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이 재난 끝에 ‘구원’이 있다면, 드라마 <어둠 속으로>

등록 2020-05-08 19:49수정 2020-05-09 02:02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벨기에 드라마 <어둠 속으로>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 아이엠디비(IMDb)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 아이엠디비(IMDb)

“서쪽으로 가려고요.” 브뤼셀 국제공항에 급하게 들어선 한 남자가 서쪽으로 향하는 제일 빠른 시간대의 비행기를 알아본다. 몹시 불안해 보이던 남자는 급기야 공항 보안요원의 총을 빼앗아, 이륙 준비 중인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난입한다. 테러리스트인가 싶었던 남자는 곧 태양이 모두를 죽일 거라는 영문 모를 소리를 늘어놓는다. 아직 기장도 탑승하기 전, 남자의 총에 부상을 입은 부기장 마티외(로랑 카펠루토)는 전직 공군 실비(폴린 에티엔)의 도움을 받아 비행기를 이륙시킨다. 공포와 의심에 휩싸인 승객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광인처럼 보였던 남자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알게 된다. 태양의 극성이 변화하면서, 지구는 빛이 닿는 모든 자리가 초토화되는 중이었다. 이제 남은 자들은 생존을 위해 일출의 반대 방향으로 계속 달아나야 한다.

지난 1일 넷플릭스가 공개한 벨기에 오리지널 시리즈 <어둠 속으로>(Into the Night)는 이제 진부해진 하이재킹(공중납치) 스릴러를 기후재난물과 결합해 엄청난 몰입도를 선사한다. 희망과 생명의 상징이던 빛이 절멸을, 절망과 죽음의 상징이던 어둠이 구원을 의미한다는 것부터가 의미심장하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빛을 등지고 끝없는 “어둠 속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 디스토피아 상황이 역설적으로 생명의 가치를 일깨워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재난물의 출발점으로 더없이 적절한 세팅이다.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 아이엠디비(IMDb)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 아이엠디비(IMDb)

비행기 안의 상황도 단순히 긴장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목적 이상의 시사점을 던진다. 다양한 국적과 계층에 속한 승객들이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극복하고 함께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은 마치 지금의 코로나19 팬데믹 시국을 축소해놓은 듯하다. 재난은 인간 공동체의 가장 취약한 면을 드러낸다.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백인 남성들, 제일 먼저 위험에 노출되는 여성과 노약자들, 인종에 대한 편견 등 집단 내부에서 반복되는 문제점들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외부 상황보다 큰 위협 요소가 되는 전개는 재난 서사가 지녀야 할 문제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를 더 절박하게 만드는 설정은 생존자들에게 항구적인 피난처가 없다는 점이다. 비행기는 계속 태양을 피해 날아가면서 임시 착륙을 통해 연료와 식량을 구해야 한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스릴러의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눈앞에 닥친 문제에만 몰두하다가 미래를 대비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주소를 비추기도 한다. 그렇다고 빛이 끼어들 자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재난물이 으레 그렇듯 인간은 희망인 동시에 절망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이는 타인을 구하려 하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의 생존만을 추구하려 한다. 보는 동안 자연스럽게 극한 환경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생각해보게 만든다. 재미와 의미를 다 잡은 재난스릴러의 등장이다.

티브이 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방시혁에 맞선 ‘민희진의 난’ 돌이킬 수 없다…뉴진스 앞날은? 1.

방시혁에 맞선 ‘민희진의 난’ 돌이킬 수 없다…뉴진스 앞날은?

이렇게 관능적인 스포츠 영화라니, ‘챌린저스’ 2.

이렇게 관능적인 스포츠 영화라니, ‘챌린저스’

[인터뷰] 민희진 “난 저작권과 무관한 제작자…공식 깨고 싶은 사람” 3.

[인터뷰] 민희진 “난 저작권과 무관한 제작자…공식 깨고 싶은 사람”

[인터뷰] 민희진 "K팝 산업 고질적 문제 개선하려 시도한 것은…" 4.

[인터뷰] 민희진 "K팝 산업 고질적 문제 개선하려 시도한 것은…"

좀비보다 더 무서운 기후위기…SF드라마로 만드니 현실감 있네 5.

좀비보다 더 무서운 기후위기…SF드라마로 만드니 현실감 있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