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시간에 쫓겨 몰아 보기 쉽지 않은 시리즈 드라마를 ‘뽀개기’ 딱 좋은 연휴다. 무엇을 볼까. 드라마 ‘시청’ 장인 3명이 추천하는, 망설이고 있다면 이 시리즈를!
이재익의 픽! ㅣ
‘체르노빌’ ‘더 보이스’
1년도 안 남았다. 우리 올림픽 대표팀은 도쿄올림픽에 참가하고, 후쿠시마산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게 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지 벌써 8년이 넘었고 일본 당국에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데, 너무 호들갑 떠는 거 아냐? 혹시 이런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라면 꼭 보시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에 최악의 원전 사고로 꼽혔던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극화한 5부작 드라마
<체르노빌>(왓챠). 핵에 대한 문제의식이 별로 없는 분들이 보면 더 좋다. 이 드라마를 보고 나면 핵발전에 대한 경각심이 극도로 높아지니까.
이렇게 주제의식을 앞세우는 영화나 드라마는 재미가 떨어지곤 하는데 웬걸, <체르노빌>은 그 어떤 장르물보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힘이 있다. 대본에서도 촬영에서도 별다른 기교 없이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힘이 대단하다. 정치인, 핵물리학자, 핵발전소 직원, 소방대원, 군인, 인근 주민 등등 여러 인물의 시선과 이야기가 교차되는데 지루할 틈이 없다. 나의 한줄 평은 이거다. 지옥에서 건져 올린 교육용 스릴러.
히어로 무비는 이제 지겹다. 정작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히어로는커녕 멀쩡한 인간조차 많지 않은 것 같은데 뭔 놈의 히어로가 이렇게나 많은지. 그러나
<더 보이스>(아마존 프라임, 8부작)에 등장하는 히어로들은 신선하다. 앞에서는 슈퍼 히어로지만 뒤로는 슈퍼 악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썩어빠진 슈퍼 히어로들을 응징하는 보통 혹은 보통보다 더 찌질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핵심이다.
8부작 드라마인데도 마블 영화 못지않게 때깔이 좋다. 시나리오 탄탄하고 배우들 연기도 좋고 컴퓨터그래픽은 꼼꼼하고 편집도 감각적이다. <체르노빌>과 달리 반가운 얼굴도 여럿 등장한다. 다만, 선정성과 폭력성이 29금 수준. 마약을 하는 장면도 거리낌 없이 나온다. 대사 또한 가족과 함께 보면 민망한 욕설이 가득하므로 반드시 어른들만 혼자 보시길. 나의 한줄 평은, 아마존에서 제조한 40도짜리 슈퍼히어로 폭탄주.
에스비에스 피디·정치쇼 진행자
유선주의 픽! ㅣ
‘굿 플레이스’ ‘좋아하면 울리는’
한가위 즈음이면 보이지 않는 ‘조상님’을 소재로 한 우스갯소리가 오간다. 차례 지낼 때 방문을 조금 열어두는 관습을 두고 조상님이 창문으로는 못 오시는지, 방충망을 통과할 수 있는지 의문이 이어진다. 이승을 떠난 자들이 머무는 곳에 관한 상상은 시트콤 소재가 되기도 한다. 미국 <엔비시>(NBC)에서 제작한
<굿 플레이스>는 생전에 했던 모든 말과 행동이 불러일으킨 선과 악을 점수로 계산하는 시스템을 다룬 판타지 시트콤이다.
높은 점수를 얻은 소수의 인간이 솔메이트를 만나 영원한 삶을 즐기도록 설계된 세계, ‘굿 플레이스’의 거주민이 된 엘리너 셸스트롭(크리스틴 벨)은 첫날부터 괴변을 일으킨다. 만취한 셸스트롭이 파티의 칵테일새우를 독차지하고 주먹으로 케이크를 부수면 하늘에 거대한 칵테일새우가 날아다니고 광장엔 싱크홀이 발생하는 식이다. 본래 ‘배드 플레이스’에서 개인 맞춤형 고문을 받아야 하는데 착오로 굿 플레이스에 배정되었기 때문이다.
배려나 양보는 일생 해본 일 없고, 눈앞의 쾌락을 좇느라 주위의 신뢰를 간단히 저버렸던 인간이 죽어서 새사람이 될 수 있을까? 존재와 본성에 관한 의문을 경쾌하게 풀어가는 사후세계 시트콤 <굿 플레이스>는 넷플릭스에 시즌3까지 공개됐다.
반경 10m 안에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때 알람을 울리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있다면, 사랑의 행태는 어떻게 변할까? ‘썸’이나 ‘밀당’도 낡은 관습이 될까? 천계영 작가의 웹툰이 원작인 넷플릭스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의 8부작 첫 시즌이 공개됐다.
연애 감정을 측정하는 앱 ‘좋알람’이 출시된 세상. 어떤 연인들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달콤함을 맛보고, 다른 연인들은 이미 식은 감정을 숨길 수 없게 된다. 감춰왔던 마음을 앱 때문에 들키고 나서야, 자기 본심을 깨닫기도 한다. 한가위니까, 상상을 조금 더 보태본다. 차례상 반경 10m 안에 조상님이 오시면 반응하는 앱이다. 이름도 정했다. ‘조상 오면 울리는’.
ESC 객원기자·드라마 칼럼니스트
김은형의 픽! ㅣ
‘빅 리틀 라이즈’ ‘데리 걸즈’
미국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해변 몬터레이에 위치한 부유한 동네. 이곳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만난 엄마들. 과장된 호의와 어색한 친밀감 사이로 삐져나오는 경쟁심과 적대감. 그리고 얼마 뒤 파티장에서 누군가 추락사하고 다섯명의 여성이 여기에 연루된다. 중산층 여성의 위선과 저마다 숨겨놓은 비밀이라는 얼개는 언뜻 <위기의 주부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빅 리틀 라이즈>(HBO 제작, 시즌1~2, 왓챠, 비티브이)는 동시대의 문제에 깊숙이 다가간다. 리스 위더스푼과 공동 제작한 니콜 키드먼이 연기하는 셀레스트는 변호사 이력도 포기하고 쌍둥이 아들을 키우는 헌신적이고 우아한 엄마지만 남편에게 무참하게 맞고 산다. 새로 이사 온 싱글맘 제인(셰일린 우들리)은 강간의 악몽과 여전히 싸우고 있다. 여기에 워킹맘과 전업맘의 갈등, 자신의 욕망을 자식에게 투사하는 헬리콥터맘 등 여성들의 삶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보여주는데 시즌2에는 ‘시어머니’까지 가세한다. 시어머니로 등장하는 메릴 스트립과 니콜 키드먼, 리스 위더스푼, 로라 던까지 한 화면에 들어가 내뿜는 엄청난 기운의 황홀경은 앞으로도 찾아보기 힘들 할리우드의 여성 ‘어벤져스’의 ‘엔드게임’이다.
폭탄 테러 위협과 중무장한 군인들이 상주하는 1990년대의 북아일랜드. 여기에도 소녀들의 어벤져스가 있었으니 폭탄 발견 뉴스에 학교를 빼먹을까 호들갑 떨고 검문하는 군인들을 유혹해보고자 하는, 변두리 도시 데리의 고등학생
<데리 걸즈>(영국 채널4 제작, 시즌1~2, 넷플릭스)다. 무겁기만 한 그 시대의 공기도 누를 수 없는 아이들의 과도한 생기와 그로 인해 벌어지는 기절초풍할 사건 사고들, 강아지가 사라져서 시험을 망칠 것 같다는 딸의 하소연에 “앞마당에 네 무덤을 파놓고 조용히 기다릴게”라고 응수하는 엄마와 식구들의 아웅다웅, 새털 같은 일상 속으로 불쑥 들어오는 역사의 저릿한 아픔까지 미드에서는 느끼기 힘든 동질감을 준다. 크랜베리스를 비롯한 90년대 인기곡들을 듣는 즐거움도 뿜뿜.
<한겨레> 문화에디터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