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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단독] 조선통신사로 간 ‘달마도 대가’ 김명국…일본서 그린 인물화 나왔다

등록 2020-03-03 17:44수정 2020-03-04 05:08

17세기 거장 김명국 ‘수노인도’
홍선표 한국미술연구소 소장이
교토 수집가 소장품서 발견해

하단엔 장수기원 수노인 그림
상단엔 일본 고승의 글귀 적혀
통신사 문화교류 담긴 희귀 사료
최근 일본 교토에 사는 현지 수장가의 컬렉션에서 확인된 김명국의 족자 그림 <수노인도>. 김명국이 일본에서 그린 사실이 명확하게 확인되는 거의 유일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최근 일본 교토에 사는 현지 수장가의 컬렉션에서 확인된 김명국의 족자 그림 <수노인도>. 김명국이 일본에서 그린 사실이 명확하게 확인되는 거의 유일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17세기 조선 화단을 주름잡던 거장이자 호방한 필치의 <달마도>로 유명한 화가 김명국(?~?)이 일본에 가서 현지인들에게 그려준 인물화가 발견됐다. 그가 1643년 조선통신사의 일원으로 갔을 때 현지에서 주문받아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족자 그림 <수노인도>다. 그림에는 대마도에서 통신사 접대를 맡았던 다이카 레이센(1610~1691)이 감상을 적은 시구도 적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레이센은 교토의 도후쿠사(동복사) 주지를 지낸 당대 지식인으로, 김명국 그림에서 일본 유명 인사의 내력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통신사 문화교류의 단면을 담은 희귀 사료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림을 발견한 이는 미술사학자 홍선표 한국미술연구소 소장(이화여대 명예교수)과 일본 연구자 후쿠시마 쓰네노리 교토 하나조노대 교수다. 이들은 “지난해 7월 연구팀을 꾸려 교토 현지 수집가의 소장품을 조사하다 김명국의 <수노인도>를 찾아내 최근 보고서를 냈다”고 3일 <한겨레>에 밝혔다.

족자 그림 하단의 수노인을 그린 부분. 머리가 크고 이마는 기괴할 정도로 높은 수노인이 아래를 지긋이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그림 옆 왼쪽에 자신의 호 ‘취옹’을 쓴 김명국의 글씨와 인장이 보인다. 도교 사상을 배경으로 하는 <수노인도>는 인간 수명을 관장하는 남극성을 고결한 신선의 모습으로 의인화한 그림이다. 생일이나 회갑 때 장수를 기원하며 선물했다.
족자 그림 하단의 수노인을 그린 부분. 머리가 크고 이마는 기괴할 정도로 높은 수노인이 아래를 지긋이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그림 옆 왼쪽에 자신의 호 ‘취옹’을 쓴 김명국의 글씨와 인장이 보인다. 도교 사상을 배경으로 하는 <수노인도>는 인간 수명을 관장하는 남극성을 고결한 신선의 모습으로 의인화한 그림이다. 생일이나 회갑 때 장수를 기원하며 선물했다.
홍 교수가 공개한 도판과 분석 자료를 보면, <수노인도>는 일본 14~16세기 무로마치 시대의 족자 그림인 시가지쿠(시화축)에 장수의 상징으로 꼽히는 도상인 수노인의 이미지를 그렸다. 그림은 가로 26.6㎝, 세로 131㎝의 두루마리 족자 형식이다. 하단에 수노인 그림이 있고, 상단에 승려 레이센의 제찬(題贊: 감상이나 내력을 적은 글귀)이 적혀 있다. 하단 왼쪽엔 아호 ‘취옹’(醉翁)이란 서명이 친필로 쓰여 있고, 그 아래엔 ‘김명국인’(金明國印)이라는 인장이 찍혀 있다. 홍 교수는 “1643년 통신사로 일본에 갔을 당시 동료 관리들이 감상 글을 덧붙인 김명국의 다른 <수노인도> 2점에 보이는 인장, 관서와 같아 동 시기 그림임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노인도>는 도교에서 인간 수명을 관장하는 별자리 남극성(南極星)을 신선의 형상으로 의인화한 장수 기원용 그림이다. 그림의 수노인은 땅딸막한 키에 머리는 크고 길쭉하며, 앞이마가 튀어나왔다. 머리와 얼굴 부분은 정교한 필선으로 묘사하되, 입은 도포는 재빠른 붓질로 표현했다. 짙고 옅은 먹빛과 가늘고 굵은 윤곽선이 대비되면서도 거친 느낌보다는 표정에서 배어나는 온화한 정서가 감돈다. 상단에는 승려 레이센의 제시가 행서체로 적혀 있다. 통신사 외교의 책임자였던 유학자 하야시 라잔이 <후소설>에서 언급한, 수노인이 그의 점술 선행을 듣고 입궐하라는 명을 내린 황제의 뜻을 거스르고 하늘에 올라가 별이 되었다는 고사를 담고 있다.

김명국의 족자 그림 <수노인도>에서 하단의 수노인 그림을 보고 감상을 적은 상단의 한문 글귀(제찬). 17세기 교토의 큰절 도후쿠사의 주지를 지낸 다이카 레이센이 쓴 제찬으로 수노인의 고사가 나온 유래를 적고 있다. 레이센은 1663~65년 대마도에서 조선-일본 외교 관련 사무를 맡은 윤번승으로도 활약했다.
김명국의 족자 그림 <수노인도>에서 하단의 수노인 그림을 보고 감상을 적은 상단의 한문 글귀(제찬). 17세기 교토의 큰절 도후쿠사의 주지를 지낸 다이카 레이센이 쓴 제찬으로 수노인의 고사가 나온 유래를 적고 있다. 레이센은 1663~65년 대마도에서 조선-일본 외교 관련 사무를 맡은 윤번승으로도 활약했다.
김명국은 당시 힘차고 간결한 필치로 그린 작품의 명성이 높아, 일본인의 그림 요청이 쇄도하자 잠을 못 자고 울어버릴 정도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하지만 현지에서 그려준 그림이 확인된 사례는 거의 없다. 일본에서 그렸다는 확실한 근거가 있는 작품은 이번 <수노인도>가 사실상 처음이다.

그림에 글을 쓴 이가 일본 고승 다이카 레이센으로 확인된 점도 주목된다. 레이센은 에도 시대 초기 대가들의 그림에 제찬을 붙이는 등 일본 문화예술사에 큰 영향을 미친 승려 문인이다. 1663~65년 조선과의 외교업무를 처리하는 기관인 대마도의 암자 이테이안에 파견돼 외교관으로 일한 인물이란 점에서 이번 발굴은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맥락을 지닌다. 장진성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김명국이 통신사로 갔던 1636년과 1643년은 대마도에 교토 승려들이 가서 대조선 외교업무를 하는 윤번승 제도가 정착된 시기였다. 당시 조선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던 윤번승 출신 승려들이 김명국에게 <수노인도>를 주문하고 레이센이 감상 글을 그림에 덧붙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그는 이어 “일본 특유의 족자그림 양식인 시가지쿠의 경우 무로마치 시대 이후엔 사라졌다고 인식해왔으나, <수노인도> 발견으로 17세기 에도시대에도 양식이 남아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본미술사 측면에서도 앞으로 주목할 가치가 큰 작품으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홍선표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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