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 박장대소 코미디부터 가슴을 울리는 드라마까지 다양한 장르의 프랑스 연극들이 관객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4일 개막한 국립극단의 <스카팽>은 셰익스피어에 비견되는 프랑스 극작가 몰리에르의 <스카팽의 간계>를 원작으로 한다. 재벌가인 아르강뜨와 제롱뜨의 자식들은 부모의 정략결혼 계획을 깨고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 영리하지만 짓궂은 하인 스카팽의 도움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스카팽은 탐욕스럽고 어리숙한 지배계층을 조롱하며 웃음을 안긴다.
국립극단은 원작과 달리 작가 몰리에르를 화자로 등장시킨다. 몰리에르는 극 초반에 자신과 작품, 등장인물을 직접 소개하면서 “프랑스식 코미디는 한국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오 라라! 오 라라! 여러분들의 그 생각을 바꿔줄 작품을 소개합니다”라며 흥을 돋운다. 프랑스 희극에 대한 편견을 깨려는 연출자의 의도된 대사다. 임도완 연출가는 “17세기 작품에서 동시대성을 느낄 수 있도록 유랑극단 같은 라이브연주도 넣고 한국 사회 현실도 녹이며 소통에 주력했다”고 했다. 29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극단 산울림은 극작가 겸 배우 파비오 마라의 연극 <앙상블>을 국내 초연한다. 2015년에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첫선을 보인 작품이다.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등 프랑스 고전들을 꾸준히 선보여온 산울림이 올해 창단 50주년을 맞아 선택한 최신작이다. <앙상블>은 지적장애가 있는 35살 아들을 시설에 맡기지 않고 평생 돌봐온 어머니와 그런 가족을 못 견뎌 오랜 시간 가출했던 딸이 돌아와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장애가 가족의 문제인지 사회의 문제인지까지도 생각해보게 하는 현실적이면서 따뜻한 작품이다. 19일~10월20일, 서울 소극장 산울림.
극단 76은 부조리극의 대표 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연극 <엔드게임>을 선보인다. 프랑스어 원제목은 <승부의 종말>로 1957년에 발표된 작품이나 베케트가 영어 제목으로 썼던 <엔드게임>을 공연 제목으로 정했다. 쓰레기통인 드럼통에 갇힌 늙은 부부, 하반신 마비가 된 남자와 절뚝거리는 다리로 그를 수발하는 하인이 등장한다. 마치 사라져가는 세계의 마지막 생존자들처럼 보이는 이들이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베케트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의 후속편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22일까지 서울 소극장 알과 핵.
요즘 핫한 프랑스 유명 극작가 파스칼 랑베르의 연극 <사랑의 끝>은 사랑이 끝난 남녀의 전쟁 같은 이별의 순간을 담았다. 남자와 여자의 시선으로 두 편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독특한 형식의 작품이다. 연극 <빛의 제국>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 문소리와 지현준이 작품에 반해 직접 국내 프로덕션을 알아보고 무대에 올렸다. 27일까지 서울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
프랑스 희곡 번역가인 임수현 서울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는 “프랑스 연극은 표현이 상투적이지 않고 섬세하면서 상징적인 언어의 힘을 가지고 있다”며 “프랑스는 연극의 역사가 깊어 다양한 사조와 함께 대작가들을 배출했는데 근래에는 무거운 주제도 쉽게 풀어 관객과 소통하려는 모습이 보인다”고 짚었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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