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일은 양준일.’
얼마 전만 해도 ‘탑골 지디(GD)’라는 수식어 없인 설명되지 않던, 무명에 가까웠던 양준일이 데뷔 28년 만에 자신의 이름만으로 설명되는 순간을 맞았다. ‘뉴트로 열풍’을 타고 유튜브 과거 영상 등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양준일은 이제 신드롬이 됐다. 첫 팬미팅은 예매를 시작하자마자 2회 전석이 매진됐다. 대중은 양준일의 어떤 면에 열광하는 걸까?
“나의 매력을 스스로 물어본 적도 없고, 내가 감히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내 매력을 파악하게 되면 내 머릿속에 공식이 생기고, 그러면 공식대로 행동할 것 같아서입니다.” 31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 대양홀에서 팬미팅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양준일이 말했다. 자신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내놓은 답이다.
그의 말마따나 ‘공식 없음’이야말로 매력의 근원이다. 데뷔곡 ‘리베카’(1991)는 당시 미국에서 인기를 끌던 ‘뉴 잭 스윙’을 가져온 것이었다. 춤 또한 잘 짜인 안무가 아니라 느낌 가는 대로 춘 것이었다. 그는 카메라 워킹도 신경쓰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무대를 휘저었다. 이런 양준일의 음악과 춤은 당시의 ‘공식’에는 맞지 않았기에 외면받았다. 하지만 시대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점이 오히려 지금에 와서 재평가받고 있다.
한국이 자신을 외면했는데도 끊임없이 그리워했다는 점도 대중의 마음을 울렸다. 앞서 <제이티비시>(JTBC) 프로그램 <슈가맨3>에 출연해 한국에 대한 여전한 사랑을 표현했던 양준일은 이날도 그런 마음을 전했다. 그는 “한국에서 힘든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미국에선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한 무언가를 한국에서 느꼈기 때문에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계속 한국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극적인 ‘서사’도 대중의 마음을 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미동포 출신으로서 활동 당시 좌절하고 미국에서 서빙 일을 하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 극적인 상황, 양준일을 받아들이지 못한 당시 한국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 등이 맞물려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는 “더는 우리 사회에서 비운의 천재를 만들 수 없다는 대중의 바람과 양준일의 극적인 서사가 맞물려 신드롬을 일으켰다”고 분석했다.
예정에 없이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양준일은 “현실에 무릎을 꿇으면 오히려 그 일이 마무리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20대 양준일에게 ‘네가 인생에서 원하는 그것을 내려놓으면 마무리가 된다’고 말하고 싶다. 20대도 제 계획대로 안 됐는데, 50대인 지금도 제 계획과 다르게 가고 있다”며 웃었다.
양준일은 책과 음반을 내놓으며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새 노래가 아닌 예전 곡을 재편곡·재녹음해 엘피(LP)로도 발매할 예정이다. 양준일은 오랫동안 자신을 기다려준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스스로를 다잡았다. “팬들을 향한 내 고마운 마음이 스스로 변하지 않길 소망해요.”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