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의 시간>의 윤성현 감독. 넷플릭스 제공
“내 시간이 사냥당했다.”(★) “(별 것) 없는 스토리에 이만큼 긴장 빨게 만드는 것도 능력.”(★★★★★)
지난 23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사냥의 시간>에 대한 네이버 누리꾼 평점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우여곡절 끝에 넷플릭스로 직행하면서 눈길을 끌더니, 이번엔 극과 극의 반응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사냥의 시간>은 윤성현 감독이 9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그는 장편 데뷔작 <파수꾼>(2011)으로 여러 상을 휩쓸며 단숨에 주목받았다. 당시 신인배우 이제훈·박정민을 앞세워 10대 소년들의 불안하고 미성숙한 인간관계와 상처를 아프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냈다. <사냥의 시간>에도 두 배우가 출연해 최우식·안재홍과 함께 불안한 청춘을 연기한다. 하지만 이번엔 인물의 감정선과 서사구조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에 대한 ‘불호’는 이 지점에서 나온다.
“<파수꾼>은 대사와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둔 드라마 장르였어요. 이후 준비하다 엎어진 공상과학(SF) 영화도 대사 중심이었고요. 2016년 시나리오를 구상하면서 대사 대신 비주얼과 사운드로 영화적 표현을 하는 작품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잘하는 거 말고 안 해본 거, 한국 영화에 잘 없는 걸 해보자 한 거죠. 당시 유행하던 ‘헬조선’이란 말에서 힌트를 얻어 한국 사회를 지옥으로 형상화해 은유하는 장르물에 도전한 까닭입니다.” 24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윤 감독은 말했다.
영화는 시대도 장소도 모호하다. 사회 시스템이 무너진 디스토피아를 폐허가 된 도시, 거리의 부랑자 등 익숙하면서도 낯선 형상으로 묘사한다. 왜 그렇게 됐는지는 딱히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네 청년이 한몫 챙겨 지옥을 벗어나고자 범죄를 벌였다가 누군가에게 쫓긴다는 게 이야기의 전부다. 윤 감독은 서사를 치밀하게 짜는 대신 스타일리시한 영상과 힙합 음악, 총소리 등 음향으로 추격전의 긴장감을 높인다.
청년들을 쫓는 ‘한’(박해수)의 정체 또한 모호하다. 경찰도 어찌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로만 묘사될 뿐, 동기도 사연도 드러나지 않는다. 이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윤 감독은 “심해나 우주처럼 미지의 영역에서 오는 공포감을 주려고 이해 불가능한 절대자의 모습으로 그린 것”이라고 전했다. 이 시대 청년들이 느끼는 막연한 공포를 은유하기 위한 설정이라는 것.
<사냥의 시간>의 강점인 비주얼과 사운드를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극장에서 개봉했다면 어땠을까. 감독으로서 아쉽지 않을까? “아쉬움보단 전 세계 관객에게 선보이게 됐다는 점에서 기대가 더 커요. 다만 핸드폰이 아니라 큰 화면과 스피커를 통해 영화를 봤으면 해요.”
영화는 막판 속편에 대한 여지를 남긴다. 하지만 윤 감독은 “속편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며 “청년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를 은유하는 엔딩”이라고 설명했다. “지옥에서 벗어나 원하던 유토피아로 가는 게 과연 진정한 성공인지를 되묻고 싶었다”는 것이다. 열려있으면서도 한편으론 명료한 결말인 셈이다.
결과물에 만족하냐는 물음에 그는 말했다.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만족보다 더 의미를 두는 건 최선을 다했다는 점입니다. 안 해본 영역이라 말도 못하게 최선을 다했거든요. 어려운 길을 택하면서 저도 성장한 것 같아요. 머물러 있지 않는 성격이라 차기작에선 또 다른 변화를 시도할지도 모르죠.”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