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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세종의 ‘자격루’…안보이던 구름무늬까지 선명해져

등록 2020-04-22 09:00수정 2020-04-22 20:23

보존처리 마친 복원 유물 공개
녹과 먼지 기름때 등 제거해
표면에 새긴 제작 장인 이름과
용 무늬 겹친 구름무늬 등 드러나
최근 보존처리로 옛 모습을 되찾은 자격루의 기물들. 왼쪽의 용무늬 새겨진 길죽한 용기 2개가 물을 받는 수수호이며, 오른쪽 위 아래의 크고 작은 항아리가 물을 보내는 파수호들이다.
최근 보존처리로 옛 모습을 되찾은 자격루의 기물들. 왼쪽의 용무늬 새겨진 길죽한 용기 2개가 물을 받는 수수호이며, 오른쪽 위 아래의 크고 작은 항아리가 물을 보내는 파수호들이다.

조선시대 초기인 15세기 세종 임금이 장인 장영실을 시켜 발명한 첨단 물시계 ‘자격루’가 원래 제 모습에 가깝게 복원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한국 과학기술사의 대표적 유물 중 하나인 창경궁 자격루(국보) 보존처리를 1년7개월만에 끝내고 복원된 모습과 과학적 분석 결과를 22일 공개했다.

복원된 뒤 공개된 자격루는 몸체를 덮고 있던 녹과 먼지, 기름때 등이 깨끗하게 제거되면서 물을 보내거나 받는 용기 표면에 새겨진 제작 장인들의 이름 명문 전체가 온전하게 드러났다. 또 자격루 표면의 용 무늬 위에 따로 새겨졌으나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구름 무늬가 선명하게 나타난 것도 눈에 띈다.

일제강점기부터 지난 2018년까지 덕수궁 광명문 아래 놓여있던 자격루의 과거 모습.
일제강점기부터 지난 2018년까지 덕수궁 광명문 아래 놓여있던 자격루의 과거 모습.

자격루는 용기에 채운 물이 불거나 줄어드는데 따라 자동으로 시각 수치를 알려주는 국가 표준시계였다. 조선시대 과학기술력의 정점을 보여주는 문화재로 꼽힌다. 1434년(세종 16년) 세종의 명령에 따라 장영실이 처음 만들었는데, 당시 제작품은 전하지 않는다. 1536년(중종 31년) 다시 제작한 자격루의 일부 기기인 파수호(播水壺:물을 보내는 청동 항아리) 3점과 수수호(受水壺:물을 받는 청동항아리) 2점이 현재 전해지고 있다.

5점의 자격루 기기들은 조선시대에는 창덕궁 보루각에 설치돼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들어 덕수궁 경내로 옮겨져 야외전시물로 전락했다. 덕수궁 함녕전의 정문이었다가 1938년 뜯겨져 궁 안쪽 구석으로 밀려난 광명문(지난해 원래 자리로 복원) 전각 아래로 옮겨지면서 지난해까지 오랜 풍상을 견뎌야 했다.

문화재청은 그동안 흙먼지 제거와 기름 도포 같은 보존처리만 하다 청동 재질인 자격루의 부식과 손상을 더 이상 막기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2018년 6월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옮겨 보존처리와 분석조사를 벌여왔다.

센터는 자격루의 보존 상태부터 정밀조사했다. 부식의 범위와 종류 등을 파악하고, 3차원 입체 실측 기법으로 유물의 형태를 세세하게 기록했다. 비파괴 성분 분석으로 보존 상태를 파악해보니 겉에는 청동 부식물층이 생겼고, 그 위에 실리콘 오일 성분의 기름때와 흙먼지가 붙어 있음을 알아냈다. 계면 활성제와 초음파 미세 진동으로 표면 이물질을 걷어내는 스케일러 따위를 써서 오염물을 없애고, 재질 강화처리 작업을 했다.

보존처리 전 흐릿한 수수호의 명문 모습.
보존처리 전 흐릿한 수수호의 명문 모습.

보존처리 뒤 말끔하게 윤곽이 나타난 수수호의 명문 모습.
보존처리 뒤 말끔하게 윤곽이 나타난 수수호의 명문 모습.

수수호에 새겨진 명문글자들. 파란색 글자들이 보존처리 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난 것들로, 자격루 제작에 참여한 장인들의 이름으로 판명됐다.
수수호에 새겨진 명문글자들. 파란색 글자들이 보존처리 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난 것들로, 자격루 제작에 참여한 장인들의 이름으로 판명됐다.

보존처리를 마치자 잘 보이지 않았던 수수호 왼쪽 상단의 명문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 명문은 제조 당시 주조해 돋을새김(양각)한 것으로 제작에 참여한 장인 12명의 직책과 이름이 세로로 새겨졌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명문의 몇몇 글자들이 닳아서 12명 가운데 4명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 수 없었는데, 보존처리 과정에서 ‘이공장(李公檣, ?~?)’, ‘안현(安玹, 1501~1560)’, ‘김수성(金遂性, ?~1546)’, ‘채무적(蔡無敵, 1500~1554)’임을 새롭게 확인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명문 이름들 가운데 이공장의 '장'(檣)은 '색'(穡), 안현의 '현'(玹)은 '진'(珍), 김수성의 '성'(性)은 '주'(注)로 추정했고, 채무적의 '무(無)'와 '적(敵)'은 아예 판독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모두 바로잡거나 새 글자들을 발견하면서 명문 이름들을 온전히 파악하게 됐다. <조선왕조실록>, <국조인물고>, <문과방목> 등의 조선시대 문헌에도 자격루 제작 당시에 안현, 김수성, 채무적이 천문 전문가로 중요한 역할을 맡았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남아있어 명문 이름과 들어맞는다.

수수호 표면에는 하늘로 솟아오르는 용 문양도 새겨졌다. 센터 쪽 연구원들은 용 문양을 자세히 살피기 위해 3차원 입체(3D) 스캔과 실리콘 복제방법으로 호 표면을 평면 형태로 펼쳐봤다. 그 결과, 수수호 왼쪽과 오른쪽 용 형태가 대부분 같은 형태이나 얼굴, 수염이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더불어 용 문양 위에 겹쳐진 구름 문양도 확인했다. 호 표면에 용 문양을 먼저 붙인 뒤 구름 문양을 붙인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센터 쪽은 “수수호는 정교한 형태로 조각한 문양을 순서대로 붙여 만들었다고 추정된다. 밀랍 주조기법으로 주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자격루 기기의 일부로 물을 보내는 기능을 하는 대파수호를 보존처리한 뒤의 전체 모습(왼쪽). 위쪽에 은입사기법으로 수놓은 제작시기 명문이 선명하게 드러나있다. 오른쪽은 보존처리 전과 뒤의 제작시기 명문을 확대해 비교한 모습이다.
자격루 기기의 일부로 물을 보내는 기능을 하는 대파수호를 보존처리한 뒤의 전체 모습(왼쪽). 위쪽에 은입사기법으로 수놓은 제작시기 명문이 선명하게 드러나있다. 오른쪽은 보존처리 전과 뒤의 제작시기 명문을 확대해 비교한 모습이다.

큰 파수호의 표면에는 ‘가정병신육월 일조(嘉靖丙申六月 日造)’란 자격루 제작시기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 명문에서 은을 글자들의 윤곽선 홈에 집어넣는 입사장식 기법을 확인한 것도 성과로 꼽힌다. 비파괴 성분 분석 작업을 벌인 결과 명문에서 은(銀) 성분이 다량 검출됐기 때문이다. 명문은 녹이 슬어 온통 시커먼 빛을 띠고 있었지만, 보존처리를 통해 본래의 은백색 빛깔을 찾았다. 연구진은 자격루 제작을 끝낸 시기에 맞춰 대파수호 표면에 은입사 명문을 새겼을 것으로 보고있다. 명문 속 ‘가정’은 16세기 명나라를 통치한 11대 황제 세종(재위 1522~66년)이 쓴 연호이며, ‘가정병신’은 가정 15년인 1536년을 뜻한다.

센터 쪽은 “보존처리 작업을 통해 자격루 원형을 보존하고 제작 참여자와 제작기법 등에 대한 정보까지 복원한 것은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문화재청은 보존처리된 자격루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시할 계획이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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