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슬로라이프의 도시, 타이 치앙마이

치앙마이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 ‘슬로라이프’.
지난달로 여섯 번째 타이 치앙마이를 다녀왔다. 2008년부터였으니 2년에 한 번꼴로 다닌 셈이다. 첫 치앙마이행은 그곳에 정착한 선배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방콕, 카오산로드가 슬슬 지겨워지던 때 배낭 하나 메고 세계를 떠돌던 선배를 단번에 눌러앉게 한 치앙마이가 궁금했다. 그렇게 도착한 도시에 ‘취저’(취향저격)를 당하곤 지금까지 때만 되면 치앙마이를 찾고 있다. 도시의 모양새를 갖췄지만 번잡하지 않고, 도시가 가져야 할 편리함(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는 대형 쇼핑몰이라든지)과 지방의 소박함(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치앙마이만의 사설 버스 시스템인 송태우라든지)을 모두 가진데다, 고층 건물이 거의 없어 도심 어디서든 고즈넉한 지평선을 감상할 수 있고, 더위보다 추위에 더 취약한 나에게 딱 적당한 온도를 가진 도시. 최고로 애정하는 과일인 망고스틴과 두리안으로 배를 채우고, 맥주와 찰떡궁합을 이루는 안주가 거리에 넘쳐나고, 예술가의 도시답게 밴드의 라이브 공연이 열리는 바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며, 낮이든 밤이든 시장이 열리는 도시. 차로 30분이면 대부분 이동이 가능한 적당한 면적과 도심에서 20분 정도만 나가도 천혜의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곳. 왕실 별장이 있을 정도로 타이에서 서늘한 기후를 가진 편이라 한겨울 밤에는 선선한 기운까지 느껴지는 곳. 치앙마이에서 내 일정은 계절과 상관없이 대부분 비슷하다. 공항에 도착하면 대략 밤 10시.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돼지튀김과 찹쌀밥, 맥주를 산다.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나 님만해민으로 나가서 오후 3시까지만 영업하는 쌀국숫집에서 비빔쌀국수 두 그릇을 먹고, 월드 라테아트 챔피언 바리스타가 있는 카페에서 라테를 한 잔 마시고, 책방 북스미스에 들러 새로 나온 책과 아트 포스터를 구경하고, 골목을 돌아다니며 아기자기한 가게를 구경하면서 산책한다. 나이트바자르에서 저녁을 먹고 시장 한 바퀴 구경한 뒤 숙소로 컴백(귀가). 대표 지역 시장인 와로롯 시장에서 각종 민속용품, 수공예품과 예쁜 천을 구경하고 근처 허름한 식당에서 식사하고 타이 향신료와 소스를 산다. 치앙마이 올드타운에선 타패게이트 근처 생선구이집에서 식사하고 사원과 거리를 산책한다. 일정의 마지막 이틀 정도는 수영장이 딸린 호텔에서 수영도 하고 책도 보면서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낮 시간을 보낸다. ‘1일 1마사지’도 빼먹지 않는 코스다. 트레킹(도보여행)을 하거나 액티비티(스포츠활동)를 즐기거나 골프를 치는 등 ‘격렬한’ 활동은 하지 않는다. 미리 일정을 정하지 않고 그날의 몸 상태와 기분에 맞게 즉흥적으로 코스(경로)를 짜지만 대부분 항상 가는 가게, 자주 가던 맛집에서 순서만 달리해 방문한다. 치앙마이에 많이 가도 질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빠르지 않지만 느리지도 않게 자신만의 호흡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속도를 맞춰서 걷기 때문이 아닐까. (게으른 여행자라는 고백이 너무 장황하다.) 뭐니 뭐니 해도 저렴한 물가에 맛있는 음식이 가장 크게 작용하겠지만. 지난 여행 마지막 날에 생애 처음으로 집라인을 탔다. 함께 간 일행은 손가락뼈가 부러지는 상처를 입고 여행 마지막 일정을 병원 응급실에서 보냈다. 거봐, 치앙마이에선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쉬는 거라니까. 글·사진 장인숙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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