완창했다. “배우일 때는 내 역할만 잘하면 됐는데 예술감독이 되니 챙겨야 할 것이 많더라고요. 공연 연습하랴 다음 작품 회의하랴 바쁘지만 필요하다고 하면 언제든 무대에 서려고요.”
이번 작품에서 함께 도창을 맡은 안 명창은 그에게 선배이자 스승이다. 유 감독이 방황하고 힘들 때마다 길을 터주고 기회를 만들어줬다. “서울 워커힐호텔 공연단 일자리부터 창극단 예술감독을 맡은 것까지 똑같게 안 선생님이 걸어온 길을 따라 걷고 있다”는 유 감독은 안 명창과 같은 역할로 한 무대에 서는 것이 영광이라고 했다. “안 선생님은 정말 소리꾼 중 최고이잖아요. 차분한 성품인 안 선생님의 소리는 살아오신 인생만큼이나 깊이가 있고 단아하죠. 반면 활달하고 왈가닥 같은 저는 인생도, 소리도 선생님과 견주면 한참 멀었어요. 이번 무대 역시 안 선생님과 붙어 지내며 배워가는 중인데 가르쳐주신 대로 입을 쫙~쫙 벌려 소리 내고 있어요.(웃음)”
국립창극단은 전임 김성녀 예술감독이 이끈 7년 동안 ‘신창극’을 앞세워 파격적인 실험을 했다. 독일 오페라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의 <수궁가>, 대만 경극 연출가 우싱궈의 <패왕별희>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접목하며 관객층을 넓혀왔다. 그리스 비극을 다룬 <트로이의 여인들> 등은 국외 무대에 진출해 호평받기도 했다. “전임 예술감독님이 이 시대 관객들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면서 창극을 보는 연령대가 10대부터 노인까지 다양하게 열렸어요. 앞으로는 전통 소리에 목마른 이들을 위해 진중하고 깊이를 더한 작품들을 올릴 계획입니다. 내년 국립극장 70돌 기념 작품은 아직 ‘비밀’이에요.(웃음)”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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