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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내 인생, 내가 개척하겠소” 시대에 맞선 옛 여성들

등록 2019-08-01 18:27수정 2019-08-01 19:43

실존 인물 앞세운 공연 두편

음악극 ‘낭랑긔생’
‘사내가 되어 사람이 되겠다’던
구한말 최초 단발머리 기생 강향란
가상의 권번 통해 여성 연대 조명

뮤지컬 ‘난설’
조선 최고 여성시인 허난설헌
타고난 재능 사회 벽에 막혀
남겨진 시·산문 위로의 노래로
조선 최초의 단발 기생 강향란을 주인공으로 만든 음악극 <낭랑긔생>.  정동극장 제공
조선 최초의 단발 기생 강향란을 주인공으로 만든 음악극 <낭랑긔생>. 정동극장 제공
영화, 드라마 할 것 없이 사회의 위선과 억압에 맞서 싸우는 주체적인 여성을 그린 서사가 부쩍 늘었다. 공연계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마주했던 실존 여성을 그린 두 작품이 관객을 만나고 있다. 구한말 최초의 단발머리 기생인 강향란을 그린 음악극 <낭랑긔생>과 조선시대 최고의 여성 시인으로 꼽히는 허난설헌(1563~1589)을 그린 뮤지컬 <난설>이다.

■ “사내가 되어 사람이 되겠다”던 강향란

<낭랑긔생>은 1922년 6월22일 <동아일보> 3면에 ‘단발랑’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소개된 기생 강향란을 모티브 삼은 작품이다. “요사이 경성시내에는 어떤 여학생이 머리를 깎고 남자 양복에 캡 모자를 쓴 후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닌다 하여 일반사회에서 이야기꽃이 피게 되었다”는 내용의 기사에는 남장한 강향란의 사진이 실려 있다. 조선 최초의 단발 기생인 그는 여자라서 사람대접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사내가 되어 사람이 되겠다”며 머리를 짧게 잘랐다. 여성으론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는 억압된 사회에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자 나선 행동이었다.

<낭랑긔생>은 강향란이 단발을 결심하기에 이르는 과정을 재구성하면서 가상의 권번을 통해 여성들의 연대 이야기를 그린다. 맏딸로 생계를 책임지는 정숙, 신여성으로 인문학적 지식을 갖춰나가는 은희, 변화를 꿈꾸면서도 현실에 순응하는 순화, 신여성들이 모인 근우회를 이끄는 명순 등을 통해 격변의 시대 속에서 각자의 길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여성들의 삶을 그린다. 과거에 독립운동을 돕다 연인을 잃었던 순화는 “피만 흘렸지 변화가 오더냐”며 울부짖지만 명순은 희망을 놓지 않고 말한다. “무모한 사람이 많아지면, 감당 못 할 만큼 세상이 시끄러워지면, 변하지 않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단발을 한 강향란이 자신의 벗들인 권번 기생들과 손잡고 “저 멀리서 바람이 불어온다. 단단히 버티어라, 우리는 바람꽃(큰 바람이 불기 전에 먼 산에 구름같이 끼는 보얀 기운)이다”라는 노래를 부를 땐 뭉클해진다. 시대에 굴복하지 않던 강향란 같은 여성들이, 그리고 손을 맞잡아준 여성들의 연대가 있었기에 변화는 가능했다. <낭랑긔생>을 쓴 조은 작가는 “영웅이 아닌 소소한 인물들의 역사에도 주목하고 싶었다”며 “언젠가는 여성서사라 구분되지 않고 여성서사란 이유로 주목받지 않기 위해 지금은 더 많은 여성 이야기가 필요해 보인다”고 작품 의도를 전했다. 18일까지 서울 중구 정동극장.

허난설헌의 삶과 시 세계를 그린 뮤지컬 <난설>. 프로스랩 제공
허난설헌의 삶과 시 세계를 그린 뮤지컬 <난설>. 프로스랩 제공
■ 누구의 누이라 부르기엔 아까웠던 허난설헌

허난설헌의 본명은 허초희.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누이다. 가부장 중심의 성리학이 성행했던 조선 중기에 허난설헌은 시인으로서의 생과 여자로서의 생 모두 불행했다. 8살 때 이미 신동으로 소문난 그이지만 시 말고 수나 놓으라는 세상의 벽에 막혀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고, 15살 때 조혼해 갑갑한 시집살이를 하다 27살에 생을 마감했다. 이름 없는 여인으로 살아야 마땅한 시대에 스스로 ‘난설헌’(눈 속에 난초가 있는 집)이라는 호를 짓고 자신의 족적을 남긴 허난설헌의 시들은 훗날에야 제대로 평가받았다.

뮤지컬 <난설>은 허초희의 남동생인 허균이 역모죄로 처형되기 전날 밤에 떠올리는 기억으로 시작된다. 허균과 초희, 그리고 두 사람의 스승이었던 이달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허초희의 삶과 시 세계를 그린다. 붓과 종이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누구든 될 수 있던 허초희가 문밖 세계로 얼마나 나가고 싶어했는지를 하얀 종이와 검은 먹처럼 표현된 무대 위에서 펼쳐 보인다. 차가운 비바람 버틴 오동나무로 거문고를 만들어 곡조를 타보았건만 알아주는 이 없더라는 내용의 ‘견흥’이란 시와 산문 등 허초희가 남긴 글들이 노래로 되살아나 한 글자씩 한 폭의 그림처럼 무대 위에 새겨진다. “그 사람은 누군가의 누이라 부르기 아까운 사람 아닌가”(이달), “누이의 시는 멀리 가서 닿을 것이오. 누이가 말한 것처럼, 그곳에 갇혀 있지 않을 것이오”(허균)라는 대사처럼 허난설헌의 시와 삶은 한계에 부딪혀 절망하고 깨어진 이들에게 힘을 준다. 수개월간 <허난설헌집>을 공부하며 이야기를 완성했다는 옥경선 작가는 “허난설헌의 삶에 비해 시는 잘 알려지지 않아 잊혀지지 않도록 알리고 싶었다”며 “허난설헌 시는 위로를 주는 느낌이 있는데 우리 작품을 통해 많은 분들이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오는 25일까지 서울 대학로 콘텐츠그라운드.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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