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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신뢰 잃은 음원 차트…새 패러다임 찾기 ‘버튼’ 눌렀다

등록 2020-03-15 16:39수정 2020-03-16 02:03

[막대한 수익 올릴 수 있는 상위권]
인기 척도였던 ‘멜론’ ‘지니’ 차트
아이돌 팬텀의 무한 반복 재생과
사재기 의혹 폭로전으로 신뢰 잃어

정액제 이용료+스밍 비율 따지는
수익 배분 방식도 경쟁 부추겨
내가 듣지 않은 음악이라도
상위권 가수에게 이용료 돌아가

[내 이용료는 내가 들은 가수 노래에]
대안 떠오른 ‘이용자 중심 배분 방식’
네이버가 국내 처음 도입하기로

“실시간 차트·톱100 재생 없애자”
“다양한 플랫폼 통해 음악 즐기자”
‘주객전도’된 차트 개선 여론도 확산

대중음악의 인기를 가늠하는 수단 중 하나가 차트다. 미국에는 세계적 권위를 가진 빌보드 차트가 있다. 음반 판매량, 라디오 방송 횟수 등을 기반으로 순위를 매기다 최근엔 시대 변화에 따라 디지털 음원 스트리밍·다운로드, 유튜브 조회 수 등도 반영하고 있다. 국내에선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지상파 음악방송 순위가 절대적이었다. <한국방송>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 <가요톱10>에서 1위를 한다는 건 말 그대로 ‘국민 히트곡’이라는 보증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제 음악방송 순위는 권위를 잃은 지 오래다. 지상파·케이블 방송의 음악 순위 프로그램은 아이돌만의 잔치로 전락했다. 어떤 노래가 1위를 해도 해당 팬덤 말고는 잘 모르기 일쑤다.

음악방송 순위를 대체하며 급속도로 떠오른 게 디지털 음원 차트다. 멜론, 지니 등 주요 음원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차트가 인기의 척도가 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최근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음원 사재기 의혹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바꿈으로써 사재기 등을 근절하자는 제안이 주목받고 있다. 음원 수익 배분 방식을 바꿔 차트 상위권자에게만 돈이 몰리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완화하고, 더 나아가 음원 차트에 의존하는 이용 습관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신뢰 잃은 음원 차트, 왜?

가수 오반이 지난 5일 발표한 신곡 ‘어떻게 지내’가 지니 등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자 일부 누리꾼들이 사재기 의혹을 제기했다. 인지도가 높지 않은 가수가 방탄소년단, 지코, 아이유 등 인기 가수를 제치고 1위를 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에 오반 소속사 로맨틱팩토리의 박준영 대표는 9일 입장문을 내어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특정 팬덤이 우리 아티스트를 입에 담기 힘든 말로 괴롭히고, 우리 아티스트는 ‘살려달라’고 호소까지 하는 상황”이라며 “이미 지난해 형사 고소 사건을 통해 (사재기) 루머가 허위라는 점을 인정을 받았다. (음원 성적) 결과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잘못의 증거가 없다”고 항변했다.

이런 사재기 논란은 계속 반복돼왔다. 아이돌 그룹 블락비의 멤버 박경은 지난해 11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특정 가수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사재기 의혹을 제기했다. 해당 가수들은 강력히 반발하며 정보통신망법상 허위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박경을 고소했다. 이를 계기로 음원 사재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폭증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물증이 드러난 사례는 없다. 여전히 의심과 소문만 무성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가수가 눈에 띄는 성적을 내면 의혹의 눈초리부터 보내는 게 일상화됐다.

아이돌 팬덤의 ‘스밍 돌리기’를 겨냥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준영 대표는 입장문에서 “사재기란 사용하지 않으면서 특정 상품을 대량으로 구매해 이득을 취하는 행위다. 팬덤의 그 행위가 사재기란 단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순위를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스트리밍 횟수를 높이는 팬들의 행태를 저격한 것이다. 물론 팬들의 ‘스밍 돌리기’는 가짜 아이디를 만들어 기계로 스트리밍을 돌리는 사재기와는 엄연히 다르다. 다만 ‘음악을 듣지 않으면서 스트리밍 횟수만 높인다면 대중의 실제 감상 이력을 측정하는 차트의 취지를 왜곡할 수 있다’는 지적엔 공감할 만하다.

내 돈은 내가 듣는 음악인에게

사재기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음원 차트 상위권에만 들면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큰돈을 써서라도 높은 순위에 진입시키고 나면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구조 탓에 사재기 유혹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트 ‘톱 100’에 들면 더 많은 이용자의 선택을 받는다. 하지만 순위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키는 현재의 음원 수익 배분 방식도 사재기의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음원 서비스 업체들은 비례 배분 방식으로 음원 스트리밍 수익을 나눈다. 정액제 이용자들이 낸 돈을 모두 합해 총수익을 계산한 뒤, 이를 전체 음원 스트리밍 가운데 특정 음원 스트리밍이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음반 판매나 음원 다운로드 수익을 직접 해당 음악인에게 분배할 때보다 상위권과 하위권의 격차가 더욱 커진다. 차트 상위권 곡들이 더 많은 돈을 가져가는 반면, 차트에 진입하지 못하는 인디, 재즈, 클래식 등 비주류 음악은 수익이 더 떨어진다. 이는 외국 음원 서비스 업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국 버클리음대의 조지 하워드 교수는 이를 두고 “유명 아티스트는 자기 몫보다 훨씬 더 많이 가져간다. 인터넷이 민주화를 가져올 거라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기존 지위만 더 강화된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맹점을 해결하기 위한 이용자 중심 배분 방식이 최근 대안으로 대두하고 있다. 이용자가 낸 돈이 그가 들은 음악의 아티스트에게 직접 돌아가도록 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한 이용자가 한 달 동안 인디 음악인 ㄱ의 곡을 70번, 재즈 뮤지션 ㄴ의 곡을 30번 들었다 치자. 비례 배분 방식대로라면 그가 낸 이용료의 대부분이 그가 듣지도 않은 차트 상위권의 인기 가수에게 간다. 하지만 이용자 중심 배분 방식을 적용하면 그가 낸 돈의 70%는 ㄱ에게, 30%는 ㄴ에게 돌아간다. 핀란드에서 2017년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 프리미엄 이용자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를 보면, 비례 배분 방식에서는 상위 0.4% 음원이 전체 저작권료의 10%를 가져간 반면, 이용자 중심 배분 방식에서는 상위 0.4% 음원이 전체 저작권료의 5.6%를 가져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원 수익 배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현저히 개선되는 셈이다.

프랑스의 문화훈장까지 받은 유명 음반 제작자 에마뉘엘 드뷔르텔(de Buretel)은 지난해 스포티파이 등에 이용자 중심 배분 방식을 도입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이용자 중심으로 정산하면 현재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횡행하고 있는 ‘페이크 스트리밍’(사재기)이 줄고, 아티스트의 수익 흐름이 더 원활하게 바뀔 것이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 확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프랑스 음원 서비스 업체 디저는 올해 상반기 중 이용자 중심 배분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네이버 음원 서비스 바이브가 지난 9일 이용자 중심 배분 방식인 ‘바이브 페이먼트 시스템’을 올해 상반기 안에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음원사·유통사 등과 협의를 진행하는 한편, 음원 권리자가 재생 관련 데이터와 정산액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할 예정이라고 네이버 쪽은 전했다. 이런 움직임이 멜론, 지니 등 다른 대형 음원 서비스로도 전파될지 주목된다.

네이버 음원 서비스 바이브는 이용자 중심 배분 방식인 ‘바이브 페이먼트 시스템’을 올해 상반기 중 도입하기로 했다. 네이버 제공
네이버 음원 서비스 바이브는 이용자 중심 배분 방식인 ‘바이브 페이먼트 시스템’을 올해 상반기 중 도입하기로 했다. 네이버 제공

차트 대신 개인 취향별로 즐겨야

이참에 차트 중심으로 음원 서비스를 이용하는 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대부분의 국내 음원 서비스 업체들은 음원 차트를 메인 화면에 주요하게 노출하고 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톱 100’ 전체 곡을 재생할 수 있어, 많은 이용자가 습관적으로 ‘톱 100’을 듣는다. 사재기해서라도 ‘톱 100’에만 들면 꾸준히 재생 횟수가 올라가고 수익이 급증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건 그래서다.

이를 바꿔보자는 제안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가수 윤종신은 일부 가수의 사재기 논란이 일기 시작한 2018년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차트는 현상의 반영인데 차트가 현상을 만드니 차트에 어떡하든 올리는 게 목표가 된 현실”이라며 “실시간 차트와 톱 100 전체 재생, 이 두 가지는 확실히 문제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톱 100 전체 재생 버튼을 없애면 어떨까 제안하고 싶다. 꽤 많은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이 무취향적 재생 버튼을 누르고 시간을 보낸다”고 덧붙였다. 그는 “많은 사람이 확고한 취향을 가지도록 유도하고 돕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 음원 사이트 첫 페이지가 각자 개인에 맞게 자동으로 큐레이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이용자들이 음원 차트 중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취향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는 “과거엔 이용자들의 음악 취향이 뚜렷하지 않아 차트 중심의 이용이 두드러졌지만, 이제는 유튜브, 외국 음원 서비스 등 여러 플랫폼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이들이 늘면서 취향이 다양해지고 있다”며 “자기가 모르는 노래가 차트에 진입했다고 의아해하기보다 다양한 플랫폼의 다양한 음악을 접하며 자신만의 취향을 쌓고 음악을 즐기는 태도를 갖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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