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청소년을 위한 클래식 사용법 콘서트’를 앞두고 페이스북 ‘클래식에 미치다’ 운영지기인 지휘자 안두현(왼쪽부터), 유튜버 ‘클언니’로 활약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 네이버 오디오 클립 ‘클래식 사용법’ 운영자인 트럼페터 나웅준이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을 찾았다. 각자의 연주 도구를 들고 카메라를 마주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혹시 지금 화장실에서 중요한 일을 해결하고 계신가요? 그럼 이 음악으로 힘을 보태겠습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천둥과 번개 폴카’입니다. 큰북과 심벌즈의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각각 천둥과 번개 소리를 묘사하는데요. 상쾌한 기분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나웅준 팟캐스트 ‘클래식 사용법’)
‘점잖던’ 클래식이 변하고 있다. 진입 장벽이 높고 어렵다는 편견을 뛰어넘어 가볍고 친근하게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중이다. 팟캐스트, 페이스북,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을 이용해 대중들이 클래식을 보다 쉽고 즐겁게 즐길 수 있도록 소개하는 이가 늘고 있다. 페이스북 ‘클래식에 미치다’(이하 ‘클미’) 개설자인 지휘자 안두현, 팟캐스트 ‘클래식 사용법’과 ‘지루한 클래식’을 운영하는 트럼페터 나웅준, 유튜브에서 ‘클언니’(클래식 언니의 줄임말)로 활동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도 그들 중 한명이다. 이들은 왜 연주자로만 머물지 않고 여러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클래식 크리에이터가 됐을까?
■ 클래식 대중화도 연주자 몫
양평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인 안두현은 2013년 아마추어 클래식 모임 활동의 일환으로 페이스북에 클미를 개설했다. 어려운 교향곡이나 협주곡을 짧고 쉽게 소개해주고 싶어서였다. ‘왕벌의 비행’ 같은 난이도가 높은 연주 영상 등이 클래식에 관심 없던 이들까지 끌어들이면서 클미는 29만명의 팔로어를 가진 대표적인 클래식 소통 창구가 됐다. 안씨는 “내가 음악을 하며 느낀 감정을 대중들이 함께 느꼈으면 했다”며 “클래식을 대중음악처럼 듣도록 길을 터주는 게 우리(연주자들) 역할이지 않을까 싶었다”고 했다.
트럼펫 연주자인 나웅준은 2년 전 팟캐스트 ‘지루한 클래식’을 시작했다. 김어준의 ‘나꼼수’처럼 기존 방송이나 매체에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재미있게 하고 싶어 반어적인 제목을 붙였다. 그러다 대중들이 클래식을 일상에서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날씨나 기분에 따른 상황별 음악을 추천하는 ‘클래식 사용법’까지 개설했다. 그는 “인간의 온갖 감정을 담아 오랜 시간 이어져온 클래식을 통해 많은 분들이 위로받고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은 이들에 비하면 온라인 플랫폼 ‘초짜’다. 최근 ‘핫’한 유튜브에 뛰어든 지 4개월밖에 안 됐다. “강연 내용을 담아 영상을 올렸는데 2030 여성들이 많이 보더라고요. 십대들까지 클래식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 싶어 유튜버가 됐어요.” 자극적인 내용이 있어야 눈길을 끄는 플랫폼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공연 에티켓을 알려주던 ‘얌전한’ 초기 3분짜리 영상을 지나 최근엔 ‘에이에스엠아르’(ASMR·조곤조곤 속삭이는 등 마음을 안정시키는 소리)와 ‘먹방’을 접목한 콘텐츠를 올렸다. 치킨 먹방을 한 뒤 배부르고 행복한 기분을 바이올린 즉흥 연주로 선보였다.
활약하는 플랫폼은 각기 다르지만 이들의 출발점은 똑같다. “좋아하는 음악을 더 많이 알리고 싶고, 클래식이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싶어서”다. “공연만으로는 클래식 대중화를 만들기가 쉽지 않아요. 피아니스트 조성진처럼 콩쿠르 우승 같은 폭발적인 이슈가 도움이 되지만 많은 사람을 포괄하려면 공연 갖고는 한계가 있거든요. 클래식을 아는 사람들만의 울타리를 쳐내고 열린 사고가 확산돼야 대중화가 이뤄지는 거죠.”(안)
‘클알못’ 일상 속으로 파고들어치킨 먹다 바이올린 즉흥연주24일 ‘청소년 음악회’로 뭉쳐 “클래식 재밌게 풀어보렵니다”
■ 클래식 듣기 어렵지 않아요
플랫폼은 각기 달라도 대중들이 갖는 관심은 비슷하다. 클래식은 ‘고급 문화’라는 인식이 강해 과시하기 좋다보니 딱히 좋아하진 않아도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은 많다. 공연장에 갈 때 옷을 어떻게 입고 가면 좋을지, 공연을 보다 박수는 언제 치면 되는지, 클래식 초보자가 듣기에 좋은 곡을 추천해달라는 등의 문의가 많다. “찜질방에서 들으면 좋은 음악 같은 것도 하트를 많이 받지만 이별했을 때, 나를 안아주고 싶을 때 듣는 음악 같은 감성적인 콘텐츠가 조회수가 많이 나와요. 다들 힘들고 위로가 필요할 때 음악을 많이 찾는구나 생각하게 되죠.”(나)
좋은 콘텐츠를 나누려면 소통에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정치적인 글을 올렸다가 팔로어 2천~3천명이 우르르 떨어져나간 적이 있다”(안)는 얘기에 “무플(댓글이 없는 것)보다 악플(악성 댓글)이 낫지 않으냐”(나)고 웃을 수 있는 시기가 됐지만 댓글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현재 운영하는 플랫폼의 지속 가능성, 운영방식과 관련한 고민도 깊다. “유튜브는 먹방, 애완동물 같은 콘텐츠를 많이 봐요. 원초적인 게 주로 선택되니까 치킨 먹방 뒤 연주 영상처럼 저도 타협하게 되는 게 많은 것 같아요.”(이) “다양한 플랫폼이 만들어지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자랑하는 크리에이터들도 늘었지만 정작 클래식이 인스턴트화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안)
그래도 여전히 클래식 대중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는 데는 모두 이견이 없다. 함께 무대에 서본 적이 없던 세 사람이 온라인을 벗어나 오는 2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2019 청소년을 위한 클래식 사용법 콘서트’로 함께 뭉친다. 나웅준이 사회자인 콘서트 가이드로 나서고, 이수민이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내레이션을, 안두현이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아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클래식 공연을 한다. “청소년 연주회에서 평소에 많이 듣지 못했던 연주곡들을 재밌게 풀어내려고 해요. 마지막 곡인 차이코프스키 ‘현을 위한 세레나데’에선 모두들 잠드는 게 목표입니다. 하하.”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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