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 프로그램 `저널리즘 토크쇼 제이(J)'의 김대영 책임피디가 6월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한국방송>의 ‘저널리즘 토크쇼 제이(J)’는 미디어비평 프로로서는 드물게 지난 5월 백상예술대상 티브이(TV)부문 교양작품상을 받았다. 본방송 시청률(평균 3.5%)과 재방송 시청률(2%)을 합해 5%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언론계 안팎에서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토크쇼 형식이지만 현장 취재는 물론 시청자 초청 공개방송도 하고 기념품도 제작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난민보도’를 다룬 50회엔 영화배우 정우성씨가 출연했다. 미디어비평이란 만만찮은 영역에서 의미와 대중성이란 두마리 토끼를 다 잡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초기부터 책임피디(CP)를 맡아 제작을 총괄해온 김대영 팀장을 지난달 20일 한겨레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김 팀장은 한달여 전 연속 방송된 ‘노무현과 언론개혁’ 1·2부’와 ‘뉴스는 누구의 돈으로 만들어지나’를 3부작 ‘한 세트’로 기획했다며 “팀장 발령 때부터 꼭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 좋은 저널리즘을 하려는 언론을 사주며 응원해주고 못하는 언론은 비판하고 소비하지 않아야 좋은 저널리즘이 만들어진다는 얘기를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 팀장으로서 1주년을 맞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1주년 되는 날 페이스북에 소감을 올렸다. 팀원 없이 팀장 발령을 받은 게 지난해 4월16일이었는데 회사에선 첫 방송을 두달 안에 만들라고 했다. 준비하다 한달쯤 남겨 놓고 국장에게 도저히 못 만들겠다고 했다. 그런데 새 사장이 취임해서 새 면모를 보여야 하는데 새로 시작하는 프로가 이거밖에 없다, 잘 만들지 않아도 되니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더라. 민언련(민주언론시민연합)이 당시에 취재를 좀 했는지 모니터링 보고서에 ‘개문발차 했다’는 표현을 썼더라. 1회부터 7회까지는 매회가 파일럿(시험 프로그램)이란 생각으로 만들었다. 하루도 쉰 날이 없었다. 사실 포맷도 시간이 없어 지금의 포맷으로 만들어졌다.”
― 원래 기획안은 토크쇼 형식이 아니었나?
“처음엔 저널리즘 회복프로젝트 제이(J)라는 제목을 정했다. 기자가 취재하는 기획을 포함해 두세개 코너를 두는 형식을 생각했다. 그런데 인력 배치도 잘 안되고 해서 고민 끝에 토크쇼 형식으로 바꿨다. 첫 방송을 내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전날 전전날 다 밤을 샜다. 제작 프로세스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여서 방송 낼 수 있을까 걱정할 정도였다. 그런데 첫 방송 뒤에 사내외 평가가 괜찮았다. 열악했던 조건에 비하면 지금은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 프로그램 준비 과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방송의 영향력이 고점에 있을 때 케이비에스(KBS)에 입사했는데 디지털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방송이 기울어가는 걸 보고 굉장한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2014년에 영국 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로 1년간 연수를 갈 기회가 있었다. 거기서 ‘KBS 뉴스 페이스북 페이지의 ‘좋아요’를 어떻게 늘릴 것인가’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왔다. 이게 사내에 알려져서 신임 디지털뉴스 국장이 디지털뉴스 혁신작업을 같이 하자고 해서 2015년 12월에 디지털뉴스팀에 갔다. 그때부터 2년여 동안 여러 실험적인 것들을 포함해 100개 이상의 비디오를 기획·제작·출고까지 총괄해 만들었다. 라이브 방송도 20-30회 했고 멀티미디어 뉴스도 수백건 제작했다. 그때는 티브이를 거의 본 적이 없다. 미국의 버즈피드(BuzzFeed)와 복스(Vox) 같은 디지털뉴스 콘텐츠를 주로 봤다. 그런데 갑자기 티브이프로 책임피디로 발령이 나서 그때부터 2주간은 티브이만 봤다. <썰전> 20개, <블랙하우스>는 다봤고, <스트레이트>, <역사저널 그날>, <외부자들> 등 여러 프로를 보면서 최근의 트렌드를 살폈다. 그런 것들이 프로그램 포맷 구상의 토대가 됐을 것이다.”
― 한국방송(KBS)이 취약했던 젊은 시청자층, 30살에서 59살까지의 시청자 비율이 높다고 들었다.
“디지털팀장 하면서 젊은층에 케이비에스 콘텐츠를 도달시키려 노력을 많이 했다. 몇년간 그것만 생각해왔는데 이번에 그 내용이 미디어비평이 된 것뿐이다. 처음 이 프로를 맡고 회사에 낸 기획서에도 (지상파방송과 디지털콘텐츠를 두축으로 하는) ‘듀얼 퍼블리싱’이 들어있다. 석달 정도 지나서 유능한 후배 기자들도 합류하고 틀이 갖춰지고 나서 한걸음 더 나갔다. 9월13일이었는데 마침 한회가 결방이 돼서 유튜브 라이브를 사무실에서 한번 해봤다. 별다른 준비 없이 사무실에서 카메라 한대 갖다 놓고 했는데 조회수가 7만5천회가 나오더라. 여기서 가능성을 보고 다음부터 정규편성을 해서 어제 32회 라이브를 했다. 두축이 본방과 유튜브 라이브인데 라이브가 평균 15만회가 나온다. 상당히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30-59살’ 시청률 비율이 가장 높다. 유튜브나 페북·팟빵 등으로 이 프로를 접하고 나서 티브이로 보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으로 본다.
듀얼 퍼블리싱의 목표는 두가지다. 첫째는 티브이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우리 콘텐츠를 도달시키겠다는 것, 둘째는 그 사람들을 다시 티브이 앞으로 불러모으겠다는 거다. 디지털로 우리 프로 접한 사람들이 안보던 <케이비에스1>을 보기 시작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 48회에서 출연자들이 1년 소감을 밝히면서 최욱씨는 효능감을 못 느끼겠다고 하더라. 정세진 앵커는 시청자 수준이 올라간 것 같다고 하고.
“한 후배가 ‘기자들이 프로그램 내용에 동의를 해야 바뀌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하더라. 납득할 수 없고 반발심만 생기면 프로의 존재 의미가 있느냐고. 최욱씨 얘기도 그런 연장선상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1년 동안 그렇게 했는데 조선일보 바뀐 게 있느냐, 공염불 아니었냐고. 저는 기자들 보라고 만드는 게 아니라 시청자들 보라고 만든다. 시청자들이 좋은 기사와 나쁜 기사, 좋은 언론과 나쁜 언론을 구별하고, 기사가 나오는 구조와 의도를 이해하고 그래서 선별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해보자는 프로지 기자들 보고 반성하라고 만드는 게 아니다.
사실 정 앵커와 최욱씨 말은 모두 애드리브였다. 정 앵커가 그 답변을 하는 걸 보고 놀랐다. 이 프로의 의도를 본인이 정확하게 이해하게 됐구나 싶더라. 정 앵커가 프로 마지막에 ‘언론의 관행은 여러분이 바꿀 수 있다’는 멘트를 한다. 처음엔 낯간지럽다고 안하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48번이나 했다. 본인이 그 말의 의미도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겠나.”
김대영 책임피디가 20일 오후 인터뷰 도중 크게 웃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프로그램의 성격상 초기 캐스팅 과정도 만만치는 않았을 것 같다.
“처음 프로 맡고 1주일간 기획안을 썼다 고쳤다 했다. 그 과정에서 진행자(MC)로 한때 영화배우 정우성씨 섭외도 검토했으나 결국 정 앵커로 결정했다. 아나운서는 엔터테이너 이미지인 경우가 있고 저널리스트 이미지인 사람이 있는데 정세진 아나운서는 오락 프로는 거의 한 적이 없다. 케이비에스 아나운서 가운데 뉴스 이미지가 가장 강하다. 2012년 봄 파업 때는 노조가 만든 ‘리셋뉴스9’ 앵커를 했다. 회사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다. 새로운 케이비에스의 새 프로 진행자로서, 그가 가진 저널리스트 이미지, 리셋뉴스에서 저항하며 쌓아온 상징성, 맑고 단아하고 올바른 이미지가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와 맞는다고 생각했다.”
― 선뜻 하겠다고 했나?
“아나운서들은 뉴스는 기자들과, 기타 프로는 외부 엠시와 경쟁해야 한다. 옛날처럼 프로가 많아서 한 사람이 여러개 하는 구조가 아니다. 여기에다 새노조 참여자들은 그동안 불이익을 많이 받아왔다. 그런데 정 앵커가 파업 이후 첫 인사에서 부장이 됐다. 부장은 부원들이 좋은 프로를 많이 맡도록 해야 하는데 새로 만드는 첫 프로에 부장이 들어간다는 데 부담감을 많이 느끼더라. 방송을 너무 오래 쉬었고 육아 문제도 있다면서 고사를 했다. 대안으로 다른 후보군 명단까지 가져왔더라. 나는 애초에 정 앵커 이외엔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제 뜻이 워낙 완강하니까 결국 수락했다. 애초 1년만 하겠다고 하고 합류했다. 그런데 결국 지난 3월인가 4월에 부장 보직을 그만뒀다.”
- 정준희 교수 섭외는 어떻게 했나?
“2012년에 차장 승진 교육받으러 수원 연수원에 가서 처음 알게 됐다. 영국 유학 마치고 막 돌아온 젊은 교수가 <비비시(BBC)> 강의를 하는데 말도 잘하고 논리가 정연하더라. 끝나고 명함 교환하고 얘기를 좀 나눴다. 그 뒤 디지털뉴스팀에 가서 다시 정 교수를 만나게 됐다. 고참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2박3일짜리 디지털뉴스 교육프로그램을 그에게 부탁했다. 이번에 프로 맡고 언론학자 섭외를 위해 주요대학 신방과 교수들 명단을 검토해봤는데 마땅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더라. 정 교수가 괜찮을 것 같아 전화했더니 겸임교수 신분인데 괜찮겠냐고 묻더라. 상관없다고 하고 만났다. 본인이 해보겠다고 하더라. 애초 최강욱 변호사가 패널 가운데 좌장격이었는데 10회까지 하고 청와대 비서관으로 옮겼다. 당시 걱정이 참 많았는데 그때부터 정 교수가 실력을 발휘하더라. 10회까지의 정준희와 이후의 정준희는 완전히 달라졌다. 내용을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컸던지 발언 강도나 수위도 더 세진 것 같다.”
― 최욱씨의 경우는 캐스팅한 의도가 따로 있을 것 같다.
“디지털뉴스 팀장 할 때 ‘불금쇼’로 유명하다고 해서 알게 됐다. 그때 서너번 같이 일을 했다. 2017년5월 대통령선거 때 국내 최초로 모바일전용 개표방송을 했다. 아나운서 2명과 가수 솔빈 등 5명이 공동엠시를 했는데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 전에 토론도 두번 정도 했다. 당시 만든 디지털 전용 콘텐츠들은 젊은층을 겨냥해 유머코드가 어느 정도 들어가 있었다. 이번 프로에 유머코드를 어느 정도 넣을까 고민하던 중에 팀원들이 최욱을 추천하더라. 전화해 같이 하자고 했더니 자기가 들어갈 자리가 아니라고 두번이나 거절했다. 첫 방송 1주일 남겨놓고 포스터 사진을 찍어야 하는 상황이라 다시 전화했다. 또 고사하길래 일단 한번 해보고 안 맞으면 그때 그만두라고 했다. 그래서 ‘한번만 나가보겠다’고 한 게 이렇게 됐다. 그는 방송에서 리포터도 하고, 앨범을 낸 가수이기도 하다.”
― 숄츠 기자는?
“<에스비에스>(SBS)의 디지털 콘텐츠인 스브스뉴스에서 ‘독일형이 말하는 5.18 광주’라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잘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팀원이 추천을 해서 접촉했다. 독일 공영방송(ARD) 등에서 프리랜서 기자 겸 피디로 일한다. 이런 프로에서 통할 정도로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외국인 패널이 많지 않다. 부인이 한국인이다.”
김대영 책임피디가 6월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본관 주조정실에서 `저널리즘 토크쇼 제이(J)' 녹화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녹화 전 준비는 보통 어떻게 하나?
“아이템이 기획성이냐 발생성이냐에 따라 조금 다르다. 연초에 했던 공개방송이나 노무현과 언론개혁, 지난 연말에 했던 ‘영화 속 저널리즘’ 등은 기획물에 속한다. 미리 팀을 짜서 담당자를 정한다. 공개방송은 두달 전부터 준비했다.
발생성의 경우엔 매주 목요일에 아이템의 가닥을 잡고 주요 패널들에게 알려줘 견해를 달라고 한다. 그러면 구두 또는 메일로 보내온다. 전문가 섭외도 목요일과 금요일에 한다. 그분들 견해와 어떤 비평을 할 지 의견을 받아 월요일 오후쯤 되면 작가들이 녹화용 원고를 만든다. 기자들도 그 사이에 필요한 취재를 하고. 월·화요일에 급히 대체해야 할 상황이 있는지 보고 없으면 수요일 오후1시에 분장하고 2시에 촬영 들어간다. 이런 식으로 기자와 작가를 에이(A)조와 비(B)조로 나눠 돌아가며 진행한다.
그런데 지난해 7월 노회찬 의원이 화요일에 돌아가셨다. 다음날 출근하면서 아무래도 다뤄야 할 거 같아서 당일날 바꿨다. 막판에 바꾸면 스탭들이 싫어한다. 부실하게 다루는 것보다 준비해서 다음주에 하면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 늘 있다. 고민이다.”
― 애드리브도 상당한 것 같은데?
“토크쇼 프로라 원고는 참고용이고 애드리브가 많다. 그래서 리허설이 없다.”
― 높아진 시청률만큼이나 화제를 모은 프로도 많았던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인 회차를 꼽는다면?
“하나만 꼽긴 어렵다.”
― 하나씩 얘기 해보자.
“13회 ‘제이티비시(JTBC)는 어떻게 신뢰도 1위가 됐나’ 할 때 담당국장도 아이템이 안되는 것 같다고 하더라. 보통 회의시간에 보고하면 잘하라고 하고 넘어가는데 이 때는 그런 얘기가 나왔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볼만한 미디어비평 콘텐츠로 만들 것인가 신경을 많이 썼다. 마침 한 회가 결방이어서 유일하게 2주간 만들었다. 그 바람에 결방 때 좀 쉬어야 하는데, 계속 와서 수정을 하자니까 팀원들한테 쓴소리를 좀 들었다. 제이티비시를 다루지만 결국은 케이비에스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제작자와 기자로서 역량과 경험이 가장 많이 투여된 게 13회다. 그 뒤부터 피드백도 늘어나고 반응도 ‘괜찮다’ 정도에서 ‘놀랍다’‘충격적이다’로 달라지더라.‘어떻게 케이비에스가 제이티비시를 칭찬할 수 있느냐’‘뼈저린 자기 반성이 들어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그 뒤부터 우리 프로에 대한 평가가 ‘레벨업’ 됐다고 느꼈다.”
― 연초 방송된 공개방송에서도 시청자가 뽑은 프로그램 1위를 했더라.
“신생 종편사인 제이티비시가 케이비에스 엠비시(MBC)를 제치고 신뢰도 1위가 됐다는 건 한국 미디어 역사에서 정말 획기적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출범 당시엔 누구도 상상 못했던 일인데다 그 격차도 크지 않느냐. 두 방송사 사장들이 바뀌었는데도 신뢰도 순위가 안바뀌고 있으니 그 원인이 무엇인지 보는 게 주목적이었다.”
― 케이비에스의 성찰을 촉구하는 취지 때문이었겠지만 아쉬운 대목도 보인다. 당시 패널로 나온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이 제이티비시에 대해 ‘손석희 사장 개인에 의존하고 상업방송이란 한계도 있다’고 언급했다. <중앙일보>도 함께 운영하는 보수-진보 동거체제로 사주의 선의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도 있다. 지상파 역시 공영방송 사장 선출 관련 법제는 그대로라 정권에 따라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이런 취약한 방송 구조 문제도 함께 다뤘으면 좀더 완성도 높은 프로가 되지 않았을까?
“사내에서 ‘그렇게 좋으면 제이티비시 가지’ 하는 얘기까지 들었다. 그렇지만 방송에서 필요한 만큼은 지적했다고 생각한다. 손석희 이전과 이후가 어떻게 달라졌나, 그리고 손 사장 개인에 의존한다는 얘기도 했다. 그 말 뒤에 기획 의도를 잘 드러내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케이비에스 엠비시가 아무리 미워도 고쳐써야 되는 이유를 말하고 싶었다. 국민의 힘으로 선거나 입법을 통해서 케이비에스가 영국 비비시처럼 독립성과 책임성에 기반한 좋은 공적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애정을 갖고 응원하고 비판해줘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제이티비시 있으니까 앞으로 케이비에스 엠비시 없어도 돼. 수신료 제이티비시 줄 거야’, 그런 식으로 하면 안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다만 50분 방송에 모든 얘기를 다 넣을 수는 없고 핵심적으로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집중하려 했다. 국민들에게 중요한 아젠다를 세팅·빌딩·키핑 했을 때 국민들의 신뢰가 생긴다는 얘기를 하려 했던 것이고, 그런 내용은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 다른 프로들은?
“노무현과 언론개혁 1·2부와 ‘뉴스는 누구의 돈으로 만들어지나’는 사실 연속 방영된 3차례가 한 세트다. ‘노무현과 언론개혁’에서 말하려 했던 것은 상식있는 언론이다. 이걸 언론 스스로 만들 수는 없기 때문에 이용자·수용자·독자인 국민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연속으로 기획했다. 처음 팀장 발령받았을 때 이건 꼭 하고 가려 했다. 그래서 10주기를 앞두고 3월말부터 후배 기자 한명과 전담 제작피디를 붙여서 이것만 하라고 했다. 현장 취재를 3~4월에 다 했다.”
― ‘노무현과 언론개혁’ 첫회는 본방송만 5.5%로 최고시청률을 기록했다.
“소재 측면에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있었을 것이다. 또 티켓 파워를 가진 유시민이란 슈퍼게스트가 나왔으니 시청률이 올랐을 것이다. 그 전에 그가 출연한 ‘대화의 희열’에서도 최고시률을 기록했다고 하더라. ‘제이(J) 훅’이라고 디지털 전용 3분짜리 예고 동영상인데 유튜브에서만 86만뷰를 기록했다. 재방 시률도 3%넘게 나와서 모두 187만명이 봤다고 하더라.”
― 녹화 즈음 유시민 작가가 모친상을 당하지 않았나?
“어머니가 녹화 당일 새벽에 돌아가셨는데 오후에 녹화를 했다. 못올 줄 알았는데 오겠다고 하더라.”
― 눈물을 흘리는 장면도 있었는데?
“녹화 중에 스튜디오에 노 전 대통령 관련 자료영상을 계속 틀고 옛날 기사도 계속 띄우게 됐다. 아무래도 옛날 생각이 많이 나지 않았을까 싶다. 종이로 얼굴을 가리고 1분 정도 우는 장면이 있었는데 30초 가량은 들어냈다. 대화 중 자연스럽게 드러난 감정이라 굳이 빼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너무 긴 것 같아서 줄였다.”
― 언론개혁 메시지를 다시 환기한 것은 의미가 컸다고 본다. 다만 노 전 대통령 시절과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은 지금의 언론 상황 등 언론개혁의 현재적 의미가 좀더 부각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저희 프로그램을 연속해서 보는 분이라면 맥락 속에서 이해를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언론개혁을 2주 연속 하고 바로 다음주에 ‘뉴스는 누구의 돈으로 만들어지나’를 배치했다. 이 걸 통해서 상식있는 언론이 만들어지려면 상식있는 수용자가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 뉴스를 공짜로 소비하려고 하면 결국은 돈내는 사람은 기업밖에 없으니 친기업적 보도밖에 안 나온다, 좋은 언론을 소비하고 비용을 지불해줘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2019년 현재의 미디어 산업을 조명했기 때문에 그렇게 이해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제작했다.”
― 신년기획으로 ‘깨어난 시민 제이(J)’라는 제목으로 공개방송까지 했다.
“시사프로 중엔 공개방송한 전례가 없을 것이다. 팬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서 수요조사를 해봤다. ‘공개방송을 한다면 올 의향이 있느냐. 있는 분은 전화번호와 이름 주소를 적어 제출해달라’. 그랬더니 순식간에 많은 분들이 신청했다. 공개방송은 방송용이면서 이벤트적 성격도 갖는다. 유튜브로 먼저 생방송을 하고 찍어놓은 영상을 편집해서 다시 1주일 늦게 방송을 하는 전무후무한 실험이었다. 유튜브로 너무 많이 봐버린 뒤에 방송을 해서 시청률에선 손해를 좀 봤지만 의미는 있었다.”
김대영 책임피디가 20일 오후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언론계 안팎에서 가장 논란이 많았던 것은 아무래도 문재인 대통령과의 대담을 다룬 44회였던 것 같다. ‘‘대통령에게 묻는다’ 무엇이 불편했나’ 편은 사내에서도 파장이 컸겠다.
“사내 게시판에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글이 여러건 올라왔다. 그래서 국장 명의로 불편했거나 불만족스운 점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부분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글을 올렸다.”
― 애초 대담을 다루기로 한 것은 시청자들 요청에 따른 것인가?
“당시 생방송은 보지 못했다. 평소에 우리 프로그램에 달리는 댓글과 커뮤니티 게시물을 살펴보는데 시청자들이 지난 방송 이런 데다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댓글을 엄청 남겨놨더라. 아는 언론학자 한 분은 제 명운이 이걸 다루느냐 안다루느냐에 달렸다고 연락해오기도 했다. 보통 목,금요일에 회의를 하는데 팀내에서도 의견이 모아지지 않아서 주말까지 좀 보자고 했다. 그런데 국장이 일요일에 전화를 해서 다루자고 하더라. 패널들도 정준희 교수나 최욱씨 모두 당연히 다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월요일에 회의 끝에 1시간을 다 할애해서 다각적으로 다루기로 했다. 방송 뒤에 보니 외부에선 케이비에스라 살살한 것 같더라, 내부에선 같은 조직인데 너무 심했다는 식으로 상반된 평가가 나오더라. 제가 살살 다뤘나?”
― 아마도 ‘손석희 사례’나 ‘외국 언론 사례’ 등과 비교하는 대목 등이 더 아프게 느껴진 것 아닌가?
“왜 그것과 비교하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저희 프로의 비판 대상이 되는 신문에 계시는 분이나 그 논조에 동의하는 분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정권이나 사장의 사주를 받고 그 언론을 악마화시키고 공격하는 선봉에 선다고 믿을지 모르겠으나 저는 기자로서 상식과 소신과 양심에 기반해서 비평한다고 생각한다. 자사에 대한 비평을 못하고 타사를 비평한다면 우리가 (정권의) 도구로서 앞장선다는 지적에 답변할 명분이 없다. 자사를 비평하는 그 힘으로 타사를 비평한다고 생각한다. 이 프로 맡았을 때 원해서 온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발령내서 온 것이지만 거창하게 얘기하면 소명이라 생각하고 하고 있다. 사내에서 욕 먹어도 어쩔 수 없다. 여기서 하는둥 마는둥 그렇게 해서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사후적으로라도 당사자나 이런 분들한테 사과 내지 양해를 구하긴 했는데 잘 안받아들여지더라.”
― 한겨레를 포함해서 어느 언론사나 내부 비판은 어려운 일이다.
“자사에 대해 그런 정도로 할 수 있는 미디어 기업이 과연 있을까. 케이비에스니까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어렵지만 문화와 전례로 자리잡으면 사내에서도 그런 인식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다만 자사 비판을 하면 내부에서 비판받고 기자를 비판하면 기자 사회에서 비판받으니까 여기 오려는 기자들이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기자 사회의 관행을 지적할 때는 반발하는데 보수진보의 구분이 없더라. 저도 이 프로 하면서 친했던 기자와 관계가 멀어지는 경험도 했다. 회사는 이 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기자 개인들은 오려고 하지 않는다. 메리트가 별로 없다. 앞으로 자사 관련 문제는 제가 기자로서 직접 취재하는게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 코리아나 호텔 방용훈 사장 부인 자살 사건을 다룬 35회 ‘조선일보는 사주의 일탈을 어떻게 비호했나?’편에는 문화방송의 서정문 피디가 출연했다. 경쟁사 피디가 출연한 것은 처음 아닌가?
“처음부터 타사 기자도 적극 참여할 수 있게 한다는 생각이었다. 뉴스타파 기자는 삼성 장충기 문자 편에 출연했고, 한겨레 김완 기자도 가짜뉴스 공장 에스더 편에 나왔다. 제이티비시 편에 손석희 사장 출연을 요청했는데 처음엔 검토해보겠다고 하다 나중에 인터뷰 얘기를 하더니 결국 인터뷰도 어렵다고 하더라. 그래서 보도국장을 대신 인터뷰했다. 서 피디 경우는 최승호 엠비시 사장한테까지 보고가 올라갔는데 적극적으로 나가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는 어떤 매체 기자도 부를 생각이다. 조선일보 기자도 마찬가지고.”
― 프로의 성격상 여전히 언론권력적 행태를 보이는 보수언론들, 특히 그 중에서도 조선일보가 많이 다뤄지는 것 같다. 언론중재 신청이나 소송도 적잖이 들어왔을 것 같은데.
“사법농단 관련해서 정정보도를 요구해왔는데 ‘정정보도 요구에 답하다’는 제목으로 정정할 수 없는 이유를 방송했다. 이에 대해서 중재위에 반론을 청구했길래 받아들여서 홈페이지에 실었다. 이건희 삼성 회장 성매수 사건을 보도하지 않았다는데 사실과 다르다고 해서 우리가 확인해서 바로잡은 적도 있다. 틀렸다면 고치는 걸 망설이지 않는다. 다만 정정 대상이 안되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
― 방송에서 최욱씨가 제재받았다는 얘기를 하던데?
“조선일보의 120만부 발행을 그대로 믿을 수만은 없지 않느냐고 했는데 정정보도를 요청해서 거절했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요청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방통심의위에서 야당 추천위원이 주장해서 주의 조처를 했더라. 그런데 47회차 ‘뉴스는 누구의 돈으로 만들어지나’에서 에이비시(ABC) 통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최욱씨가 다시 그에 대한 답을 한 셈이 됐다.”
― 통계보도의 문제점이나 부동산시장, 국가부채 등 경제 관련 보도에 대한 비평도 꽤 많다. 시청률은 어떨지 몰라도 팩트체크 겸 시청자들의 공부도 되는 것같다. 시청자 반응은 어떤가?
“어려운 경제 얘기를 전문가가 구조까지 짚어주고 그래픽을 이용해서 이해하게 쉽게 해주니 반응이 좋다. 그래픽 디자이너 4명이 인포그래픽을 만드는데 상당히 강점이 있다. 전엔 경제문제를 쉽게 설명할 패널을 찾기가 어려웠는데 최근 몇차례 출연한 주진형 전 한화증권 대표이사가 쉽게 설명을 잘해줘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경제문제를 다룰 때 항상 반응이 좋았다. 모르는 걸 알게 됐다는 시청자들이 많다.”
― 47회 방송을 본 몇몇 기자가 얼마 전 페북에 쓴 글이 최근 기자사회, 특히 신문업계에 많이 회자됐다. 포털이 저널리즘을 파국으로 몰고가는 언론계 미래에 대한 성찰이나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신문업의 현실을 희화화한 게 아니냐는 내용이다. 본 적 있나?
“봤다.”
― 어떻게 생각하나?
“포털이 한국 언론을 어떻게 망치고 있는지에 대해선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 한 회에 너무 많은 얘기를 할 수 없어서 일단 실태를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저희 프로가 기본적으로 토크쇼이고 어떤 주제를 다루든 유머 코드가 많이 들어간다. 업계 계신 분들이 봤을 때 불편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프로에서 하려 했던 이야기는 좋은 저널리즘은 좋은 수익구조에서 나온다, 좋은 수익구조는 수용자들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뉴스를 왜 돈을 주고 봐요 뉴스는 공짜 아닌가요’ 이런 인식이 잘못됐고 좋은 언론을 만드는 데 수용자 역할이 중요하다, 여러분들이 뉴스를 위해서 돈을 안 쓰니까 저널리즘이 이 모양 아니냐, 사실은 이 이야기를 하려고 실태를 보여준 것이다. 이 프로 하면서도 ‘야 걔네들 다 똑같애’ 이런 말씀은 하시면 안된다, 언론이라도 다 똑같지 않다, 그 안에서도 잘하려고 노력하는 언론이 있고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데 싸잡아서 욕하면 한국 언론은 희망이 없다, 노력하고 더 좋은 저널리즘을 하려고 하는 언론을 사주고 응원해주고 못하는 언론은 비판하고 소비하지 않아야 좋은 저널리즘이 만들어진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게 목표였다.
애초 수신료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다. 케이비에스가 권력으로부터는 몰라도 자본으로부터는 꽤 독립이 돼 있지 않느냐. 그것이 시민들이 내는 돈으로 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 이야기를 하면 수신료 올리자는 얘기로 받아들일까봐 뺐다. 왜 방송 이야기는 안하고 신문 이야기만 했냐고 할 수 있는데 방송 이야기를 하려면 방송은 수입구조가 수신료와 광고밖에 없다. 그러면 좋은 저널리즘 만들어지는 건 수신료 모델인데 저희가 그 프로 하면서 수신료 얘기를 끼워넣으면 애초 말하려는 의도가 퇴색될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 부분을 일일이 설명할 수 없어서 아쉽다.”
― 앞으로의 계획이나 추가하고 싶은 말은?
“앞으로 계획을 말씀드리고 싶다. 오랫동안 생각했던 것을 기획하고 있다. 우리 프로는 큰틀에서 보면 미디어 리터러시다. 연령대로 보면 ‘10대말~20대초반’의 시청 비중이 낮다. 이들이 우리 프로를 보면 똑똑한 미디어 수용자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판적 사고나 이면 들여다보기, 비교해서 보기, 맥락에서 이해하기 등을 통해 논리력이나 사고력에 도움이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대중성을 가미해서 만들어도 이들이 보기엔 여전히 부담스런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이들을 타깃으로 한 별도의 전용 콘텐츠를 제작하려 한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김대영 책임피디가 6월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본관 주조정실에서 `저널리즘 토크쇼 제이(J)' 녹화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후배들이 붙여준 별명, ‘악마팀장’
‘저널리즘 토크쇼 제이(J)’와 김대영 책임피디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저널리즘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고발하는 프로그램’으로 매주 일요일 밤 10시30분
을 통해 방송된다. 지난해 6월17일 첫 방송을 시작해 지난달 30일까지 모두 50회가 방송됐다. 디지털용으로 제작하는 ‘제이(J)라이브’도 지난해 9월 시작해 33회를 맞았다. 정세진 앵커와 정준희 중앙대 겸임교수, 방송인 최욱씨, 얀톤 숄츠 독일 기자가 고정 패널로 출연한다. 책임피디인 김대영 팀장 등 기자 6명을 포함해 모두 33명이 제작에 참여한다.
김 팀장은 지난 2000년2월 한국방송에 입사해 사회부·정치부 등과 <미디어포커스>, 디지털뉴스팀장 등을 거쳐 지난해 4월 미디어비평 프로의 책임피디 발령을 받았다. 정치부에서 국회를 출입하던 2010년 한달간 이어진 파업에 참가한 뒤 <남북의 창>으로 좌천(?)된 경험도 있다. 후배기자와 최욱씨가 붙여준 별명이 ‘악마팀장’이다. ‘10대말~20대초반’ 세대를 위한 새 미디어 리터러시 프로를 또 준비하겠다는 그에게 어울리는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