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연습실에서 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 출연진이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오, 앨라배마의 달님이여/ 이제 작별할 시간이네요/ 우린 마음 좋은 엄마를 잃었어요/ 그래서 위스키를 마셔야 해요/ 이유는 아시잖아요/ 당장 푼돈이라도 벌 곳을 알려줘요/ 이유는 묻지 마세요! 이유는요!”
지난 4일 국립오페라단이 연습 중인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스튜디오에서 독일어 노래가 흘러나왔다. 어두운 내용의 가사와 경쾌한 음악이 대조적으로 느껴지는 이 노래의 제목은 ‘앨라배마 송’. 1930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초연된 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의 대표곡이다. 마하고니 도시가 생겨나는 1막 2장에서 나오는 이 곡은 록밴드 도어스, 데이비드 보위, 메릴린 맨슨 등 록가수들이 영어로 리메이크해 대중적으로도 알려져 있다.
■ 자본주의 비판 담은 ‘그물망 도시’ 이야기
저항과 자유를 부르짖는 록가수들이 반한 오페라 아리아가 담긴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이 오는 11~1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내 초연된다.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는 작품은 남녀 사기꾼 세명이 타고 가던 마차가 고장 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들은 그곳에 눌러앉아 환락의 도시 ‘마하고니’를 세운다. ‘그물망 도시’라는 뜻을 가진 이곳의 절대 가치는 오직 ‘돈’. 벌목꾼인 지미와 친구들은 ‘파라다이스’라고 소문난 이곳에 전 재산을 들고 찾아온다. 타락의 끝이 무엇일지 모른 채 배가 터지도록 먹고, 술과 도박 같은 유흥에 빠진다.
첫 공개연습이 있었던 지난달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연습실에서 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 출연진이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풍자 정신이 넘치는 이 작품을 만든 건 독일 출신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와 작곡가 쿠르트 바일(1900~1950)이다. 여흥에 치우치기보다 시대적 함의를 담은 내용과 형식의 ‘서사적 오페라’를 주창했던 이들은 서민들의 이야기를 그린 <서푼짜리 오페라>(1928)의 흥행에 이어 이 작품을 만들었다. 음악에서도 보통의 오페라에선 쓰지 않는 색소폰, 반도네온 등의 악기를 사용해 재즈, 카바레음악 등 대중적 색채가 강한 음악을 들려준다. 국립오페라단 관계자는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은 정통 오페라처럼 막의 개념이 중요하지 않고 20개의 장면마다 번호가 붙어 있는 음악극에 가까운 현대적인 오페라”라고 설명했다.
국립오페라단은 원작을 새롭게 해석해 무대에 올린다. 원작의 배경은 19세기 중반이지만 과거로 더 들어가 17~18세기를 그린다. 드라마투르그(공연 전반에 걸쳐 연출가의 의도와 작품 해석을 전달하는 역할)로 참여한 이용숙 오페라 평론가는 “작품이 보여주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인간 소외 문제는 16세기 서유럽 절대왕정이 추구했던 식민지를 통한 영토 확장과 상인들을 아낌없이 지원하던 중상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며 “극중 인물들이 먹다가 죽고, 권투 경기를 하며 치고받다 죽고 하는데 이런 인간성의 밑바닥을 치는 상황들이 ‘먹방’ 같은 유흥에만 관심 있는 현대에도 의미하는 바가 있다”고 설명했다.
■ 히틀러가 상연 금지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은 관객이 극에 너무 몰입해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던 브레히트의 ‘낯설게하기’ 기법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블랙 앤 화이트 톤으로 시공간을 알 수 없게 꾸민 무대와 과장되고 화려한 바로크 의상을 입은 주인공들은 비현실적인 결합으로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예정이다. 곡 사이에도 내레이션을 넣어 극의 흐름을 끊어간다. 이용숙 평론가는 “춤과 음악이 잘 어우러지는 가운데 몰입을 끊는 장치들이 들어가 전체적으로 부조리극 같은 느낌을 살린다”고 말했다.
연출은 안성수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이 맡았다. “오페라 연출은 처음이지만 (좋아하는) 쿠르트 바일의 음악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도전해봤다”는 안 감독은 “한편의 블랙코미디 같은 이 작품에서 15명의 무용수가 극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암시하며 음악을 무용으로 표현할 것”이라고 했다.
사실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독일 사회당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 공연됐다가 히틀러에 의해 1933년에 상연 금지됐다. 유대인인 바일이 미국의 상업음악인 재즈를 도입했다는 등의 이유에서였다. 결국 퇴폐예술로 규정돼 1960년대까지 제대로 공연되지 못하다가 지금은 다양한 해석을 담은 작품으로 세계 곳곳에서 선보이고 있다. 이용숙 평론가는 “퇴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보니 외국에선 성적, 폭력적 수위가 꽤 높은데 안 감독은 아름다움 속에서 혐오감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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