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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로컬’이란 미끼로 미국 낚은, 봉준호의 ‘가장 완벽한 계획’

등록 :2020-02-14 14:39수정 :2020-02-1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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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스앤젤러스 로이터/연합뉴스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스앤젤러스 로이터/연합뉴스

이거 실화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4개 부문 상을 휩쓸었다. 칸이나 베를린, 베네치아(베니스)의 영화상에서 한국 영화가 수상한 적은 꽤 있었지만, 주로 할리우드 대작 영화들이 받아온 아카데미상을 4개씩이나 받은 것은 상상치 못한 이변이다. 아시아 감독이 자국 언어와 자국 배우로 자국에서 찍은 영화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건 최초이다. 봉준호 감독도 얼떨떨한 모양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차차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겠고, 일단 오늘은 기뻐하자”라고 말할 만큼. 그렇다면 좀 따져보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일단은 영화의 내적인 가치를 무시할 수 없다. 영화 외적으로도 한국 대중문화의 위상이 달라진 점과 ‘로컬’을 벗어나기 위한 아카데미협회의 몸부림이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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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의 미학

영화 내적으로 <기생충>은 놀라운 주제의식과 뛰어난 형식미를 보여준다. 누구나 알아보듯, 영화의 주제는 양극화다. 계층이동 사다리가 걷어차인 세습자본주의 사회이자, 자산의 대부분을 부동산이 차지하는 한국 사회에서 집은 곧 사회적 신분이다. 오죽하면 ‘부동산 계급론’이라 할까. 영화는 계급 문제를 지상·반지하·지하 3개의 수직 공간으로 나눠서 시각화했는데, 이는 대단히 명쾌한 영화적 작법이다. 또한 영화는 ‘혐오’의 맥락을 짚어낸다. “그는 선을 넘지 않지만, 냄새가 선을 넘는다”는 말은 그의 행위가 아니라, 그의 존재가 문제가 됨을 말해준다. ‘지하 냄새’는 단순히 어떤 장소의 냄새가 아니다. “지하철 타고 다니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냄새”라는 말을 통해 ‘가난이 몸에 밴 어떤 족속의 냄새’가 된다. 이처럼 계급과 인종에 대한 복잡한 사유를 구체적인 감각으로 표현하는 것은 굉장한 기법이다.

영화는 떡 벌어진 양극화와 계층이동이 더는 불가능해졌고, 가난 혐오는 인종 혐오의 양태를 띠게 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동안 한국은 ‘국뽕’이라는 국가주의 환상을 통해 이를 은폐하고 봉합해왔지만, 영화는 더 이상 하나의 대한민국이 아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이것은 한국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대화된 사회와 계급 문제가 인종 혐오와 착종된 사회에서 모두 예민하게 공감할 문제다. <기생충>이 칸에 이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굉장한 호평을 얻어낸 이유는, 기본적으로 세계의 불평등 문제를 관통하는 도저한 주제의식과 그것을 풀어낸 방식의 명쾌함에 있다.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한 &lt;기생충&gt;의 영화 속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의 영화 속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는 언어가 통하지 않고 사물에 얽힌 구체적인 맥락을 몰라도 관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얼마나 적나라한 상징을 쓰는가. 또한 시나리오가 독창적이며 기존 할리우드 장르물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가령 영화에는 악인이 나오지 않는다. 부자든 빈자든 각자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보려는 사람들이지만, 이들이 미묘한 순간에 혐오와 분노와 각성에 이르면서, 상상할 수 없었던 결과가 초래된다. 이는 봉준호 감독이 장르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장르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역량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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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송’과 미국 선망 

영화는 외국 관객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지만 서구, 특히 미국 관객이 환호할 만한 요소를 지닌다. 사실 계급 문제가 인종 혐오와 착종됐고 복지제도에 기생하는 ‘복지충’에 대한 혐오가 강한 나라는 미국이다. 거기에 영화에는 한국 사회가 품은 미국 사회에 대한 선망이 강하게 드러났다. 가령 “제시카~ 일리노이~”로 나가는 노래나 상류층 여성이 영어를 섞어 쓰는 것 등은 한국 사회가 미국을 하나의 준거집단으로 삼고 있음을 잘 드러낸다. 주인집 아들 ‘다송’이 하필 인디언 놀이를 한다는 것도 상징적이다. 인디언 놀이는 미국 백인의 정서를 체화한 것이자, 한편으로 타자를 잔인하게 학살한 역사를 에둘러 은유한다. 또한 봉준호는 미국에서 그리 낯선 인물이 아니다. 영화 <설국열차>와 <옥자>를 통해 그의 비판의식을 접한 관객이 많다. 그런 봉준호 감독이 지난 박근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도 미국 언론에선 일견 흥미로워한다.

이 모든 영화 내적인 요소에도, 한국 대중문화의 위상이 크지 않았다면 수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해 미국 사회에서 한국 대중문화는 이미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한국 관객을 향한 마케팅에 주력할 만큼 한국 영화시장 규모가 크다. 자국 영화가 1년에 수백 편씩 만들어지고 영화시장의 주도권을 할리우드 영화에 내주지 않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이런 탄탄한 내수시장이 국제 무대에서 한국 영화의 위상을 받쳐주는 셈이다. 또한 아카데미상 시상식 내내 로비와 마케팅에 힘쓴 거대 자본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긴 수상 소감을 두고 혹자는 영화 주제와 상반되는 아이러니한 장면이라고 말했지만, 이는 영화가 감독의 작가정신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기술과 자본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간과한 반응이다.

하지만 이 놀라운 사건의 가장 큰 원인은 아카데미 시상식 내부에 있어 보인다. 그동안 “백인 위주, 남성 위주”라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꿈쩍도 않던 아카데미협회가 봉준호 감독의 “로컬” 발언에 ‘움찔’한 모양이다. 미국인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제국의 중심’이며, 미국 안에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에 미국을 벗어나지 않아도 충분히 세계적이라고 생각해왔다. 한 번도 ‘로컬’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그들이 ‘로컬’이란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을까. 여기에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이라는 봉 감독의 뼈 있는 조언은 문화 다양성을 추구한다고 스스로 믿어왔던 미국 관객이 사실은 자막 때문에 외국 영화는 거의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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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능가하는 ‘블랙코미디’

이를테면 봉준호는 미국인의 문화적 자존심에 ‘낚싯바늘’을 드리웠고, 아카데미협회는 자그마치 4개 상을 몰아줌으로써 이에 화끈하게 화답한 셈이다. 그리하여 봉준호 감독도, 이미경 CJ그룹 부회장도, 아카데미협회도 모두 ‘윈윈’한 흥겨운 잔치가 완성됐다. 여기서 가장 머쓱한 이들은 여전히 ‘국뽕’을 들이켜며, 블랙리스트 사건을 사죄하지 않은 채 ‘봉준호 기념관’ 등을 운운하는 자유한국당 정치인이다. 영화를 능가하는 블랙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황진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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