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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간송 사후 58년만에 간송 신화의 ‘조종’

등록 2020-06-03 05:00수정 2020-06-03 12:41

[노형석의 시사문화재]
간송미술관 왜 이러나
금동보살입상 등 경매 3분여만에 유찰
한국 미술시장 역사상 가장 허망했던 순간
경매 출품 목적이 보다 더한 금전적 수익
명분도 진행과정도 선대 권위 단박에 실추시켜

간송 떠받치던 연구자들 수년전부터 배제
전시 격 추락에 급기야 복제품 전시까지
민족 문화 수호 위상 되찾아야
지난달 21~2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사옥에서 제한 공개된 간송 컬렉션 소장 불상 2점의 전시 장면. 앞이 7세기 전기의 금동보살입상(보물 제285호)이며 뒤가 7세기 중기의 금동여래입상(보물 제284호)이다.
지난달 21~2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사옥에서 제한 공개된 간송 컬렉션 소장 불상 2점의 전시 장면. 앞이 7세기 전기의 금동보살입상(보물 제285호)이며 뒤가 7세기 중기의 금동여래입상(보물 제284호)이다.

‘어렵게 지켜낸 민족의 보물이니 되팔기를 흥정하지 말라.’

간송 전형필(1906~1962)의 금칙이 무너진 건 한순간이었다. 50여년간 숱한 재력가들의 제안을 물리치고 간송의 두 아들이 죽을힘 다해 지켜온 미술 명가의 자존심 또한 산산이 흩어졌다.

지난달 27일 저녁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사옥에서 진행된 간송 컬렉션 불상 2점의 특별 경매 결과는 간송의 신화에 조종을 울렸다. 57년 전 국가 보물로 지정된 7세기 금동보살입상과 금동여래입상 불상이 시작가 15억원에 새 주인을 기다렸지만, 누구도 응찰하지 않았다. 3분여 만에 유찰로 끝난 경매는 한국 미술시장 역사에서 가장 허망했던 순간으로 기억될 듯싶다. 지난해 11월 홍콩에서 100억원을 넘기며 사상 최고가에 낙찰된 김환기의 대작 <우주> 경매와 극단적으로 대비됐다. 전인건 현 간송미술관장의 부친이자 40여년 동안 관장을 역임한 고 전성우는 2014년 간송 문화 기획전 도록 머리말에 “수장이란 시대정신의 보존이란 관점으로 볼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와 맥락이 다가오는 것”이라며 “역사를 깨우쳐주는” 소장품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금동여래입상의 얼굴과 상체를 가까이서 본 모습. 당당한 표정과 체구로 빚어냈는데, 오른쪽 어깨 부분만 도드라지게 육감적으로 드러낸 색다른 옷차림이 인상적이다. 당나라 초기 양식의 영향을 받은 통일신라 불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동여래입상의 얼굴과 상체를 가까이서 본 모습. 당당한 표정과 체구로 빚어냈는데, 오른쪽 어깨 부분만 도드라지게 육감적으로 드러낸 색다른 옷차림이 인상적이다. 당나라 초기 양식의 영향을 받은 통일신라 불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간송은 1930~45년까지 불과 15년 동안의 수집 활동을 통해 구매와 경매에 얽힌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했다. 1935년 세계적인 일본 고미술 업체 야마나카 상회와 피 말리는 호가 대결로 백자청화철채동채 난국초충문병을 낙찰받은 일이나, 일본에 가서 소장자와 담판하면서 혜원 풍속도첩, 영국인 개츠비의 청자 명품 컬렉션을 인수한 일화는 전설이 됐다.

간송 사후 58년 만에 치러진 이 경매는 명분은 물론, 진행 과정에서 선대 컬렉션의 권위를 단박에 실추시켰다. 출품 목적이 얼마나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느냐였기 때문이다. 경매 당일 아침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경매를 취소하고 가격 협상을 통해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보도가 전해졌지만, 미술관 쪽이 이를 묵살하면서 경매를 통해 최대한 값을 받아내겠단 의중을 드러냈다.

금동보살입상의 머리와 상체 모습. 경남 거창에서 출토됐다고 전해지는 이 불상은 가까이 가서 볼수록 조형적 진가가 더 확실하게 드러난다. 전형화한 당대 중국풍 불상의 용모와 달리 한반도 고대인의 생생한 얼굴을 소재로 조형한 듯한 느낌이 물씬하다. 그러면서도 서 있는 자세나 표정 등이 꼿꼿하고 단정해 건실하고 강직한 선조들의 모습을 실견하는 듯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금동보살입상의 머리와 상체 모습. 경남 거창에서 출토됐다고 전해지는 이 불상은 가까이 가서 볼수록 조형적 진가가 더 확실하게 드러난다. 전형화한 당대 중국풍 불상의 용모와 달리 한반도 고대인의 생생한 얼굴을 소재로 조형한 듯한 느낌이 물씬하다. 그러면서도 서 있는 자세나 표정 등이 꼿꼿하고 단정해 건실하고 강직한 선조들의 모습을 실견하는 듯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간송이 민족문화를 지킨 영웅으로 부각된 데는 간송학파로 불리는 연구집단을 이끌며 40년 넘게 간송 기획전을 벌여온 최완수 전 연구실장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1971년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겸재전을 열면서 시작한 간송 기획전이 2000년대 들어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등의 걸작 전시로 구름 떼 같은 관객을 불렀고, 간송에 대한 국민적 추앙을 끌어냈다. 전시장의 협소함이 지적되기는 했지만, 기획 과정이나 컬렉션 관리를 둘러싼 잡음이 나온 적은 없다. 간송의 후손인 전성우·전영우 형제와 최완수 전 실장을 비롯한 연구진 사이엔 컬렉션 운영·전시기획에 소유주가 관여하지 않고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일종의 집단지성과 같은 협력 운영 체제가 유지됐기 때문이다.

현재 간송미술관은 이런 과거의 미덕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컬렉션을 운영하는 대표는 2013년부터 사무국장을 맡아 2018년 취임한 전인건 관장이다. 작은삼촌인 전영우 전 상명대 교수는 관장을 그만두고 형 전성우가 맡았던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후손들에게 미술관 운영권이 승계되는 동안 최완수 전 실장을 비롯한 연구자들은 수년 전부터 컬렉션 운영에서 배제된 상황이다.

간송 전형필은 수집 행보를 시작한 1930년대 초부터 불교유산들의 입수, 보존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1938년 인천항에서 일본으로 반출되기 직전에 거금을 주고 사들인 ‘괴산 팔각당형 부도’(국가보물)를 보화각에 옮겨 놓은 뒤 지인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탑 바로 아래 흰 한복을 입은 이가 간송이다.
간송 전형필은 수집 행보를 시작한 1930년대 초부터 불교유산들의 입수, 보존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1938년 인천항에서 일본으로 반출되기 직전에 거금을 주고 사들인 ‘괴산 팔각당형 부도’(국가보물)를 보화각에 옮겨 놓은 뒤 지인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탑 바로 아래 흰 한복을 입은 이가 간송이다.

미술관이 2000년대 이후 시도한 변화는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2000년대 초반 성북동 미술관의 기획전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했다. 명품 문화재를 자리만 바꿔 되풀이해 등장시키고, 현대미술·패션 전시와 무리한 접목을 시도해 격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디디피)와 전시 성과를 놓고 갈등이 일자 롯데그룹 산하 잠실 미술관으로 전시장을 옮기려다 반발 여론이 일자 철회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엔 아산 현충사와 충무공 <난중일기> 등의 유품을 함께 전시하려 했으나 충무공 후손 일부의 가처분 신청으로 복제품으로만 전시를 메워 간송 역사상 처음 공개사과를 하기도 했다. 전 관장은 지난해 디디피의 마지막 전시를 열면서 이르면 2019년 가을부터 간송미술관에서 봄가을 기획전을 재개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전시 방향은 아직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1962년 1월 간송 전형필이 별세한 뒤 차려진 빈소의 영단. 진중한 용모를 간직한 간송의 초상사진이 보인다.
1962년 1월 간송 전형필이 별세한 뒤 차려진 빈소의 영단. 진중한 용모를 간직한 간송의 초상사진이 보인다.

간송의 업적은 혼자 이룬 것이 아니다. 간송은 1920년대 휘문고보 미술 스승이던 춘곡 고희동의 권유로 위창 오세창을 만나 감식과 수집의 기본 틀을 배웠고, 15년 만에 조선 최고의 컬렉터로 우뚝 서 민족문화의 수호자가 됐다. 해방 후 최순우, 황수영 등 학자들과 교우하면서 최완수라는 후대 학자가 자신의 소장품을 민족문화의 맥락에서 재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닦아놓았다. 이제라도 간송의 후예들은 눈과 귀를 열고 간송 컬렉션의 미덕이었던 집단지성 체제를 다시 구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간송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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