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시각으로 29일 열린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은곰상에 해당하는 감독상을 받은 홍상수 감독이 레드카펫에서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베를린/AFP 연합뉴스
홍상수 감독이 영화 <도망친 여자>로 독일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인 감독상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지난해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고 지난달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 등 주요 4개 부문을 석권한 데 이은 또 하나의 쾌거다.
홍 감독은 2월29일(현지시각) 열린 제70회 베를린영화제 시상식에서 호명되자 연인 김민희와 포옹을 나눈 뒤 무대에 올랐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나를 위해 일해준 사람들, 영화제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전한 뒤 “허락한다면 여배우들이 일어나서 박수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배우 김민희·서영화가 일어나자 박수가 쏟아졌다.
베를린영화제는 칸영화제, 이탈리아 베네치아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린다. 그동안 작가주의적 작품을 만들어 온 홍 감독은 <밤과 낮>(2008),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3),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에 이어 네번째로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끝에 감독상을 품었다. 앞서 김민희가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은곰상 여자배우상을 받은 바 있다. 한국인이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건 2004년 <사마리아>의 김기덕 감독 이후 두번째다.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2012년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지만 한국 영화가 베를린영화제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받은 적은 아직 없다.
<도망친 여자>는 홍 감독의 24번째 장편이자 김민희와 7번째로 함께한 작품이다. 결혼 뒤 한번도 떨어져 지낸 적 없던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 두번의 약속된 만남과 한번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3명의 친구를 만나게 되는 ‘감희’(김민희)의 이야기를 담았다. 서영화·송선미·김새벽·권해효 등도 출연했으며, 올봄 국내 개봉 예정이다.
홍 감독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 영화가 ‘작은 것에서 출발해 현대사회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 같다'는 평가에 대해 “나는 큰 그림을 그리거나 큰 의도를 갖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나는 작은 세계에서 조그맣게 사는 사람”이라며 “큰 의도를 갖고 만드는 유혹을 떨쳐버리려고 노력한다. 강한 것이 아니라 섬세하고 세부적인 것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황금곰상은 이란 출신 모하마드 라술로프 감독의 <데어 이즈 노 이블>에 돌아갔다.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은 미국 출신 일라이자 히트먼 감독의 <네버 레얼리 섬타임스 올웨이스>, 은곰상 남자배우상은 <히든 어웨이>의 엘리오 제르마노, 은곰상 여자배우상은 <운디네>의 파울라 베어가 수상했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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