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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자연과 조국을 사랑한 이타미 준, 경계에 집을 짓다

등록 2019-08-12 18:11수정 2019-08-13 10:44

[15일 개봉 다큐 ‘이타미 준의 바다’]

일본 땅에서 차별받으면서도
평생 한국인으로 살았던 유동룡
한국 자연미·일본 절제미 통해
인간적 따스함이 담긴 건축 지향
제주도 안덕면의 <풍 미술관>은 오두막 개념으로 한 쪽 입면이 활처럼 호를 그리는 나무 상자 모양으로 설계됐다. 나무판 틈새로 바람이 통과하면 강약에 따라 매번 다른 소리가 난다. 진진 제공.
제주도 안덕면의 <풍 미술관>은 오두막 개념으로 한 쪽 입면이 활처럼 호를 그리는 나무 상자 모양으로 설계됐다. 나무판 틈새로 바람이 통과하면 강약에 따라 매번 다른 소리가 난다. 진진 제공.
늘, 아버지는 말했다. “제사는 못 지내도 족보는 지켜라.” 그 뜻에 따라, ‘조센징’이라며 놀림받으면서도 ‘유동룡’(庾東龍)이라는 이름으로 꿋꿋이 학업을 마쳤다.

오랜만에 고향(경남 거창)으로 가는 차에서 어머니가 건넨 말씀은 가슴에 박혔다. “이 풍경은 산과 하늘과 그리고 땅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란다. 돌의 아름다움도 강과 물과 돌과 이끼가 있어 아름다운 것이지.”

일본에 살면서도 평생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한국의 자연과 경관을 사랑했던 건축가 이타미 준(1937~2011)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가 나왔다(15일 개봉).

이타미 준은 한국의 옛 건축물들을 답사하며 ‘한국성’에 대한 안목을 높이고 사랑을 키웠다. 안동 도산서원 전교당 마루에 앉은 모습. 진진 제공
이타미 준은 한국의 옛 건축물들을 답사하며 ‘한국성’에 대한 안목을 높이고 사랑을 키웠다. 안동 도산서원 전교당 마루에 앉은 모습. 진진 제공
영화에서 바다는 그가 자라난 일본 시즈오카의 바다이면서, <포도호텔> <수·풍·석 미술관> <방주교회> 등 여러 걸작이 태어난 제주의 바다이기도 하다. 이타미 준은 교토의 정원 ‘료안사’처럼 잘 짜인 일본의 절제미를 사랑하면서도 서울의 창덕궁 후원처럼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따로 두지 않은 한국의 자연미를 애정했다. 두 나라의 바다 모두 자연의 지형을 존중하고 재료의 본성을 살리며 인간의 따스함을 남기길 원했던 이타미 준의 지향과 통하는 바가 있다. 어쩌면, 바다는 뭍과 뭍 사이를 오가는 파도처럼 두 나라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경계인으로 살아야 했던 그의 운명을 상징하기도 한다.(설계사무소 설립 뒤 성(姓)인 유(庾)가 일본 활자에 없어 사업상 여러 불편을 겪자, 이타미 준은 생애 처음 이용한 공항 ‘이타미’와 절친인 작곡가 길옥윤의 ‘윤’에서 따와 예명을 지었다.)

제주도 안덕면의 <수 미술관>은 사각의 입방체에 제주도 형상의 타원형을 도려내어 하늘의 움직임을 수면에 투영시켰다. 진진 제공
제주도 안덕면의 <수 미술관>은 사각의 입방체에 제주도 형상의 타원형을 도려내어 하늘의 움직임을 수면에 투영시켰다. 진진 제공

수·풍·석 미술관 서정적 영상미에

건축가·가족 등 30여명 인터뷰 담아

삶과 예술 입체적으로 재구성

영화는 반 시게루, 구마 겐고, 최문규, 우경국, 전봉희, 정영선, 김용관 등 한국과 일본의 건축 관련 전문가들, 두 딸과 여동생 등 가족, 작품을 의뢰했던 건축주 등 30명 넘는 사람의 인터뷰를 통해 이타미 준의 삶과 예술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시간의 맛”을 중요시했던 그는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건축, 시간의 의미를 간직한 건축을 하고자 했다. 대학로의 옛 서울대 건물에서 나온 벽돌, 요코하마강에 가라앉은 목조선에서 가져온 나무를 이용해 지은 도쿄의 술집 <트렁크>, 훈증한 대나무를 건물 외관에 붙여 점점 검게 색이 변해가는 대나무에 골목길 벚나무의 사계절 표정이 드리우도록 한 도쿄 주택 <먹의 공간> 등이 대표적이다. 영화는 지붕의 곡선이 ‘일본의 선’이라고 비판받았던 온양미술관 왜색 논란도 다루며 그가 추구했던 ‘한국성’을 둘러싼 세간의 오해까지 조명한다.

서정성을 한껏 불어넣으며 영화의 뼈대를 이루는 것은 제주도의 풍광과 어우러지는 <수·풍·석 미술관> 3제로 나무 틈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집(풍 미술관), 반사 연못에 하늘이 담긴 집(수 미술관), 단단한 상자 안에 하트 모양의 빛이 들어오는 집(석 미술관) 세가지다. 일본 작품들에 담겨 있는 잉크처럼 짙은 어둠은 제주도 프로젝트를 거치며 “장엄한 우주의 발견”으로 승화된다.

건축영상을 전공한 정다운 감독과 김종신 피디는 몇년 전 제주도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수·풍·석 미술관>에 감동해 영화를 제작했다고 한다. 섬세한 화면과 깊이 있는 구도, 빛과 어둠의 대비로 이타미 준의 건축적 이상과 성취를 포착해 관객들을 돌과 바람의 공간으로 이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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