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그래서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는 거야!” 우리 사회는 참 이상하다. 점심을 안 먹거나, 혼자 밥을 먹으면 친구 하나 없는 ‘사회 부적응자’라고 치부한다. 먹기 싫어서, 그 시간만이라도 사람들에게 치이기 싫어서 택한 ‘혼밥’을 두고 왜 내 인생을 논하나.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혼자 밥 먹는 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인기쟁이’처럼 보이려면 ‘삼시두끼’ 약속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눈치 보지 말고 혼밥을 즐기라고 말하는 작품이 있다.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1인용 식탁>(23일까지)이다. 두산아트센터가 매년 선보이는 ‘두산인문극장’ 시리즈의 하나로, 올해 주제는 ‘푸드’다. <1인용 식탁>이 첫번째 작품인데, 혼밥을 가르쳐주는 학원을 소재 삼은 윤고은의 동명 소설(2010년)을 각색했다. 이기쁨 연출은 “2020년에 혼밥은 특별한 문화는 아니지만, 여전히 별나다는 시선이 따라다닌다”며 “혼자 하는 식사와 함께 하는 식사가 동등하게 공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 우선 당신의 ‘혼밥력’부터 테스트해보자. 배는 고픈데, 같이 먹을 사람이 없다. 이럴 때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굶는다? 먹는다? 혼자서 당당히 뭐든 다 먹을 수 있다면, 굳이 이 연극을 볼 필요가 없다. 이미 혼밥 ‘만렙’의 경지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굶거나 먹고 싶은 걸 못 먹는다면, 이 연극이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소심한 주인공 오인용(류혜린)이 혼자서도 밥을 잘 먹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현실의 수많은 오인용의 ‘혼밥 지침서’다.
혼밥이 마음먹는다고 쉽게 되지는 않는다. <1인용 식탁>은 혼밥도 단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1단계는 패스트푸드점, 2단계는 한정식·패밀리 레스토랑, 3단계는 돌잔치·결혼식, 4단계는 혼밥의 끝판왕 ‘고깃집’이다. 섣불리 덤볐다간 좌절하기에 십상이다. 처음에는 당연히 눈치 볼 수밖에 없다. 사람 많은 점심시간에 혼자서 2인용 혹은 4인용 테이블을 차지하면 주인이 싫어한다. “우선은 손님이 적은 주말보다 평일, 그리고 점심·저녁 시간보다는 그사이 시간을 노려보라”고 연극은 말한다. “(크리스마스)이브 같은 날은 절대 가지 마세요!”
혼자 식당에 들어가는 것까지 성공했다고 끝이 아니다. 진정한 혼밥은 ‘먹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얼마나 자~알 먹느냐에 달렸다. 혹시 혼밥할 때 휴대전화 보며 급하게 먹지 않는가? 누가 볼까봐 구석 자리에 앉아 고개 푹 숙이고 있진 않은가? 이렇게 혼밥을 하면 역류성 식도염에 걸릴 뿐이다. 혼자 천천히 잘 먹는 사람이 되려면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연극은 마음속으로 리듬을 타면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스테이크는 4분의 2박자예요. 강에 썰어 먹고~ 약에 와인 마셔~ 미소!” 접시를 너무 쳐다보면 처량해 보이니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어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당장은 타인과 시선은 맞추지 마시오!”
난 원래 혼자서도 잘 먹는다고? 해보니 별게 아니라고? 고깃집에서 삼겹살 혼자 지글지글 구워본 적 없으면 말을 말자. “산악인에게 에베레스트가 있다면 혼밥족에겐 고깃집이 있다!” 마지막 고지 고깃집을 마스터해야 진짜 혼밥왕이 된다. 1인가구 비율이 30%가 넘는 상황에서 1인용 좌석이 생기는 등 혼밥이 문화로 자리잡았지만, 유일하게 고깃집만은 예외다. 링 위에 올라간 복서처럼, 고깃집의 모든 사람이 오로지 ‘나’만 바라본다. 그래서 많은 혼밥족이 이 고깃집 단계에서 포기하고 만다. 연극은 말한다. “구석 자리에서 시작해 서서히 가운데로 들어오세요! 당신은 고기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못 먹어서 싫어했던 것뿐입니다! 시선에 굴하지 마십시오!”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게 되면서부터 혼밥은 맛있어진다. 결국, <1인용 식탁>은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말고 주체적인 삶을 살자는 이야기다. 이기쁨 연출은 “삶에는 나만의 방식이 있고, 삶은 어떤 나만의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혼밥을 부끄러워하던 오인용은 80분 연극의 끝자락에선 혼자 고깃집에서 고기를 지글지글 구워 먹는다. 맥주도 한잔 곁들이고 여유롭게 쌈도 싸 먹는다. 배우들이 무대에서 실제로 고기를 구워 먹는 설정이 인상적이다. 어두운 극장 안, 고기 냄새가 코를 찌르면 혼밥의 마지막 단계인 고깃집부터 공략해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세상의 축은 바뀌고 있습니다. 더 이상 혼자는 외로운 게 아닙니다. 혼자 밥 먹는 걸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21세기의 유물이 될 것입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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