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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개그콘서트, 마침표 만큼이나 아쉬운 쉼표…이것이 끝은 아니겠죠

등록 2020-05-24 15:21수정 2020-05-25 17:51

[21년만에 휴식기 갖는 개그콘서트]
대학로 문화, TV코미디 역사로
방청표 구하려 밤새우는 관객들
한주의 끝과 시작 알리던 상징
코미디붐 일으키고 스타들 배출

매주 13개, 1550개 코너 선보여
3년11개월 최장수 ‘달인’부터
‘봉숭아 학당’ ‘마빡이’ 등 큰 인기
캐릭터·유행어까지 히트 치기도

재정비 기간 가져야 하는 이유
지상파라서 안 되는 각종 제약과
뉴미디어 시대 한계에 부딪혀
포맷·신인 등용 시스템 보완 필요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한데~
출연진, 폐지소식 기사로 접하고
마지막 방송도 야구 경기에 밀려
“청춘 바쳤던 고향집 같은 곳인데…”
1999년 9월 시작해 2020년 6월까지 21년을 함께한 한국방송 <개그콘서트>가 잠정 휴식에 들어간다. 한국방송 제공
1999년 9월 시작해 2020년 6월까지 21년을 함께한 한국방송 <개그콘서트>가 잠정 휴식에 들어간다. 한국방송 제공
“고향 집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지나가다가 쓱 쳐다만 봐도 기분 좋아지고 추억이 생각나고. 그랬던 곳이 재개발되어 없어지는 느낌이에요.” 지난 21일 전화로 만난 김원효는 감성 가득한 말로 속내를 드러냈다. “언젠가는 갈 수 있다, 가고 싶다 했는데 다시는 갈 수 없게 된 것 같은 느낌”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마음이 싱숭생숭한 건 김원효만이 아니다. 박준형, 강유미, 변기수, 박영진을 포함한 많은 코미디언에게 <개그콘서트>(한국방송2)는 “고향에 있는 집”이었다.

그랬던 고향 집이 사라진다. <한국방송>은 “<개그콘서트>가 잠시 휴식기를 갖는다”고 지난 14일 밝혔다. “달라진 방송 환경, 코미디 트렌드 변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계 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면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다시 만나 뵙기를 바란다”는 마음도 함께 전했다. <개그콘서트> 제작진은 “폐지가 아니라 휴식”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1999년 9월4일부터 21년. 한주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알리미’ 노릇을 해왔기에 <개그콘서트>의 쉼표는 수많은 이에게 마침표 같은 무게감을 안긴다. <개그콘서트>에 출연했던 이들은 잠시의 헤어짐이 영원한 이별이 될까 마음이 편치 않다. 21년간 온 힘을 다해 대한민국을 웃기고 <한국방송>의 효자·효녀 구실을 해왔는데 몇년의 부진으로 애물단지가 된 것이 못내 서운하기도 하다. 최근에는 토요일에서 다시 금요일로 방송일이 자주 바뀌며 이리저리 치였지만, <개그콘서트>는 21년간 대한민국 코미디의 상징이었다.

‘봉숭아 학당’은 한편의 캐릭터쇼였다. 한국방송 제공
‘봉숭아 학당’은 한편의 캐릭터쇼였다. 한국방송 제공
코미디 붐 일으키고 스타 탄생 ‘개콘’이어서 가능했다 강유미는 “<개그콘서트>로 공개 코미디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 이 포맷이 다른 방송사에도 영향을 미쳐 티브이에 코미디 붐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개그콘서트>는 대학로 공연 문화를 그대로 옮겨온 것 같은 틀(포맷)이 화제였다. 콩트 코미디 이상의 웃음은 없다고 생각했던 티브이 코미디 역사를 새로 썼다. 눈앞에서 코미디언들의 공연을 볼 수 있어 관객들이 방청 표를 구하려고 밤을 새우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박영진은 “<개그콘서트> 엔딩곡(스티비 원더의 ‘파트타임 러버’)이 흐르면 ‘한주가 끝나는구나, 시작되는구나’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상징성이 컸다. 시청자들이 피로를 풀면서 동시에 새로 시작하는 에너지도 받았다”고 말했다.

‘비상대책위원회’는 “고뤠~”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한국방송 제공
‘비상대책위원회’는 “고뤠~”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한국방송 제공
수백명 코미디언들의 ‘피 땀 눈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개그콘서트>는 매주 13개 남짓의 꼭지(코너)를 선보인다. 21년간 1550개 넘는 꼭지가 탄생했다. ‘달인’(3년11개월), ‘집으로’(2년2개월) 등 장수 꼭지도 있었고, 코미디언들이 가장 좋아하는 꼭지로 꼽은 ‘봉숭아학당’을 비롯해 ‘생활사투리’ ‘애정남’ ‘네가지’ ‘마빡이’ 등이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사회생활의 쓰디쓴 조직논리와 군대식 문화를 풍자한 ‘분장실의 강선생님’처럼 세태를 반영한 꼭지들이 인기를 얻었다. 코미디에서 이례적으로 ‘시리즈 개그’를 선보인 변기수는 “<개그콘서트>에 청춘을 바쳤다”고 말했다. “공중파 방송 3사 합쳐 총 13번 도전 끝에 28살에 처음으로 <개그콘서트> 무대에 섰어요. 그날을 잊을 수가 없죠. 이 무대 한번 올라가려고 지하 공연장에서 연습하며 20대를 보냈으니까요.” 강유미도 “22살에 시작해 20대를 <개그콘서트>와 함께 보냈다”고 회상했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초심을 담았던 꼭지를 잊을 수가 없다. 강유미는 “안영미와 했던 ‘고고 예술속으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 코미디언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했던 시기였다. 어떻게든 웃기고 싶어 내가 가진 것을 200%까지 다 끄집어냈다”고 말했다.

‘달인’ ‘옥동자’ ‘복학생’ 같은 역사적인 인기 캐릭터도 탄생했다. “얼굴도 못생긴 것들이 잘난 척하기는”(정종철), “그까이꺼 대충~”(장동민), “무를 주세요~”(박준형), “밤바야~”(심현섭), “고뤠?”(김준현) 등 유행어도 잇따랐다. “‘무를 주세요’가 인기를 끈 이후 마트에서 무를 세로로 잘라서 팔기 시작했다”고 박준형이 회상할 만큼 당시 <개그콘서트>의 파급력은 컸다. 2003년 8월31일 방영한 200회 특집은 역대 최고 시청률인 35.3%(닐슨코리아 집계)를 기록했고,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 연속 <한국방송 연예대상>에서 ‘시청자가 뽑은 최고의 프로그램상’을 받았다. 출연자인 박준형과 김준호는 각각 2003년과 2013년 ‘연예대상’을 수상하는 등 코미디언들도 스타덤에 올랐다. 김병만은 1000회 특집 당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달인’으로 일본, 중국에도 진출했다. 지금의 공부하고 도전하는 김병만의 시초였다”고 말한 바 있다. 박준형이 찬란했던 초창기를 만들고 김병만이 중심을 잡고 김준호가 후반을 이끌었다.

‘달인’은 달인 같은 김병만 덕에 장수했다. 한국방송 제공
‘달인’은 달인 같은 김병만 덕에 장수했다. 한국방송 제공
포맷 변화부터, 신인 양성 시스템까지 다양한 변화 고민해야 박준형은 “그랬던 <개그콘서트>가 잠정 폐지에 이르게 된 데 책임감을 느낀다. 안 웃긴다는 시청자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2010년대 후반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며 끊임없이 위기론이 불거진 원인을 코미디언들은 여러가지로 분석한다. 박영진은 “유튜브의 등장 등 뉴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말했다. “유튜브에서 더 자유롭고 자극적인 코미디를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제약 많은 티브이 개그가 더는 웃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케이블에서 내보내는 <코미디 빅리그>와 비교해도 지상파인 <개그콘서트>는 하면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장난감 총이라도 3초 이상 겨누면 안 되는 등 지상파이기에 감당해야 할 제약이 이들을 자체 검열하게 만들었다. 한 코미디언은 “<개그콘서트>의 강점인 정치풍자도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조심스러운 분위기를 겪으며 점차 시도조차 줄었다”고 말했다. 제약 많은 티브이를 떠나 자유로운 유튜브로 떠난 코미디언들이 늘어난 것도 이유다.

‘수다맨’의 강성범. 한국방송 제공
‘수다맨’의 강성범. 한국방송 제공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핑계에 불과할지 모른다. 박준형은 “이런저런 원인이 있겠지만 그런데도 재미있으면 본다”며 “무조건 재미있어져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튜브에서도 예전 꼭지를 선보이자 반응이 폭발적이다. 이들은 <개그콘서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비 기간은 그런 점을 보완해나가는 시간이다. 박영진은 “공개 코미디 형식이 지금 시대에 적절한지부터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며 “하지만 유튜브에서 예전 영상이 인기를 끄는 걸 보면 단순히 포맷 문제만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준형은 “신인을 키우는 시스템의 문제”를 짚었다. “<개그콘서트>는 선후배가 조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새로운 스타가 끊임없이 탄생했다. 선배들이 부진해도 신인들이 그 자리를 채워왔는데, 그 시스템이 조금 막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선배 코미디언들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중견 코미디언은 “공채 코미디언을 뽑을 때나, 1주일에 한번 꼭지 검사를 할 때 제작진 외에 웃음감이 남다른 선배 코미디언들이 심사를 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고음불가’의 저음도 다시 보고 싶은 꼭지다. 한국방송 제공
‘고음불가’의 저음도 다시 보고 싶은 꼭지다. 한국방송 제공
21년 사랑받았던 ‘개콘’…이별에 예의가 필요해 2014년 <개그콘서트>는 회당 7500만원(개그맨 80여명의 출연료 합계)으로 회당 6억원의 광고 매출을 올렸다. 당시 <한국방송> 간부들이 “효자·효녀 프로그램”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랬던 <개그콘서트>가 예전 같지 않자 찬밥 신세가 됐다. 방송의 당연한 논리다. 하지만 찬란했던 시대를 지켜본 선배 코미디언들은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개그콘서트> 출연자 대부분은 프로그램 잠정 폐지 소식을 기사로 먼저 알았다고 한다. 기사가 나간 뒤에 제작진이 녹화장에서 이들을 한데 모아 재정비 사실을 알렸다. 오랫동안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기보다 갑작스레 정해진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방송> 관계자는 “올해 공채 코미디언 선발이 예정됐었다. 코미디언들이 참여해 홍보 영상까지 촬영한 것으로 안다. 그 영상을 내보내기 직전 잠정 폐지 소식이 알려져 자연히 공채 계획도 무산됐다”고 말했다.

마지막 방송 날짜도 정해지지 않았다. 6월3일 마지막 녹화를 하고 이를 5일에 내보내야 하지만 프로야구 중계 여부에 따라 변동될 수도 있다고 한다. 한 원로 코미디언은 “21년간 효자 노릇을 해준 프로그램인데 마지막 방송마저 야구에 밀려 정확한 날짜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이 없어지면 코미디언들의 일자리는 사라진다. 김원효는 “나는 그래도 <개그콘서트>로 얼굴을 알렸고 받은 것이 많지만 지금 막 활동하기 시작한 후배들은 갈 곳이 없어진 것이 가장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다행히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자유롭게 개그를 할 수 있는 시대다. 일부는 택배, 대리운전 등의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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