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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약한 사람들이 고양이를 더 잘 보듬는다는 건

등록 2020-05-06 17:21수정 2020-05-07 02:35

[다큐 ‘고양이 집사’ 조은성 피디-이희섭 감독]
“고양이밥 배달하는 중국집 사장
틈만 나면 챙겨주는 공방 사장

일본·대만과 달리 학대 많은 한국
긍정적 변화 모습 담고 싶었죠

사회 인식 좋아질 때까지 작품 계속
아이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고양이 집사>의 조은성 피디(왼쪽)와 이희섭 감독. 인디스토리 제공
<고양이 집사>의 조은성 피디(왼쪽)와 이희섭 감독. 인디스토리 제공

어릴 때부터 고양이와 함께 큰 조은성 피디는 2013년 뉴스를 접하고 충격에 빠졌다.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누군가가 일부러 지하실 문을 잠가 안에 갇힌 고양이 수십마리가 굶어 죽었다는 것이다. “작은 생명체와도 공존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자란 아이들이 만들 세상을 생각하니 답답해졌어요.” 4일 서울 용산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 피디가 말했다. 영화 프로듀서로 <그라운드의 이방인> <60만번의 트라이> 등 스포츠 다큐멘터리를 주로 제작해온 그가 한국·대만·일본의 길고양이를 담은 다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2017)의 기획은 물론 연출·촬영까지 도맡았던 까닭이다.

조은성 피디와 반려묘 해피. 인디스토리 제공
조은성 피디와 반려묘 해피. 인디스토리 제공

그가 또 한편의 고양이 다큐를 내놨다. 오는 14일 개봉하는 <고양이 집사>다. 이번엔 본업인 기획·제작에 집중했다. 연출과 촬영을 맡은 이는 이희섭 감독이다. “어린 시절, 시골집 부뚜막에 동네 고양이들이 몸을 데우러 오면 밥도 주고 함께 놀았다”는 이 감독은 영화 촬영감독으로 일하며 고양이 극영화인 단편 <캣 데이 애프터눈>과 장편 <어떻게 헤어질까>를 찍기도 했다.

두 애묘인이 처음 만난 건 2016년 여름 일본에서다. <그라운드의 이방인> 오사카 상영회에 때마침 영화 <대관람차> 로케이션 헌팅을 위해 일본에 머물던 이 감독이 찾아온 것이다. “끝나고 술 한잔 하는데, 이 감독이 말수가 적은 성격이라 처음엔 서먹했어요. 그런데 고양이 얘기가 나오니 말문이 터지더라고요. 둘이서 신나게 고양이 수다를 떨었죠. 언젠가 고양이 영화를 함께 하자고 제안도 했고요.”

이희섭 감독과 반려묘 레니. 인디스토리 제공
이희섭 감독과 반려묘 레니. 인디스토리 제공

2018년 둘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못다 한 얘기를 하기로 의기투합했다. “길고양이와 공존하는 일본·대만과 달리 한국은 길고양이 학대 등 부정적인 면이 부각됐거든요. 이번엔 긍정적으로 바뀌는 모습을 담아보고 싶었어요.” 조 피디의 기획의도에 공감한 이 감독은 그 길로 ‘고양이 마을’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강원 춘천 효자동으로 향했다. 방을 얻어 8개월 동안 살며 철가방에 짜장면 대신 고양이 도시락을 넣고 골목 구석구석 배달하는 중국집 사장, 틈만 나면 찾아오는 고양이에게 밥과 쉴 공간을 제공하는 바이올린 공방 사장 등 동네 ‘집사’와 고양이의 교감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후 서울 노량진수산시장, 경기 성남 재개발지역, 부산 청사포 마을까지 전국 곳곳을 누볐다.

“고양이를 만나면 멀리서 쪼그려 앉아 기다려요. 고양이가 위협이 없다고 느끼면 경계를 풀고 제 할 일을 하거든요. 그때 촬영해요. 나중엔 고양이들이 저한테도 집사 대하듯 친밀감을 표현하더라고요. 영화 찍으면서 느낀 건 약한 사람들이 고양이를 더 잘 보듬는다는 거예요. 동병상련, 약자의 연대 같은 거죠.” 이 감독이 말했다. 영화에는 이 감독의 반려묘 ‘레니’를 화자로 한 내레이션이 깔리는데, 배우 임수정이 목소리 연기를 했다.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무보수로 참여했단다.

&lt;고양이 집사&gt; 스틸컷. 인디스토리 제공
<고양이 집사> 스틸컷. 인디스토리 제공

최근 애묘인이 늘면서 고양이 영화가 관객과 자주 만난다. 코로나19 사태로 극장가가 침체한 와중에도 일본 영화 <선생님과 길고양이> <고양이와 할아버지>가 지난달 잇따라 개봉했다. 이들 영화와 <고양이 집사>의 차별점은 뭘까? “일본에는 고양이 극영화가 많아요. 고양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극대화해 연출하죠. 반면 우리 다큐 속 고양이들 표정은 슬프고 지쳐 보여요. 그런 길고양이들의 보편적 표정에서 현실을 읽을 수 있죠.” 조 피디의 설명이다. 그는 “이 땅이 인간만의 것은 아니건만, 다른 생명과 공존해야 한다는 걸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며 “이 영화를 아이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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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집사> 스틸컷. 인디스토리 제공

두 남자의 고양이 다큐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상처를 지닌 중년들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고양이들을 만나는 얘기가 다음 프로젝트였으나,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무기한 연기됐다. 대신 낙후된 마을에 예술가와 고양이가 들어가 활력을 불어넣는 얘기를 구상 중이다. “고양이에 대한 사회 인식이 좋아질 때까지 10년이든 20년이든 계속하려고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안 부러울 ‘고양이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도 만들 기세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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