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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감시카메라를 감시하다…‘감시 넘쳐나는 사회’를 보여드립니다

등록 2019-06-04 16:43수정 2019-06-04 20:49

‘보안이 강화되었습니다’ 전

CCTV·블랙박스 등 그대로 활용
인간에 대한 디지털 통제 시각화
‘보안이 강화되었습니다’전에 나온 중국작가 쉬빙의 다큐적 영화 <잠자리의 눈>의 한 장면. 고속철이 탈선하는 충격적 장면을 찍은 폐쇄회로카메라 영상이다.
‘보안이 강화되었습니다’전에 나온 중국작가 쉬빙의 다큐적 영화 <잠자리의 눈>의 한 장면. 고속철이 탈선하는 충격적 장면을 찍은 폐쇄회로카메라 영상이다.
지난주 한국 사회는 폐쇄회로(CC)카메라가 포착한 ‘신림동 강간미수’ 동영상으로 들끓었다. 카메라 동영상의 내용은 섬한 스릴러의 한 장면 같았다. 새벽 서울 신림동 원룸에 문을 열고 귀가하려던 한 여성을 30대 남자가 쫓아와서 따라 들어가려다 간발의 차로 문이 닫혔다. 그 뒤로도 남자가 문 근처를 서성이면서 잠금장치를 풀려고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동영상은 관계망서비스(SNS)로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성폭행 의도 아래 저지른 행동이 분명하다며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확산됐다. 실제로 경찰은 강간미수죄를 적용해 남자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신림동’ 강간미수 동영상 논란은 이른바 시시티브이를 통한 감시와 보안이 일상적인 생활의 조건으로 뿌리를 내린 21세기 우리 삶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에스엔에스 온라인 소통이 통하고 방범용 폐쇄회로 티브이, 차량용 블랙박스가 있는 전세계 어디에서든 영상으로 감시하고 감시당하는 것은 인간의 조건이 되었다. 일종의 감시로 포착한 이미지들을 영화를 보듯 생생하게 어디서든 감상할 수 있게 되면서 감시의 방식, 경험 자체가 우리의 인식과 사고를 규정하는 현상도 생겨났다.

아담 브롬버그 & 올리버 차나린 듀오의 이미지설치작품 <정신은 뼈다>. 안면인식 기법으로 만든 사람들 두상을  망자가 숨진 뒤 빚는 ‘데스마스크’처럼 연속도상으로 표현했다.
아담 브롬버그 & 올리버 차나린 듀오의 이미지설치작품 <정신은 뼈다>. 안면인식 기법으로 만든 사람들 두상을 망자가 숨진 뒤 빚는 ‘데스마스크’처럼 연속도상으로 표현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코리아나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보안이 강화되었습니다’는 신림동 동영상을 떠올리면서 보면 훨씬 절절하게 다가올법한 시사적인 틀거지의 전시다. 시시티브이로 대표되는 감시와 보안의 현재적인 단면들을 역시 시시티브이와 블랙박스 등의 실제 감시장비를 활용한 현재진행형의 이미지들로 드러내는 까닭이다. 현대문명 비판의 주요 화두 가운데 하나인 감시와 통제의 코드가 21세기에 첨단적 기법과 이미지 기계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얼개와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생생한 현실의 영상들을 통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감대가 느껴진다.

눈길을 단번에 휘어잡는 대표작은 중국의 현대미술 대가인 쉬빙의 다큐영상 <잠자리의 눈>이다. 2만8000개의 홑눈을 갖고있으며, 초당 4만번을 깜박거린다는 ‘잠자리의 눈’은 현재 한국인의 경우 9초당 한번 정도로 노출된다는 감시카메라, 블랙박스의 렌즈를 의미한다. 작가는 2017년 중국 감시카메라 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내려받은 1만 시간 분의 영상을 검색하면서 추려내, 한 남자 주인공이 칭팅(중국말로 잠자리라는 의미를 지닌다)이라는 이름의 여성을 찾는다는 내용의 81분 짜리 영화로 각색했고, 이번 전시엔 미술관 상영용으로 9분14초짜리 압축적인 동영상을 내놨다. 사랑하는 여인을 그리워한 나머지 그의 얼굴을 그대로 본떠 성형한다는 줄거리는 난해하지만 영상에 등장하는 강물 투신 장면, 비행기 추락, 화산 폭발, 도로를 덮치는 산사태, 사람들이 싸우는 이미지들은 어떤 각본도 없는 인간과 자연의 돌발적 순간들을 담은 것이란 점에서 삶과 시대의 불안정성을 적나라하게 표출하고 있다. 작가 듀오 아담 브룸버그&올리버 차나린은 첨단 안면인식 기술 시스템을 곱씹는 디지털 초상화 '정신은 뼈다'를 선보이고 있는데, 마치 죽은 이의 데드마스크가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부활한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렌즈 4개가 1초 간격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캡처하면서 이미지 데이터를 모으면, 두개골 윤곽에 따라 3디(D) 얼굴 모형을 만드는 안면인식 기술의 실상을 엿보는 기묘한 기분이 느껴진다. 영국의 쌍둥이 자매작가 제인과 루이스 윌슨은 감시와 보안의 화두를 특이하게 설정된 상황과 방식으로 풀어낸다. 2010년 아랍 두바이 호텔에서 일어 암살사건의 전후 상황을 찍은 시시티브이 용의자 활동 영상과 당시 범행의 현장을 작가들이 다시 찍어 재구성한 공간들을 맞세워 보여주면서 상상력과 팩트가 대비되는 구성을 취했다.

에반 로스는 2014년부터 지속해온 '인터넷 캐시 자화상 시리즈'를 전시장에 펼쳐놓았다. 지난 3월 한 달간 작가의 노트북에 남겨져 있던 인터넷 캐시 데이터를 출력해 전시장의 천장과 벽, 바닥을 온통 데이터 이미지들로 덮은 것이다. 얼핏 보기엔 관객이 기념사진 찍기 좋은 이색 이미지들의 방으로 보이지만, 이 공간 설치작업은 심란한 내용들을 담고있다. 한 개인의 온라인 활동량이 물리적으로 어마어마하다는 것과 그런 이미지들이 고스란히 우리들 눈 앞의 감시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까닭이다. 7월6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코리아나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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