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기를 끌었던 웹드라마들. (왼쪽부터) <에이틴2>, <오피스워치>, <좀 예민해도 괜찮아2>의 포스터.
▶ 칼단발 헤어스타일, 짝짝이로 신은 양말, 할 말을 단호하게 하는 태도, 일명 ’도하나병’. 웹드라마 <에이틴>의 주인공 도하나를 따라하는 10대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에이틴>이 인기를 얻으면서 일부 학생들이 도하나를 따라한다는 게시물이 올라왔고 도하나를 연기한 배우 신예은이 ‘도하나병’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요즘 10~20대들은 티브이를 켜지 않고 ‘웹드’를 본다는데, 웹드를 대체 왜?
“나는 김하나가 하민이랑 잘 됐으면 좋겠어.” “아니야. 나는 류주하랑 잘 됐으면 좋겠어.”
요즘 10대들은 ‘김하민’(여자주인공의 이름 김하나의 ‘김하’+남자주인공 하민의 ‘하민’)파와 ‘주하나’(남자주인공의 이름 류주하의 ‘주하’+김하나의 ‘하나’)파로 나뉜다. 웹드라마 <에이틴2>의 러브 라인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점심시간엔 웹드라마의 삽입곡(OST)이 교정에서 흘러나온다. 웹드라마를 즐겨 본다는 중학생 오아무개양(15)은 “친구들끼리 모이면 항상 웹드라마 이야기를 한다”며 “시간과 장소 상관없이 틈이 날 때마다 본다”고 말했다. 오양은 “웹드라마는 드라마 길이가 짧고, 언제든지 볼 수 있어서 좋다. 학교 수업을 듣고 학원까지 다녀오면 집에서 한 시간 넘게 앉아서 티브이(TV)를 볼 시간이 없다. 웹드라마는 학교 쉬는 시간에도, 학원 가는 차 안에서 자투리 시간에 보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또 “길이가 짧으니 그만큼 전개도 빠르다. 한 시간이 넘는 티브이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전개가 느려서 답답하단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웹드라마는 티브이가 아닌 모바일 기기를 통해 인터넷으로만 볼 수 있는 드라마다. 유튜브, 네이버티브이 등의 플랫폼을 통해 볼 수 있다. 분량은 대체로 한 회당 10분 안팎이다. 2010년대 초부터 등장한 웹드라마는 초창기에는 신인 배우들이 안방극장에 데뷔할 때 거쳐 가는 등용문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10~20대 초반 시청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그 자체로 독립 장르를 구축하고 있다. 한때는 저렴한 제작비와 낮은 품질 때문에 ‘티브이드라마의 마이너리그’ 취급을 받았지만, 지금은 시즌제가 안착할 정도로 시장성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튜브와 함께 폭풍 성장
웹드라마 제작사 플레이리스트가 만든 <에이틴2>는 지난 4월25일 첫 방송을 시작한 지 2주 만에 누적 재생수 3500만뷰를 기록했다. <에이틴>은 지난해 시즌 1에서도 누적 재생수 2억뷰를 기록하며 역대 웹드라마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플레이리스트가 만든 <연애플레이리스트>도 누적 재생수 3억뷰 돌파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연애~>는 오는 25일 웹드라마 최초로 시즌4가 방영된다. 지난 3월 말 종영한 티비엔 디(tvN D)가 만든 웹드라마 <좀 예민해도 괜찮아2>도 누적 재생수 2000만뷰를 기록했다. 사회 초년생이 직장 내에서 겪을 수 있는 젠더 이슈를 다룬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 사이에 열띤 토론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2017년 제작사 와이낫미디어가 선보인 웹드라마 <오피스워치>는 최근 종영한 시즌 3까지 합산한 누적 재생수가 4000만뷰에 이른다.
국내 웹드라마가 태동한 시기는 2010년대 초로 본다. 2010년 윤성호 감독이 만든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가 대표작이다.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웹드라마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엘티이(LTE)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모바일로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드라마 전문 제작사나 지상파 방송국에서 <연애세포>, <출출한 여자> 등을 내놨지만, 당시까지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웹드라마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연애플레이리스트>가 큰 성공을 얻은 2017년부터다. 이 시기는 유튜브가 국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으로 떠오른 것과 비슷하다. 와이즈앱 조사를 보면 2016년 3월만 해도 유튜브 사용시간은 79억분으로 카카오톡(189억분), 네이버(109억분)에 이어 3위였다. 그러나 2016년 9월 유튜브(117억분)는 네이버(111억분)를 따라잡고 2017년 9월 카카오톡(201억분)을 앞지르며 한국인이 가장 오래 쓰는 앱(206억분)에 등극했다. 이는 주로 유튜브에서 유통되고 재생되는 웹드라마의 시청자층도 늘었다는 의미다. <좀 예민해도 괜찮아> 등을 연출한 티비엔 디 소속 김기윤 피디는 “2017년 유튜브 사용시간이 카카오톡을 넘어서고 유튜브,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의 인기도 높아지면서 짧은 기간 동안 폭발적으로 시청자가 늘었다”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하면, 웹드라마가 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엔 신인 아닌 기성 배우들도 출연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웹드라마는 외국인 시청자를 위한 외국어 자막과 별개로 한글 자막도 제공한다. 지하철, 카페 등 조용하지 않은 환경에서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를 위해서다. <에이틴2>의 장면 갈무리.
연출 방식·홍보 방식도 달라
웹드라마는 기존 드라마와는 제작 방식이 다르다. 웹드라마를 보면, 외국인 시청자를 위한 외국어 자막 서비스와 별개로 한글 자막이 제공된다. 시청자들이 조용한 거실이 아닌 지하철이나 카페 등 시끄러운 곳에서 이어폰 없이 볼 수도 있다는 점을 참작한 것이다. 내레이션이나 클로즈업도 일반 티브이드라마보다 많이 활용된다. 김기윤 피디는 “짧은 러닝타임 때문에 이야기 전개를 빨리해야 하다 보니 상황과 대사를 통한 진행보다는 내레이션이 많이 활용되고, 내레이션이 붙어야 하기 때문에 얼굴 클로즈업도 많이 쓰인다”고 설명했다. 김정겸 인스턴트 필름 대표는 “웹드라마는 주요 플랫폼이 화면 크기가 작은 모바일 기기이기 때문에 넓은 풀샷은 잘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드라마 홍보도 온라인을 주요 기반으로 한다. 온라인을 통해 누구나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시청자들끼리 채팅을 하며 의견도 나눌 수 있도록 한다. <에이틴2>는 지난 4월17일, 네이버 ?브이(V) 라이브를 통해 제작발표회를 진행했다. 이 영상은 60만뷰를 기록했다. 드라마를 한 번이라도 더 클릭하고 싶게끔 하여야 하므로 모바일 화면에 뜨는 섬네일도 중요하다. 한 장면, 한 줄의 설명으로 그 회의 내용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면서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웹드라마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효율’이다.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웹드라마의 제작비는 대체로 10분 전후 기준, 회당 1천만~3천만원 정도다. 신인 배우나 배우를 지망하는 아이돌을 캐스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정겸 대표는 “제작비가 적기 때문에 장비 운용이나 배우 기용에 있어서 효율적인 방법을 추구한다”며 “밝은 장면이 필요할 때 기존 드라마에서는 큰 규모의 조명팀을 섭외하겠지만 웹드라마에선 낮 야외 씬으로 촬영을 하는 식으로 효율성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웹드라마의 수익은 광고 수익, 드라마 내 피피엘, 리메이크 판권 판매, 드라마 음악(OST) 판매 등으로 확보한다. 실제로 <에이틴>의 OST는 각종 음원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고 <좀 예민해도 괜찮아>는 중국에 리메이크 판권을 팔았다. 광고를 ‘스핀오프’ 형식으로 제작하기도 한다. 웹드라마 속 주인공의 캐릭터는 그대로 살리면서 제품 광고를 드라마 형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웹드라마 <에이틴2>는 제작발표회도 온라인을 기반으로 진행했다. 지난 4월 네이버 브이라이브를 통해 진행한 <에이틴2> 제작발표회는 60만뷰를 기록했다.
하이틴 드라마부터 오피스물까지
웹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시청자들은 우선 스마트폰, 태블릿 피시 등을 통해 자신이 원할 때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든다. 더는 티브이 편성표에 맞춰 거실 소파에 앉아 드라마의 방송 시간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러닝타임이 짧기 때문에 잠깐 짬이 나는 시간에 볼 수 있어 시간에 대한 부담도 적다.
웹드라마의 주 시청자층은 10대부터 30대까지다. 제작사 플레이리스트에 따르면 웹드라마의 시청자 연령은 18~24살이 60%로 가장 많고 13~17살 24%, 25~34살 15% 순이다. 13살부터 34살까지가 99%였다. 이들은 1995년 이후 태어나 유년 시절부터 디지털 미디어에 노출된 이른바 제트(Z)세대로 텍스트(글)에 익숙한 기존 세대와는 달리 이미지나 동영상에 먼저 반응하고 멀티미디어 형태로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특징이 있다. 영상도 긴 것보다 짧은 것을 선호한다. 웹드라마 특성과 일치하는 셈이다.
시청자가 보고 싶어하는 다양한 내용을 소재로 한다는 점도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제트세대가 티브이를 보지 않게 되면서 10대가 주인공인 하이틴 드라마가 티브이에서 사라졌다. 웹드라마는 그 틈새를 파고들었다. <에이틴>은 로맨스와 학업, 진로, 우정 등 고등학교 2∼3학년 주인공들의 고민을 10대들 눈높이에 맞춰 진지하게 담아냈다. 선생님이나 학부모 등 성인 배역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등장하더라도 배경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이 특색이다.
<에이틴>이 10대를 타깃으로 한 하이틴물이라면 <오피스 워치>는 2030을 대상으로 한 오피스물이다. 오피스워치는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만한 내용을 다뤘다. <연애플레이리스트>는 대학생들의 사랑 이야기, <최고의 엔딩>은 취업에 성공한 남녀의 결혼 도전기 등을 담고 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상 속 소재로 공감을 얻는 것이다.
성차별 등 진지한 문제의식을 담은 웹드라마도 눈에 띈다. 시즌 1에선 대학생활 속 젠더 이슈를 그려낸 <좀 예민해도 괜찮아>는 시즌2에선 인턴십 과정의 사회 초년생들이 회사 내부 젠더 이슈들을 겪으며 성차별과 부조리한 문제를 인식하고 극복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동영상으로 협박하는 최악의 전 남친’ ‘딸 같아서 그랬다는 상사에게 팩트 폭격을 했다’ ‘회사 화장실에 몰카가 있다!’ ‘회사 선배한테 밤마다 이상한 연락이 온다’ 등이다. 이 중 페미니스트인 여자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상담하는 내용인 ‘내 여자친구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편은 댓글이 5만개가 넘게 달리며 공감과 토론을 끌어내기도 했다. 박시은 플레이리스트 홍보매니저는 “연출, 제작진이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 시청자 중심의 이야기를 기획하는 접근 방식 차이가 인기를 얻은 요인 중 하나”라며 “10대물, 연애물 뿐만 아니라 시청자가 보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겸 대표는 “웹드라마의 시청자들은 이미 자랄 때부터 해외 콘텐츠를 많이 접하면서 자랐기 때문에 기존의 드라마는 진부하게 느끼는 반면 웹드라마의 새로운 시도나 시대 변화를 반영한 콘텐츠에 매력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기윤 피디는 “기존의 드라마는 미디어 발신자 위주였기 때문에 시청자가 선택적으로 접근할 수 없었는데, 웹드라마가 나타나면서 드라마 시청 방식이 수신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