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씨제이이엔엠 제공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는 막 청와대에 다녀온 참이었다. 오스카 4관왕을 차지한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배우, 스태프 등과 함께 제작자 자격으로 초청받아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을 했다. “점심 코스 중 짜파구리도 나왔어요. 파를 듬뿍 올리고 채끝등심 대신 목심살을 넣었다고 하는데, 다들 맛있게 먹었어요.”
2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난 곽 대표는 ‘짜파구리’ 얘기로 분위기를 달궜다.
곧이어 그는 수상 당시를 설명했다. “봉 감독님이 감독상을 받는 순간, 작품상도 우리구나 생각했어요. 그 전부터 체험하고 느껴온 것들이 있었는데, 감독상이 신호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는 올해 초 오스카 레이스에 합류하면서부터 좋은 징조를 느꼈다고 했다. “미국 현지에 합류해 처음 참석한 곳이 미국영화연구소에서 상 받는 자리였어요. 우리 테이블이 너무 붐볐어요. 브래드 핏을 비롯해 다들 와서 과하게 좋아해줬어요. 여기 사람들이 <기생충> 팀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느꼈죠.”
현지에서 처음엔 주눅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진심으로 우리 영화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는 곽 대표는 “영화의 가치나 존재, 힘을 믿는 사람들이 여기도 많이 있구나 하는 동질감을 느끼면서 거리감도 좁혀졌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영화를 좋아해도 투표까지 할까 걱정도 했지만, 결국 그들은 용기 있는 변화를 선택했다. 그들을 존중한다”고 덧붙였다.
봉 감독이 <기생충> 시놉시스를 들고 곽 대표를 찾아간 건 2015년 4월이다. 봉 감독의 이전 작품인 <마더>를 바른손이앤에이가 제작했던 인연 덕분이다. “그때만 해도 인물, 구도, 스토리가 다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재밌게 술술 읽혔어요. 빈부격차에 관한 주제의식도 좋았고요. 칸영화제 경쟁부문은 가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황금종려상은 예상 못 했고요, 오스카는 더더욱 생각도 못 했죠.”
곽 대표는 영화 잡지 <키노> 기자로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그 시절 알게 된 정지우 감독과 결혼한 뒤 기자를 그만둔 그는 영화 홍보사와 제작사에서 일했다. 스스로 한계를 느껴 다른 일을 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영화 일 말고는 잘할 자신이 없었다. 그때 들어간 곳이 바른손이앤에이다. 그는 2013년 이 회사 대표가 됐다.
지난 9일(현지시각)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제작사 곽신애 대표가 재밌는 포즈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로스앤젤레스/EPA 연합뉴스
“제가 영화를 오락보다는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매체의 기자 출신이다 보니 그게 어디 안 가더라고요. 친오빠(곽경택 감독)가 만든 영화 <친구>나 최근 <극한직업>을 재밌게 보면서도 나는 못 만들 영화라는 생각을 해요. 제가 참여하면 좋아질 작품과 마이너스가 될 작품을 구분하게 됐어요. 저는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경계에 있는 감독에게 끌려요. <가려진 시간>을 함께한 엄태화 감독이 그랬어요.”
하지만 곽 대표가 제작한 강동원 주연 영화 <가려진 시간>(2016)은 흥행에 실패했다. 그는 “하고 싶은 영화를 하면서 돈도 벌어야 하는 지점이 가장 고민이다. <가려진 시간> 이후 이런저런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럼에도 엄태화 감독과 또 작업하기로 결정했다”고 귀띔했다. 곽 대표의 믿음과 뚝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봉 감독과 다음 작업을 또 할 거냐고 물으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딱 하기로 한 건 아닌데, 서로 할 것처럼 얘기하는 분위기? 썸타는 기분이랄까요? 제가 큰 실수 안 하면 다음 한국 영화는 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공식적으로 한다고 말할 순 없어요. 하게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고, 하게 됐으면 좋겠어요.”
곽 대표는 작품상 수상 당시 이미경 씨제이 부회장의 수상 소감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전후 사정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애초 수상 소감 순서를 정했다. 1순위가 저, 2순위가 봉 감독, 3순위가 이 부회장이었다. 그런데 봉 감독이 그 전에 많이 했다며 빼는 바람에 저 다음으로 이 부회장이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기생충>을 위해 씨제이 안에서도 애쓴 스태프들이 많다. 이 부회장이 그들을 대표하는 상징성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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