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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넷, 투표 조작 논란에도 또 경연 프로…반성 없는 공생관계

등록 2019-10-17 15:51수정 2019-10-17 19:38

엠넷 ‘아이돌학교’ ‘프듀 X 101’…
투표 조작 논란으로 수사 중에도
새 오디션 ‘투 비 월드클래스’ 방영

참가자 인권 침해·수익 불평등
불공정한 프로그램 시스템에도
‘검증된 흥행 포맷’에 제작 잇따라

“화제성·시청률·수익 보장돼
방송사·소속사 포기할 수 없어
정부차원 제도적 제재 필요”
방송 화면 갈무리
방송 화면 갈무리
<프로듀스 엑스(X) 101>(이하 <프듀 엑스 101>) 투표 조작 논란에 휩싸인 <엠넷>은 지난 4일부터 또 다른 경연 프로그램 <투 비 월드클래스>를 방송 중이다. 조작 의심을 받는 멤버들이 포함된 그룹 ‘엑스원’ 데뷔를 강행한 데 이어 또다시 경연 프로그램을 내놓은 것을 두고 반성 없는 행태라는 비판이 나온다.

■ 다른 프로그램으로 번진 조작 논란

<프듀 엑스 101> 투표 조작 의혹은 지난 7월 최종 11명을 선발한 마지막 방송 직후부터 제기됐다. 유력 데뷔 주자로 점쳐진 연습생들이 탈락하고 의외의 인물들이 데뷔조에 포함되면서 논란이 벌어졌고, 순위 간 득표수 차이가 일정하게 반복되는 경우가 많아 조작 의혹이 일었다. 이에 시청자 260명은 ‘프로듀스 엑스 101 진상규명회’를 구성해 제작진과 일부 소속사를 사기 혐의로 고소하고,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 사건을 형사6부에 배당한 상태다.

논란이 계속되자 엠넷도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경찰은 일부 연습생의 최종 투표수가 탈락군에 해당했지만 투표수 조작을 통해 데뷔조에 들어간 사실을 확인했다. 탈락군에서 데뷔조로 순위가 뒤바뀐 연습생은 2~3명 정도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담당 피디 등 제작진을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은 애초 네번째 시즌인 <프듀 엑스 101>만 수사하려고 했으나 대상을 전 시즌으로 확대했고, 또 다른 경연 프로그램 <아이돌학교>의 투표 조작 논란도 수사하고 있다.

엠넷의 투표 조작 의혹은 <프듀 엑스 101>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 <아이돌학교> 방영 초반 1~2위를 다투던 연습생 이해인이 최종 11위를 기록하며 데뷔가 무산되자, 엠넷 쪽이 특정 연습생의 투표수를 고의로 낮추고 누락시킨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프로그램 자체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탓에 당시엔 흐지부지 넘어갔지만, 이해인이 최근 조작 의혹에 대한 구체적 증언을 하면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1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투표 조작이 사실로 판명될 경우 과징금 부과 등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 불공정한 경연 프로그램 제재해야

투표 조작 여부를 떠나 경연 프로그램에서의 인권침해 문제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문화방송>(MBC)이 지난 15일 방송한 <피디수첩>에서는 경연 프로그램 촬영 과정에서 인권침해도 이뤄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프듀 엑스 101>에 출연한 한 연습생은 “숙소에 들어가면 휴대폰을 반납해야 하고, 화장실도 똑같은 시간에 허락받고 가야 했다”고 말했다. <아이돌학교>에 출연한 연습생들한테서 “두달 동안 하혈을 했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춤만 추고 그러니 쓰러진 애들이 많았다”는 등의 주장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엠넷은 지난 4일부터 <투 비 월드클래스>라는 경연 프로그램을 또 방영하고 있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경연 프로그램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성공이 검증된 포맷이기 때문이다. 한 지상파 예능 피디는 “<슈퍼스타케이>부터 <프로듀스> 시리즈까지 대부분의 경연 프로그램이 화제성이나 시청률 측면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방송사에서는 포기할 수 없는 포맷이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한 가수나 아이돌그룹이 성공했기 때문에 연예기획사 입장에서도 출연을 원한다”고 말했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프로듀스> 시리즈는 연습생 때부터 팬덤을 만들어야만 인기를 끌 수 있도록 아이돌 생태계를 바꿔버렸다”며 “실력 측면에서 전혀 준비가 안 됐어도 연습생 때부터 얼굴을 알려야 하기 때문에 출연시킬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박희아 대중음악평론가는 “<프로듀스> 시리즈는 대중들에게 좋은 노래와 춤 실력으로 ‘완성’된 모습이 아니라 실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성숙되지 못한 연습생의 신분으로 평가받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도록 만들었다”며 “오직 데뷔만을 목표로 하는 연습생들은 인권침해, 수익금 배분, 지나치게 많은 스케줄 등 불합리한 부분에 대해선 설명도 듣지 못하고, 잘 알지 못하고 출연하게 된다”고 말했다.

연습생의 꿈마저도 상품으로 생각하는 소속사와 경쟁 과정마저도 상품으로 기획하는 방송사가 공생하는 한 경연 프로그램은 계속 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는 “오디션을 통해 발굴하고 스타를 키우는 과정을 이윤화하고, 음원을 발매해서 수익을 얻고, 그 이후에 데뷔하는 팀의 활동 수익도 얻어갈 수 있는데 방송사 입장에선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소속사들 입장에서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개별 멤버들이 얻은 인기를 발판 삼아 자사가 준비하던 팀을 데뷔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조금의 불의를 참으면 더 큰 성과로 돌아올 거라는 계산을 못 버린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유관기관에서 공정성과 공익성을 지키지 않는 경연 프로그램에 대한 제도적 제재를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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