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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화장지 위에서 뛰는 쥐, 아이패드 속 수선화…예술가들의 코로나 극복법

등록 2020-05-03 14:35수정 2020-05-03 20:12

「100°C ㅣ 잇따르는 예술가들 ‘SNS 작품놀이’

[요즘 대세는…]
‘포켓몬GO’ 같은 증강현실 활용
언제 어디서든 캐릭터 불러들여
아트포스터, 작품 매매 퍼포먼스
격리 영상일기 모은 사이트도 열려

[유행 선도한 전 세계 작가들]
아웃사이더 ‘뱅크시’ 거장 ‘호크니’
소박하고 익살스러운 신작 선보여
데미안 허스트·볼프강 틸만스 등
싼값에 판 작품 수익 기부하기도

[코로나 블루의 선한 영향력]
미술가-대중과 소통의 길 열려
인간 교감·공유 가치 새삼 일깨워
미국 작가 카우스의 유명한 조형물 캐릭터인 컴패니언을 휴대폰 앱에서 꺼내어 언제 어디서든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증강현실(AR) 기술 서비스인 ‘익스팬디드 홀리데이’ 를 카페 공간에서 실연하고 있는 장면이다. 카우스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맞아 관객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캐릭터들을 증강현실로 가상 체험할 수 있게 했다.
미국 작가 카우스의 유명한 조형물 캐릭터인 컴패니언을 휴대폰 앱에서 꺼내어 언제 어디서든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증강현실(AR) 기술 서비스인 ‘익스팬디드 홀리데이’ 를 카페 공간에서 실연하고 있는 장면이다. 카우스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맞아 관객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캐릭터들을 증강현실로 가상 체험할 수 있게 했다.

“감상용 작품이 아니라 항상 붙어 다니는 친구 같아요.”

지난달 25일 낮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한 카페에서 만난 미술기획자 ㅇ씨는 신기하다는듯 휴대전화 화면을 보여줬다. X자가 그려진 장갑을 낀 손으로 두 눈을 앙증맞게 가린 유명한 인형 캐릭터 ‘컴패니언’이 튀어나왔다. 이 캐릭터 인형이 실제 카페 여기저기를 둥둥 떠다니거나 특정 지점에 서서 포즈를 취하는 ‘증강현실(AR)’ 장면이 연이어 흘렀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심란한 요즘, 미국 작가 카우스가 창안한 인형 컴패니언과 함께 집 안팎 곳곳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중요한 일과가 됐다고 했다. 언제든 휴대전화 전용 앱을 작동시켜 카우스 인형의 가상 캐릭터를 꺼내놓고 어느 장소에서건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 카우스는 지난 3월 가상현실 예술작품을 선보이는 사이트 애큐트아트(acuteart.com)를 통해 서울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디디피·DDP) 등 전 세계 12개 도시의 지정 장소에서 컴패니언을 만날 수 있는 증강현실 서비스 ‘확장된 휴일’(Expanded Holiday)을 시작했다.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포켓몬처럼 특정 장소에 컴패니언을 불러 ‘함께 노는’ 얼개였지만, 코로나19 사태가 급속도로 확산하자 작가는 지난달부터 세계 어디서나 컴패니언을 볼 수 있게 서비스를 개편했다. 기획자 ㅇ씨가 말했다. “제겐 반려견 같은 디지털 생명체입니다. 어느 때보다 우울한 요즘, 귀여운 캐릭터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과 힘이 돼요.”

카우스는 두 눈을 가린 모습으로 만든 컴패니언 캐릭터를 세계 어느 곳에든 증강현실로 구현하고 공개해 사용자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앱으로 내려받아 사용자의 거실 공간에 세워놓고 찍은 컴패니언의 휴대폰 사진.
카우스는 두 눈을 가린 모습으로 만든 컴패니언 캐릭터를 세계 어느 곳에든 증강현실로 구현하고 공개해 사용자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앱으로 내려받아 사용자의 거실 공간에 세워놓고 찍은 컴패니언의 휴대폰 사진.

카우스뿐만이 아니다. 요즘 미술판에서는 데이비드 호크니, 데미안 허스트, 볼프강 틸만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장을 중심으로 온라인 플랫폼에 작품을 풀어놓는 놀이가 확산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주요 미술관의 전시가 대부분 중단된 상황에서 작품을 인스타나 페이스북에 던져놓고 사용자들과 함께 즐기는 방법으로 교감하는 것이다. 작품뿐 아니라 작품에 얽힌 소통의 과정 자체가 유력한 작업 트렌드로 떠오른 셈이다.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대가 데미안 허스트는 코로나 사태를 맞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아트 포스터 자선활동’을 펼쳐 화제다. 인스타그램에 다채로운 나비의 날개 띠로 이뤄진 <나비 무지개> 연작을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게 공개했다.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는 영국 국가의료서비스 체제(NHS) 의료진을 격려하려고 내놓은 아트 포스터다. 일부는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고, 고화질 한정판으로 찍은 포스터는 싼값에 판다. 수익은 전액 기부한다. 그의 설치 작품이나 조형물이 수 백억원을 호가하는 데다 그간 냉혹한 미술 사업가의 면모를 보여왔기에 이런 선행은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허스트는 “의료진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며 “무지개는 희망의 표시로 부모와 아이들이 각각의 버전을 만들어 집 창문에 붙이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영국의 아웃사이더 작가 뱅크시가 코로나 사태 이후 자기 집 화장실 벽에 그려놓은 익살스러운 쥐 그림 작업. 그의 인스타그램에 공개되면서 화제가 됐다.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영국의 아웃사이더 작가 뱅크시가 코로나 사태 이후 자기 집 화장실 벽에 그려놓은 익살스러운 쥐 그림 작업. 그의 인스타그램에 공개되면서 화제가 됐다.

영국에서 활동 중인 독일 출신 사진가 볼프강 틸만스는 코로나19 사태로 문 닫을 위기에 놓인 유럽의 나이트클럽과 대중음악 공간을 지키기 위해 온라인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50파운드에 파는 작업을 시작했다. 클럽 등 하위문화 공간의 심야 풍경을 즐겨 찍었던 틸만스의 모금 캠페인에 안드레아스 구르스키를 비롯한 예술가 40여명이 동참하는 등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서펜타인 갤러리 관장은 이탈리아 주민들의 ‘발코니 응원’을 차용해 작가들이 발코니에서 퍼포먼스를 하거나 응원을 하는 상황을 자유롭게 온라인 플랫폼에 연출하는 시나리오 프로젝트 ‘두 잇’(DO IT)을 벌이고 있다.

영국의 현대미술 대가 데이미언 허스트가 코로나 사태를 맞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내놓은 작품 &lt;나비 무지개&gt;.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는 영국 국가의료서비스(NHS)의 의료진을 격려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아트포스터라고 한다. 온라인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고, 한정판으로 찍은 염가의 판매용 포스터도 팔고 있다. 판매액은 전액 엔에이치에스에 기부한다.
영국의 현대미술 대가 데이미언 허스트가 코로나 사태를 맞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내놓은 작품 <나비 무지개>.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는 영국 국가의료서비스(NHS)의 의료진을 격려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아트포스터라고 한다. 온라인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고, 한정판으로 찍은 염가의 판매용 포스터도 팔고 있다. 판매액은 전액 엔에이치에스에 기부한다.

온라인 전시 놀이는 다운로드나 조작 툴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노출된 인스타그램에서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거장의 작품도 있다. 금세기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신작이 그렇다. 그는 아이패드로 그린 소박한 정물 풍경화 9점과 애니메이션 1점을 인스타그램과 영국 공영방송 <비비시>(BBC)에 지난달 공개했다. 특유의 선명하고 편안한 화면에 나무의 새순과 수선화 꽃송이를 그렸다. 비비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삶을 사랑한다”고 밝힌 호크니는 ‘기억하라. 봄은 꼭 온다’는 제목을 수선화 그림에 붙였다.

코로나19 사태로 암중모색 중인 작가들의 삶과 작업을 드러낸 영상일기와 고백류의 글도 쏟아지고 있다. 미국 워싱턴 허쉬혼 미술관은 록다운(봉쇄)기간 동안 집에 갇힌 작가들의 영상 일기를 수집해 사이트에 공개하고 있다. 쉬린 네샤트와 크리스틴 선킴, 테스터 게이츠 등의 일상이 엮인 5편의 영상이다. 영국의 아웃사이더 작가 뱅크시도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에 돌입하자 화장실 벽에 볼 일을 보고 거울을 비뚤게 건 익살스러운 쥐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사진 일기처럼 공개했다.

21세기 최고의 그림 거장으로 통하는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코로나 사태에 따른 격리생활을 하며 아이패드로 그린 수선화 그림. 코로나 극복을 기원하는 그의 메시지와 더불어 인스타그램에 공개되어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21세기 최고의 그림 거장으로 통하는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코로나 사태에 따른 격리생활을 하며 아이패드로 그린 수선화 그림. 코로나 극복을 기원하는 그의 메시지와 더불어 인스타그램에 공개되어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국내에서도 아르코미술관이 산하 인사미술공간에서 작업했던 작가들의 최근 근황과 작업 이야기를 담은 ‘코로나 블루 극복 릴레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상업 화랑인 국제갤러리와 아라리오 갤러리 등이 나서 전속 작가들의 일상을 공개하고 응원 메시지를 영상과 글로 인스타그램에 소개하는 릴레이 기획을 지난달 중순부터 펼친 것도 이채롭다. ‘코로나 블루 극복 프로젝트’의 경우, 고재욱, 언해피서킷에 이어 권세정, 박관택, 흑표범 작가 등이 코로나19 사태 와중의 일상을 담은 솔직한 영상일기를 과거 작품과 함께 공개하며 동참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미술판 기획자들은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팬데믹을 계기로 본격화한 전시 놀이 트렌드가 대중과 멀어졌던 미술가들로 하여금 모처럼 진지한 소통의 길을 열도록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공 미술의 경우, 과거 지역 공동체의 활동에 개입하는 커뮤니티 아트 같은 시도들이 이뤄졌던 전례가 있다. 하지만, 최근 온라인 전시 놀이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고통 속에서 보편적인 인간, 공동체적 인간으로서 더욱 절실해진 교감의 욕망을 나눈다는 점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술기획자 박남희씨는 “세계적 위기 국면에서 작가와 관객이 인간의 조건을 묻는 상황극을 함께 연출하는 창조적 양상이 나타난 것”이라면서 “공동체적 연대를 글로벌 차원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시도란 점에서 고무적이지만, 누구나 쉽게 누릴 수 있도록 디지털 전시 공간의 장벽을 낮추려는 배려도 필요하다”고 짚었다.

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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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앤디 워홀 명작으로 게임 해볼까?

[확 바뀐 미술판 콘텐츠]

프랑스 퐁피두, 교육용 게임 출시

뉴욕 구겐하임, 드로잉 레슨 마련

미술 시장도 판매 플랫폼 선보여

퐁피두 센터가 최근 내놓은 비디오게임 &lt;프리즘 7&gt;의 초기 화면.
퐁피두 센터가 최근 내놓은 비디오게임 <프리즘 7>의 초기 화면.

코로나19 사태는 미술관 콘텐츠도 확 바꿔놨다. 세계 현대미술의 명가로 꼽히는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 센터는 지난달 ‘프리즘 7’이란 온라인 비디오게임을 내놓고 누리집에서 내려받을 수 있도록 서비스 중이다. 명화의 색과 구도 상의 특징을 게임의 구성 요소로 녹여 관객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가는 교육용 게임이다. 게임 환경으로 들어가면, 미국 뉴욕 맨해튼 도심 도로망을 모티브로 그린 피에트 몬드리안의 추상회화, 앤디 워홀의 <전기의자> 복제 이미지들, 건축가 렌조 피아노와 리처드 로저스가 상상한 퐁피두 센터의 파이프 구조물 등 40개의 명작을 선택할 수 있는 6개의 영역을 거닐게 된다. ‘색과 기능’, ‘색과 감정’, ‘빛과 몰입’ 등의 세부 영역을 돌며 작품의 감각적 특징을 발견하고 명화의 이면을 색다르게 체험할 수 있다.

퐁피두의 명화 찾기 게임 말고도 세계 주요 미술관은 휴관 사태 장기화로 온라인 콘텐츠 개발에 골몰하면서 양질의 감상 서비스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경우, 저명 작가인 제프 홉킨스가 어린이들을 초대해 온라인(guggenheim.org/event/sketch-with-jeff)에서 드로잉 레슨을 펼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미술관 인스타그램과 트위터(@Gugenheim) 등으로 아이들의 그림을 공유하며 명화 도상과의 연관성을 짚어준다.

미술 시장에서는 경매사 소더비가 리만 머핀, 카즈민 같은 세계적인 갤러리의 작품을 함께 엮어 전시하고 거래하는 온라인 네크워크 판매 플랫폼을 지난달 말 선보였다. 스위스 명문 화랑 하우저앤워스도 지난달 30일 기존 화상을 찍어서 재구성하지 않고 디지털 작업만으로 공간을 구축한 첨단 컨셉트 뷰잉룸(온라인 전시장)을 처음 공개해 시선을 사로잡았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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