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형석의 시사문화재]
간송미술관 왜 이러나
금동보살입상 등 경매 3분여만에 유찰
한국 미술시장 역사상 가장 허망했던 순간
경매 출품 목적이 보다 더한 금전적 수익
명분도 진행과정도 선대 권위 단박에 실추시켜
간송 떠받치던 연구자들 수년전부터 배제
전시 격 추락에 급기야 복제품 전시까지
민족 문화 수호 위상 되찾아야
간송미술관 왜 이러나
금동보살입상 등 경매 3분여만에 유찰
한국 미술시장 역사상 가장 허망했던 순간
경매 출품 목적이 보다 더한 금전적 수익
명분도 진행과정도 선대 권위 단박에 실추시켜
간송 떠받치던 연구자들 수년전부터 배제
전시 격 추락에 급기야 복제품 전시까지
민족 문화 수호 위상 되찾아야

지난달 21~2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사옥에서 제한 공개된 간송 컬렉션 소장 불상 2점의 전시 장면. 앞이 7세기 전기의 금동보살입상(보물 제285호)이며 뒤가 7세기 중기의 금동여래입상(보물 제284호)이다.
‘어렵게 지켜낸 민족의 보물이니 되팔기를 흥정하지 말라.’간송 전형필(1906~1962)의 금칙이 무너진 건 한순간이었다. 50여년간 숱한 재력가들의 제안을 물리치고 간송의 두 아들이 죽을힘 다해 지켜온 미술 명가의 자존심 또한 산산이 흩어졌다. 지난달 27일 저녁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사옥에서 진행된 간송 컬렉션 불상 2점의 특별 경매 결과는 간송의 신화에 조종을 울렸다. 57년 전 국가 보물로 지정된 7세기 금동보살입상과 금동여래입상 불상이 시작가 15억원에 새 주인을 기다렸지만, 누구도 응찰하지 않았다. 3분여 만에 유찰로 끝난 경매는 한국 미술시장 역사에서 가장 허망했던 순간으로 기억될 듯싶다. 지난해 11월 홍콩에서 100억원을 넘기며 사상 최고가에 낙찰된 김환기의 대작 <우주> 경매와 극단적으로 대비됐다. 전인건 현 간송미술관장의 부친이자 40여년 동안 관장을 역임한 고 전성우는 2014년 간송 문화 기획전 도록 머리말에 “수장이란 시대정신의 보존이란 관점으로 볼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와 맥락이 다가오는 것”이라며 “역사를 깨우쳐주는” 소장품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금동여래입상의 얼굴과 상체를 가까이서 본 모습. 당당한 표정과 체구로 빚어냈는데, 오른쪽 어깨 부분만 도드라지게 육감적으로 드러낸 색다른 옷차림이 인상적이다. 당나라 초기 양식의 영향을 받은 통일신라 불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동보살입상의 머리와 상체 모습. 경남 거창에서 출토됐다고 전해지는 이 불상은 가까이 가서 볼수록 조형적 진가가 더 확실하게 드러난다. 전형화한 당대 중국풍 불상의 용모와 달리 한반도 고대인의 생생한 얼굴을 소재로 조형한 듯한 느낌이 물씬하다. 그러면서도 서 있는 자세나 표정 등이 꼿꼿하고 단정해 건실하고 강직한 선조들의 모습을 실견하는 듯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간송 전형필은 수집 행보를 시작한 1930년대 초부터 불교유산들의 입수, 보존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1938년 인천항에서 일본으로 반출되기 직전에 거금을 주고 사들인 ‘괴산 팔각당형 부도’(국가보물)를 보화각에 옮겨 놓은 뒤 지인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탑 바로 아래 흰 한복을 입은 이가 간송이다.

1962년 1월 간송 전형필이 별세한 뒤 차려진 빈소의 영단. 진중한 용모를 간직한 간송의 초상사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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