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프터 웨딩 인 뉴욕>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이자벨(미셸 윌리엄스)은 인도에서 보육원과 아동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어려운 재정 형편에도 열정을 갖고 아이들을 돌보던 그에게 뜻밖의 제안이 들어온다.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의 대표 테레사(줄리앤 무어)가 거액을 후원하겠다는 것이다. 단, 조건이 있다. 이자벨이 반드시 미국 뉴욕으로 와서 후원 관련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 뉴욕은 이자벨이 20년 전 떠나온 곳이다. 아이들을 두고 홀로 뉴욕으로 가야 하는 게 영 마뜩잖지만, 후원금을 받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뉴욕에 도착한 이자벨은 호텔 스위트룸과 리무진 등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이자벨은 불편하기만 하다. 협의를 얼른 마치고 아이들에게 돌아가려는 이자벨에게 테레사는 시간 여유를 갖고 후원 내용을 검토하자고 한다. 그러면서 주말에 열리는 자신의 딸 그레이스(애비 퀸)의 결혼식에 오라고 한다. 이자벨은 이번에도 내키지 않지만 하는 수 없이 결혼식장으로 향한다.
영화 <애프터 웨딩 인 뉴욕>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23일 개봉하는 영화 <애프터 웨딩 인 뉴욕>의 제목을 직역하면 ‘뉴욕에서의 결혼식 이후’다. 결혼식 이후 벌어지는 일이 영화의 고갱이임을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자벨은 결혼식장에서 뜻밖의 사람과 마주친다. 그를 통해 20년 전 기억을 떠올리게 된 이자벨의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가고, 곧 이 모든 게 테레사의 계획임을 눈치챈다.
숨겨진 비밀이 한꺼풀씩 드러날수록 어딘지 익숙한 느낌이 든다. 출생의 비밀, 치정, 복수 등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막장’의 향취가 코를 간지럽힌다. 하지만 당혹스러움은 잠깐이다. 영화는 자극적인 설정 자체보다는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인물들의 심리를 차분히 들여다본다. 특히 악역처럼 보이는 테레사의 이야기가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펼쳐지면서 영화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그 과정에서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는 설정도 나타나지만, 줄리앤 무어와 미셸 윌리엄스의 섬세한 감정 연기가 설득과 공감을 안긴다.
영화 <애프터 웨딩 인 뉴욕>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애프터 웨딩 인 뉴욕>은 덴마크 영화 <애프터 웨딩>(2006)을 리메이크한 영화다. 원작에선 두 남자가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는데, 덴마크를 대표하는 배우 마스 미켈센이 인도에서 보육원을 운영하는 제이컵을 연기했다. 바트 프로인들리크 감독은 리메이크작 연출을 제안받고 두 남자 주인공을 여자로 바꾸는 각색을 시도했다. 그는 “크로스 젠더 리메이크를 통해 영화 속 여성들이 중요한 선택을 내리고 그 결과를 마주하는 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보여줌으로써 지금 시대를 더 잘 반영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의도를 설명했다.
바트 프로인들리크 감독은 자신의 아내인 줄리앤 무어에게서 각색 단계부터 조언과 도움을 얻었다. 줄리언 무어는 영화에 출연했을 뿐 아니라 제작자로도 이름을 올렸다. 그는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잡지 <엘르>는 “남자들이 연기했던 작품이라는 걸 짐작할 수 없을 정도”라며 두 배우의 ‘크로스 젠더’ 연기를 극찬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