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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독립영화 구원할 두 여성감독의 비상

등록 2019-08-18 17:09수정 2019-08-18 21:10

<벌새> 김보라 감독, <우리집> 윤가은 감독 인터뷰

한국 독립영화는 위기인가?

통계상으론 그렇다. 올 상반기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 10위 안에 든 한국 영화는 단 세 편. 하지만 1위 <항거: 유관순 이야기>(115만8천명)와 10위 <로망>(7만9천명)은 대형 투자배급사 작품이라 엄밀히 말하면 중·저예산영화고, 9위 <교회오빠>(9만4천명)는 종교인을 타깃으로 한 종교영화였다.

아, 그렇다면 정말 위기인가?

아직 실망은 이르다. 8월, 독립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충무로의 미래를 새로 써 내려갈 두 명의 여성 감독이 온다. 전작 <우리들>로 일약 독립영화계의 스타로 떠오른 윤가은 감독이 신작 <우리집>으로 복귀하고, 전 세계 25관왕 신화를 쓴 김보라 감독의 <벌새>가 그 뒤를 따른다. 섬세하고 따뜻한 감성으로, 한국 독립영화계의 구원투수로 나선다.

<우리집>의 윤가은 감독. 롯데시네마 아르떼 제공.
<우리집>의 윤가은 감독. 롯데시네마 아르떼 제공.
아이들 영화 장인 “어린 배우 존중 신신당부”

22일 개봉 ‘우리집’ 윤가은 감독
부모 불화와 잦은 이사 속
우리집 지키려는 아이들 분투

‘아이들 영화의 장인.’

윤가은 감독(37)의 뒤를 따르는 수식어다. 휴일에 등교한 두 소녀가 보내는 하루를 담은 <사루비아의 맛>(2009), 아빠의 내연녀 집에 들이닥친 소녀의 이야기 <손님>(2011), 엄마를 대신해 콩나물을 사러 나선 7살 소녀를 따라가는 <콩나물>(2013), 11살 왕따 선과 전학생 지아의 관계에 천착한 장편 데뷔작 <우리들>(2016)까지…. 윤 감독의 영화는 늘 ‘아이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3년 만에 내놓은 신작 <우리집>(22일 개봉) 역시 세 아이가 주인공인 영화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윤 감독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영화는 너~무 하고 싶은데, 내가 할 수 있는 영화가 뭘까 고민을 참 많이 했어요. 하고픈 이야기,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저한테 유년시절은 늘 현재진행형인 거예요. 기억속에 알알이 박혀 있는. 저 어릴 땐 아이가 주인공인 영화가 많았는데, 요즘엔 없어요. 안 팔리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그 역시 ‘팔리겠어?’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팔린다는 걸 증명해 낸 작품이 전작 <우리들>이다. “<우리들>, <우리집>, 다음은 <우리나라>냐는 우스개 소리를 들었요. 하하하. <우리들>이 5만 정도 들었는데, 사람들이 떼돈을 번 줄 알더라고요. 상도 타고 작은 성공도 거뒀지만 달라진 건 별로 없어요. 여전히 중간중간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도 하고요. 그 아르바이트가 이젠 영화와 관련된 글쓰기나 작품 심사, 강의가 됐다는 점이 참 감사하죠.”

영화 <우리집>의 한 장면. 롯데시네마 아르떼 제공.
영화 <우리집>의 한 장면. 롯데시네마 아르떼 제공.
<우리집>은 부모님의 불화로 전전긍긍하는 초등학교 5학년 하나(김나연)와 이사 다니는 것이 지긋지긋한 유미(김시아)와 동생 유진(주예림)이 여름방학 동안 우연히 만나면서 소중한 ‘우리집’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면서도 전작에 견줘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더 강하다.

“<우리들>은 아이들 내부세계를 온전히 들여다보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 끝없이 이어지는 미묘한 갈등을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이 컸죠. 그에 견줘 <우리집>은 내부가 아닌, 아이들 세계를 흔드는 외부의 문제가 있어요. 그 기저엔 경제 문제도 있고, 불화 문제도 있죠. <우리들>이 4학년 교과서에 실리는 바람에 학교에서 이 작품을 굉장히 많이 보더라고요. 그런데 아이들이 볼 때 재밌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이번 영화는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도 같이 이입해서 볼 수 있는 영화였으면 해요.”

이번 영화를 찍으며 윤 감독은 촬영현장에서 모든 스태프에게 ‘어린이 배우들과 함께 하는 성인분들께 드리는 당부의 말’이라고 쓰인 A4용지를 한 장씩 건넸다. ‘어린이 배우들을 프로로서 존중하며, 성인과 동등한 인격체이자 삶의 주체로서 바라봐주세요’ 등 9개 문항이 빼곡히 적혔다.

“<우리들> 때 준비도 많이 하고 공부도 많이 했는데, 막상 현장에 가니 생각지 못한 변수도 많고, 새롭게 발견하는 것도 많았어요. 가장 후회된 건 어린 배우가 현장을 어떻게 느끼는지 묻지 못했다는 거였어요. 작게는 화장실 가는 문제부터 소녀들이 생리를 하는지, 안 하는지 등…. 일종의 반성문 의미도 있고, 이걸 까먹을 때 누가 나한테, 그리고 서로한테 알려주자는 의미로 만든 거예요. 다음 영화 때는 또 두 단계 정도 업그레이드 된 수칙이 나올 것 같아요. 하하하.”

어린 배우들과 함께 하니 오디션과 리허설은 모두 ‘즉흥극’과 ‘상황극’ 방식으로 자유롭게 진행한다. 힘든 점도 많을 터다. “아뇨. 이야기의 구조를 제가 반쯤 책임지지만, 반은 아이들 몫이죠. 아이들의 놀라운 재능은 제가 쓴 작위적인 대사를 자기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바꿔 소화한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외롭지 않아요. 믿고 기댈 구석이 있으니까요.”

여성감독의 계보를 이을 샛별로 불리는 윤가은 감독은 전작의 무게 때문에 힘이 들 때 선배 감독들의 조언이 피와 살이 됐다고 했다. “변영주 감독님, 이경미 감독님, 이정향 감독님, 다들 ‘장고하지 말고 빨리 만들라’고 하셨어요. ‘영화는 만들면서 알아가는 것’이라고요. 무엇보다 저를 ‘윤 감독’이라 불러주시고, 같은 여성감독이라며 보듬어 주실 때 너무 감사하죠.”

‘여성감독의 설 자리가 넓지 않은 충무로에서 자리 잡으려면 빨리 상업영화를 해야 하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큰 예산의 영화만 가치가 있는 건 아니니까요. 다양한 시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가치를 발견해 나가는 적극적 역할을 산업 스스로가 해야 되는데, 판이 천편일률적이잖아요. 언젠가 제가 규모가 큰 이야기가 하고 싶어질 때, 딱 맞는 기회가 오면 좋겠죠. 하고 싶은 이야기요? 음…. 아이들이 주인공인 대형 재난 영화? 하하하.”

영화 <벌새> 김보라 감독이 16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인터뷰 사진을 찍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영화 <벌새> 김보라 감독이 16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인터뷰 사진을 찍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영화제 25관왕 “스틸사진처럼 남은 우리 이야기”
29일 개봉 ‘벌새’ 김보라 감독

자전적 경험 바탕으로 지난 시대 소환
성수대교 붕괴 사건 개인 서사와 엮어

영화 <벌새>는 중학생 은희를 둘러싼 관계와 가족 이야기에서 시작해 낯익지만 불편한 한 시대를 관통하는 작품이다. “나의 이야기이자, 당신의 이야기이며,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김보라 감독(38)의 설명처럼, 마치 파노라마처럼 눈 앞에 펼쳐지는 한 편의 서사시 같은 느낌이랄까. 1994년 한국사회를 뒤흔든 성수대교 붕괴사건을 한 소녀의 개인적 서사에 촘촘하고 시적이면서도 날카로운 감성으로 엮어낸 이 작품은 전 세계 영화제에서 25관왕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개봉을 앞두고 동작구 사당동에서 만난 김보라 감독은 ‘장편 데뷔작으로 홈런을 친 기분’을 묻자 “올해만 20번 넘게 비행기를 탔고, 수많은 날을 호텔에서 보냈다. 잘 돼서 좋다는 감정은 일에 눌려 실감도 잘 안 난다”며 웃었다.

왜 하필 1994년이었을까?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마음먹을 때부터 1994년으로 결정했어요. 당시 저도 중학생이었는데, 굉장히 과도기적인 시기였죠. 88올림픽이 끝나고 서구의 주목에 얼얼하고 붕 떠 있던 시기. 서구 문명이 물밀듯 들어와 미국 브랜드 옷을 입고 피자를 먹는 것이 쿨하다 여겼던 시기. 그만큼 선진국에 대한 열망이 컸고, ‘빨리빨리’ 새로운 것을 추구하던 중에 성수대교가 붕괴했죠. 그 집단적 경험이 제 기억 속에도 스틸 사진처럼 남아 있어요.”

영화 <벌새>의 한장면.
영화 <벌새>의 한장면.
영화는 이런 시대적 공기와 주인공 은희의 사적 이야기를 조밀하게 직조한다. 영화 속 은희는 사랑이 고픈 아이다.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공부 잘하는 오빠에 치이고, 사고만 치는 언니에 뒷전으로 밀린다. 꿀을 찾기 위해 1초에 90번 날갯짓을 해 4000㎞까지 이동하는 작은 벌새처럼, 은희 역시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며 끊임없이 날개를 파닥인다. 그런 은희 앞에 자신을 이해하는 동네 학원 한문 선생님 영지(김새벽)가 나타난다. “<벌새>는 은희가 매달렸던 남자친구·후배·절친·영지 선생님과의 관계가 ‘붕괴’하는 시점에 ‘성수대교 사건’을 배치함으로써 영화의 구조적·서사적 완결성을 획득”한다.

영화 속 대사 한 마디, 장면 하나하나의 디테일과 완성도가 높은 것은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나서 일까? “대치동 살았고, 방앗간을 했고 …. 가족의 배경은 제 것이기도 해요. 하지만 시나리오 완성 과정에서 수정 원고를 10번이나 써냈고 굉장히 수학적으로 면밀히 계산하며 각색했기에 자전적이냐는 질문의 답은 ‘예스이면서 노’예요. 제 감정의 밀착도가 높았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감독 개인에게 이번 작품을 만드는 시간은 ‘치유의 과정’이기도 했다. “내 고통이 특별할 것도 없지만 특별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게 중요해요. 내 이야기에서 출발하면 늘 감정적으로 빠지는 게 함정이라 ‘건강한 거리 두기’를 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 과정에서 가족과 대화도 많이 하고, 그룹 상담도 하고, 소통도 했죠. 그 자체가 너무 감사해 영화가 얻은 좋은 반응은 되레 보너스 같아요.”

촬영 과정에선 시대를 되살리는 미장센 구성이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예산이 3억이 채 안 되다 보니 발품을 팔며 아주 꼼꼼하고 꾸준하게 소처럼 일해야 했어요. 은희의 노란색 베네통 가방은 중고나라에서 간신히 구했고, 옛날 교과서를 구하기 위해 헌책방을 이 잡듯 뒤지기도 했어요. 티가 안나겠지만 오빠가 듣는 영어 테이프도 94년 당시 것이에요. 영화 속 배경 중 오래된 새서울병원을 망원동에서 찾아낸 건 기적이었죠.”

영화에는 엄마를 대하는 딸로서 가부장제 치하의 여성으로서의 ‘날 선 관점’도 번뜩인다. “캐나다 판타지아 영화제에서 ‘페미니즘 영화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정치적 신념을 중심에 두고 영화를 만들진 않지만, 여성이나 소수자의 관점이 배어나는 건 당연하겠죠. 오히려 여성연대의 서사를 이렇게 좋아해 주시는 게 놀라워요. 그만큼 목말라 있다는 거죠.” 여성감독으로 산다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는다는 그는 “널린 게 남성의 시선이다 보니 여성감독의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을 강조하고 싶다”면서도 “도처에 남성뿐이라 여성감독이 성공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과 함께 스스로를 한계 짓는 풍토가 아쉽기는 하다”고 덧붙였다.

러닝타임의 한계로 영화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는 시나리오집으로,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만화가이자 작가인 엘리슨 벡델(벡델 테스트를 만든), 여성학자 정희진, 영화평론가 남다은 등이 함께한 에세이집으로 개봉과 함께 출간할 예정이다. 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을 묻자 “여성의 관점으로 역사를 다룬 서사시 같은 영화나 엄마와 딸의 원형적이며 첨예한 관계를 다룬 영화를 해보고 싶다. 예산이 큰 작품에 도전해 돈 신경 안 쓰고 연출에만 집중하고픈 마음도 있다”고 고백한다. 오늘보다 더 바쁠 내일을 준비하는 김보라 감독의 날갯짓도 ‘벌새’만큼 맹렬히 파닥이고 있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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