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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지루한 삶을 깨운 수상한 암호명 “런”

등록 2020-04-26 19:34수정 2020-04-26 19:40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 드라마 <런>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 아이엠디비(IMDb)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 아이엠디비(IMDb)

거대한 주차장, 중년 여성 루비 리처드슨(메릿 위버)의 차 안에 엘비스 프레슬리 노래가 흐른다. 멜로디는 서글프고, 루비의 표정은 더 구슬퍼 보인다.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남편이다. 쇼핑 중이라는 루비의 말에, 남편은 집으로 배달될 스피커를 받아달라고 요청한다. 곧 돌아가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은 루비는 한층 지치고 지루한 표정이 된다. 그때 전화기가 다시 진동한다. 이번엔 문자메시지다. 빌리라는 인물이 보낸 메시지에는 단 한마디의 말만 쓰여 있다. “런”(RUN). 잠시 고민하던 루비는 똑같은 내용의 답을 보낸 뒤, 무작정 달리기 시작한다.

이달 초 미국 <에이치비오>(HBO)에서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런>은 일상으로부터 극적인 탈출을 감행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다. 충동적인 일탈인 것 같지만, 무려 17년 전의 계획이다. 과거 연인 사이였던 루비와 빌리(도널 글리슨)는 헤어지면서 한가지 협약을 했다. 만약 둘 중 하나가 “런”이라는 문자를 보내고 상대방도 똑같이 답하면, 함께 삶에서 탈출하자는 약속이었다. 그로부터 먼 훗날, 홀로 울음을 삼키다 빌리의 문자를 받은 루비는 속박의 저주에서 풀려나기라도 한 것처럼 미친 듯이 약속 장소로 달려간다.

미대륙 횡단 열차 안에서 만난 옛 연인의 모습으로 시작한 <런>은 빌리의 말대로 낭만적인 “사랑의 도피”처럼 보인다. 17년 만에 재회한 연인의 눈빛에는 여전히 불꽃이 튄다. 서로 떠보듯 독설을 퍼부어도, 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절을 함께 보낸 이들 특유의 교감이 흐른다. 하지만 열차가 몇개의 역을 지난 뒤, 조금씩 드러나는 것은 서로가 감춘 비밀이다. 어쩌다 문자를 보내게 되었는지 묻는 루비에게 빌리는 속 시원히 답해주지 않는다. 루비 역시 문자를 받을 당시의 상황에 대해 거짓으로 답한다. 열차는 어느새 열정적인 로맨스와 수상한 스릴러 사이를 질주한다.

사실 <런>은 일찌감치 올해 상반기 최고 기대작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현재 세계 드라마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창작자인 피비 월러브리지가 제작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킬링 이브> <플리백>을 잇달아 성공시킨 콤비 비키 존스가 이번에도 크리에이터로 참여했다. 격렬한 내적 갈등에 처한 여성의 얼굴만으로도 극적인 서사를 만들어내는 클로즈업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이 페미니스트 예술가 콤비의 인장이 뚜렷하다. 둘의 섬세한 주제의식을 시시각각 변화하는 표정으로 연기해내는 배우도 낯이 익다. 넷플릭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서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캐런 듀발 형사 역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준 메릿 위버가 또 한번 압도적인 연기를 펼친다.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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