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즈 공연 리허설이 있던 지난 7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의 무대 맞은 편 끝에서 조명감독 이소연씨(왼쪽 사진)가 건반악기 다루듯 콘솔위의 버튼을 만지며 조명장비들을 조종하고 있다.
[100℃르포] 어둡고, 냉기 가득한, 가장 끝, 가장 높은 곳 빛의 연주, 날다
콘서트가 한창인 무대 위, 화려하고 현란하다. 가수가 그렇고 음악이 그렇지만, 빛이 없으면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조명’은 무대 위의 아름다움을 비추고, 때로는 스스로 그 아름다움의 한 부분이 되어 콘서트 분위기를 돋운다. 지난 7일 오후 스타 밴드 ‘버즈’의 ‘라이브 투어 콘서트―런’의 마지막 리허설로 분주한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조명’을 움직이는 손을 따라 무대 맞은편으로 가봤다.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는 말이 이렇게 잘 들어맞는 사람들도 없다. 핀조명(한 사람만 비추는 조명)을 맡은 일명 ‘핀잡이’들은 어둠과 냉기가 가득한 무대 맞은편의 가장 끝, 가장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오색찬란한 조명을 총지휘하는 이소연(31·테크노라이트 소속) 조명 감독이 자리를 잡은 곳도 무대 맞은편 중앙의 어두컴컴한 한 구석 일명 ‘프론트 오브 하우스’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아직 난방시스템이 가동되지 않은 썰렁한 공연장 한 곳에서 이 감독은 의자 높이의 휴대용 난방기에 앉아 간신히 냉기를 떨쳐내고 있었다.
일명 ‘프론트 오브 하우스’ 이번 콘서트에는 조명 세팅 인원과 시간을 줄이기 위해 비교적 손이 덜 가는 조명 장비들이 설치됐다. 하지만 13명의 조명 스태프가 움직여야 하는 조명은 199개에 이른다. ‘파64’, ‘파46’, ‘4라이트뱅크’ 등 고정된 상태에서 불만 켜지는 ‘컨벤셔널 픽스쳐’ 조명 92개, 로브 컬러스폿 1200 에이티, 로브 컬러스폿 575 에이티, 로브 워시 575 엑스티, 무빙 파, 무빙 뱅크, 무빙 블라인더 처럼 움직이면서 컬러도 바뀌는 ‘인텔리전트 픽스쳐’ 조명 103개, 핀조명인 ‘팔로우 스폿’ 4개가 그것이다. 특히 조명 감독은 이 모든 조명 장비들의 위치와 기능을 기억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장비들을 제어하는 콘솔 장비의 관련 기능까지 ‘안 보고 조작이 가능할 정도’로 숙지해야 한다. 콘솔 위를 빼곡이 메운 버튼과 휠, 페달이 250여개에 이르지만, 이 감독은 “이 정도면 큰 콘솔도 아니다”라며 태연하다. 입이 무거운 이 감독의 말은 사뭇 진지했지만 문득 연변총각(강성범) 말투의 수다가 연상됐다. ‘고저 우리 연변에서는 버튼 250개짜리 콘솔은 콘솔 축에도 못낌다’….
13명이 199개…마치 피아니스트 ‘라이브 투어 콘서트―런’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이번 콘서트의 조명 콘셉트도 관객들을 많이 ‘달리게’, 즉 흥분하게 하는 것이었다. 조명 감독은 이를 위해 객석 쪽으로도 가급적 조명을 많이 비춰 무대와 객석의 ‘어우러짐’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조명을 디자인했다. 패기 넘치는 젊은 밴드의 공연이라는 점에서, 노랑과 초록 컬러 등 대비가 극명한 조명을 많이 사용해 ‘힘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감독은 “일단 아티스트나 기획자들과 회의를 한 뒤 공연 성격을 파악한다”며 “버즈의 경우, ‘짚시풍 분위기에서 시작해서 밝아졌다가 다시 레드풍으로 간 뒤 반전을 살려달라’는 주문이 있었다”고 말했다. “말은 쉽지만 조명으로 표현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은 주문이었다”는 고충과 웃음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 감독은 2년 전 여름 콘서트에서 처음 만나 수십 차례가 넘는 공연에서 버즈와 호흡을 맞춰온, 버즈 콘서트에 있어서는 ‘베테랑’ 조명 감독이었다. 녹록지 않은 주문이었지만 이 감독이 이번 콘서트 조명을 디자인하는 데는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첫 공연 당시, 디자인에만 3주 가까이 걸렸던 것에 비하면 일취월장이다. 그는 “조명 디자인 프로그램을 활용해 대략적인 디자인을 하고, 통과가 되면 콘서트 연습실에 가서 직접 음악을 들으면서 개별 노래와 파트에 맞게 세부적인 디자인을 짠다”며 “조명팀과 함께 공연 전 이틀 동안 꼬박 조명을 설치했고, 공연 당일 최종 리허설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저 이정도는 콘솔 축에도 못낌다 콘서트 시작 3시간 전께부터 시작된 마지막 리허설. 쉴 새 없이 콘솔 위의 버튼을 누르고, 페달을 올렸다 내리고, 휠을 돌리는 이 조명 감독의 손길은 건반을 두드리는 피아니스트의 그것 같았다. 이 감독의 손가락이 콘솔 위를 오갈 때마다 조명의 위치가 바뀌고 색깔이 바뀌고 모양이 바뀌었다. 화려한 무대의 어두운 맞은편, 이 감독과 그의 조명팀은 버즈의 음악에 화음을 싣듯, 음악의 변화에 맞춰 ‘빛의 화음’을 넣으며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글·사진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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