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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서울의 공터, 그 푸르름도 불안하다

등록 2020-05-05 18:15수정 2020-05-07 23:08

[강홍구 ‘녹색 연구-서울-공터’전]
사진에 물감 휘휘 그어
푸르고 누런 그림사진

도심 변두리 곳곳에
폭력과 개발 욕망
역사적 상처가 남긴
공터들이 많은데

역사적 상처를 가렸거나
역사의 질곡을 피한 곳들

잡풀과 나무들이 형성한
녹음 속에 잠겨 존재

“수년 쌓은 단상 고민 정리”
다음은 부산 달동네, 신안의 섬
지난 4일 원앤제이갤러리 전시장에서 만난 강홍구 작가. 자신의 근작 <녹색연구-서울-공터-송현동1> 앞에서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작품은 최근 활용 방안을 놓고 논란이 빚어진 서울 종로구 송현동 옛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터 빈 땅을 담았다. 땅을 찍은 사진 위에 아크릴로 붓질해 녹색 등을 칠한 사진+그림의 얼개다.
지난 4일 원앤제이갤러리 전시장에서 만난 강홍구 작가. 자신의 근작 <녹색연구-서울-공터-송현동1> 앞에서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작품은 최근 활용 방안을 놓고 논란이 빚어진 서울 종로구 송현동 옛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터 빈 땅을 담았다. 땅을 찍은 사진 위에 아크릴로 붓질해 녹색 등을 칠한 사진+그림의 얼개다.
푸른빛과 녹색빛의 덩어리들이 낭자했다. 대도시 서울 곳곳의 틈새에 깃든 공터들은 선연한 녹음을 내뿜었다. 크고 작고, 길쭉하고 짧은 화면들 여기저기에 종잡기 어려운 다기한 터의 이미지들이 색감과 함께 펼쳐져 있다.

지난 1일 서울 북촌의 가회동 원앤제이갤러리에서 개막한 사진작가 강홍구 개인전 ‘녹색연구-서울-공터’는 서울 구석구석에 드러난 공터와 공터를 채운 푸른 숲과 풀의 의미를 성찰한 작업으로 채워져 있다. 1층부터 2층까지 공간을 돌면, 서울 경복궁 옆 송현동 옛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터를 시작으로 창신동 옛 채석장 주변의 주택가 공터들, 한강변 밤섬의 숲과 선유도공원의 공간들, 옛 뚝섬 경마장 근처 서울숲, 복원된 청계천 인공 숲 옆 공터 길 등 푸른 녹음이 어린 풍경을 만나게 된다.

작가는 지난 10여년간 국내 재개발 지역이나 철거촌의 사진을 찍어 합성하고, 그 속에 낯선 사물을 끼워 넣거나 색을 덧칠하면서 한국인의 생활 공간을 성찰한 그림사진을 만들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관심사를 서울의 지난 역사가 깃든 공터로 특정하고, 풍경을 묘사하고 풀어낼 때 푸르고 누런 색감에 집중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녹음이 짙은 풀숲 풍경은 우리 눈에 싱그러운 이미지로 다가오게 마련이지만, 강 작가가 지난해와 올해 찍은 뒤 아크릴 물감으로 덧칠한 <녹색연구-서울-공터> 연작들은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풀숲의 색 덩어리들은 세포처럼 증식하거나 얼룩처럼 흘러내리고 총알처럼 색점을 흩뿌리곤 한다.

지난 4일 원앤제이갤러리 전시장에서 만난 강홍구 작가. 자신의 근작인 <녹색연구-서울-공터-창신동> 앞에서 작품의 배경이 된 창신동 채석장의 과거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4일 원앤제이갤러리 전시장에서 만난 강홍구 작가. 자신의 근작인 <녹색연구-서울-공터-창신동> 앞에서 작품의 배경이 된 창신동 채석장의 과거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작품 속 녹음의 이미지는 불길하고 불안하다. 작가의 근작에서 녹색빛 공터는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거나 붕대를 덮고 싸맨 부상자의 면모에 가깝게 다가왔다. 활용 방안을 놓고 최근 논란을 빚은 서울 종로구 송현동 옛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터를 봄과 가을 멀리 인왕산을 배경으로 포착한 <녹색연구-서울-공터-송현동1·2>에서 잡풀이 수북이 자라난 땅의 녹음은 푸석푸석하고 균질하지 못한 물감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신작 <녹색연구> 연작의 선유도 그림은 뻗쳐올라가는 듯한 나무의 모양새와 느닷없이 등장한 풍선 이미지 등이 불안한 느낌을 자아낸다. 60년대 한강 개발을 위해 폭파됐다가 80년대 이후 자생적으로 복원된 밤섬을 그린 연작의 경우, 여의도의 고층빌딩을 배경으로 보이는 밤섬의 풍광에 녹색을 덧칠해 낯설고 기묘한 도시 자연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강홍구 작가의 2019년 작 <녹색연구-서울-공터-밤섬>의 세부. 여의도의 고층빌딩군을 배경으로 보이는 밤섬 숲의 풍광에 녹색을 덧칠해 낯설고 기묘한 도시 자연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강홍구 작가의 2019년 작 <녹색연구-서울-공터-밤섬>의 세부. 여의도의 고층빌딩군을 배경으로 보이는 밤섬 숲의 풍광에 녹색을 덧칠해 낯설고 기묘한 도시 자연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사실 10여년 전부터 쭉 찍어온 사진에 최근 공터와 녹색이란 화두를 잡아 의미를 붙여준 겁니다. 서울은 참 이상하고 자기 분열적인 도시란 생각이 들어요. 도심 변두리 곳곳에 폭력과 개발의 욕망, 역사적 상처가 남은 공터가 많은데, 하나같이 잡풀과 나무들이 형성한 녹음 속에 잠겨 존재하고 있거든요. 서울에서 녹색으로 남아 있는 공터들은 역사적 상처를 가렸거나 이말산, 서울숲, 남산처럼 운 좋게 역사의 질곡을 피한 곳들이죠.”

이미 수년 전부터 구사한 그림사진의 기법은 근작에서 더욱 강렬해졌다. 생생한 사진 이미지와 거칠고 두툼한 색의 이미지가 섞여 기괴할 뿐 아니라 뭔가 자꾸 어그러지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역사와 개발, 지대 차익을 둘러싼 갈등과 욕망이 꿈틀거리는 서울의 낯설고 기이한 여러 공터의 실체를 직관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신작 <녹색연구-서울-공터-선유도>. 불길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뻗쳐올라가는 듯한 숲나무의 모양새와 느닷없이 등장한 풍선 이미지 등이 불안한 느낌을 자아낸다.
올해 신작 <녹색연구-서울-공터-선유도>. 불길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뻗쳐올라가는 듯한 숲나무의 모양새와 느닷없이 등장한 풍선 이미지 등이 불안한 느낌을 자아낸다.
“관객들이 보고 나서, 이런 공터가 왜 서울에 있을까, 의문을 품고 우리가 어떤 시스템 속에서 장소를 사용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고민을 안 해도 할 수 없지만….”

이번 작업을 통해 수년 동안 축적했던 공터에 대한 단상과 고민을 정리했다고 말한 작가는 다음 작업으로 고향 전남 신안의 섬과 자연 공간에 묻힌 인간의 흔적을 복기하는 작업과 부산 달동네 공터의 풍경을 갈무리하는 데 신경 쓸 생각이라고 전했다. 공들여 포착한 사진에 물감 붓을 휘휘 그어대며 묘사한 소외지대 풍경들로 고속성장과 물신주의에 찌든 한국인의 인식을 까발려온 것이 강 작가 특유의 작업 콘텐츠였다는 점에서 앞으로 그가 어떤 앵글의 변모를 꾀할지 주목된다. 31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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