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단독] 220평! 경주 낭산벌에 운동장만 한 ‘신라 연못’ 드러났다

등록 2020-06-03 19:17수정 2020-06-03 19:40

경주 전 황복사터 4차 발굴 현장 공개
연못 바닥서 나온 목간과 눈금자 눈길
못 삼면 귀퉁이선 정교한 귀면와 출토
못 물 대고 지키는 용왕 이미지 담은 듯
정체불명 원형 무늬 찍은 토제품도 나와
3일 학계 인사들에게 공개된 전 황복사터 유적의 초대형 인공연못 발굴현장. 멀리 낭산 기슭의 황복사 석탑 앞으로 약간 튀어나온 방형 모양으로 펼쳐진 220여평의 거대 연못이다. 여러 크기의 돌들을 거칠게 다듬어 호안용 석축에 썼는데, 무덤의 석물들도 뒤섞여 눈길을 끌었다. 호안과 바닥에선 귀면와, 목간, 나무 자 등의 중요유물들이 잇따라 출토되었다.
3일 학계 인사들에게 공개된 전 황복사터 유적의 초대형 인공연못 발굴현장. 멀리 낭산 기슭의 황복사 석탑 앞으로 약간 튀어나온 방형 모양으로 펼쳐진 220여평의 거대 연못이다. 여러 크기의 돌들을 거칠게 다듬어 호안용 석축에 썼는데, 무덤의 석물들도 뒤섞여 눈길을 끌었다. 호안과 바닥에선 귀면와, 목간, 나무 자 등의 중요유물들이 잇따라 출토되었다.

1300년 전 신라 고승 의상이 탑돌이했다는 설이 전해져온 경주 낭산 기슭의 황복사 석탑. 이 유명한 국보 석탑 앞 들녘에 신라인들이 학교 운동장만 한 크기로 파놓은 거대 연못이 묻혀 있었다.

경주의 옛 신라 왕실사원 황복사 터에서 발견된 통일신라~고려시대의 초대형 인공 연못(<한겨레> 5월 29일치 18면 단독보도)이 3일 장대한 위용을 드러냈다.

발굴기관인 성림문화재연구원(원장 박광렬)은 이날 사원터 동쪽 구역인 구황동 184번지 일대 1324평의 조사 현장에서 전문가들을 불러 자문회의를 열고 220평에 달하는 석탑 앞 인공 연못 터와 주변의 집터, 담장터, 목간·기와 등 주요 유물 100여점을 내보였다. 지난해 10월부터 이달까지 진행된 4차 발굴조사로 드러난 유적들이다. 특히 연못터 바닥에서는 한자들이 적힌 나무쪽 고대 문서인 목간 한쪽과 3mm 간격으로 눈금이 새겨진 신라인의 목척(나무 자)이 출토됐는데, 이날 판독 분석결과와 함께 실물이 공개됐다. 연못 호안 삼면의 모퉁이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기와의 최고 걸작 귀면와(용 혹은 괴수 모양을 새긴 기와)도 함께 공개했다.

조사 현장에서 공개된 주요 출토품 중 하나인 목간과 목척(나무자).
조사 현장에서 공개된 주요 출토품 중 하나인 목간과 목척(나무자).

성림문화재연구원이 분석해 내놓은 목간의 판독문. ‘上早(또는 軍)寺迎詔沙彌十十一年(상조사영조사미21년)’으로 판독되는데, ‘왕께서 일찍이 절에 영(조서)를 내린 것을 사미승(승려)들이 받아들였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성림문화재연구원이 분석해 내놓은 목간의 판독문. ‘上早(또는 軍)寺迎詔沙彌十十一年(상조사영조사미21년)’으로 판독되는데, ‘왕께서 일찍이 절에 영(조서)를 내린 것을 사미승(승려)들이 받아들였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목간 실물(아래)과 적외선 사진으로 찍은 목간(위). 적외선 사진에서 글자가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목간 실물(아래)과 적외선 사진으로 찍은 목간(위). 적외선 사진에서 글자가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이번에 확인된 대형 인공 연못은 조사 지역 남동쪽 경계에 동쪽이 약간 돌출된 방형의 모양새로 자리 잡고 있다. 안압지(월지)와 구황동 분황사 옆의 원지에 이어 경주의 왕경유적에서는 세 번째로 큰 신라 인공연못으로 확인됐다. 8세기 중후반 통일신라시대에 작은 방형의 연못으로 시작해 9세기를 거쳐 10세기 이후 고려시대까지 최소 3차례 이상 증·개축을 거치면서 200평 이상 되는 면적으로 확장된 흔적이 보인다. 정원의 딸림 연못인 원지의 구실과 더불어 불이 났을 때 물을 대거나 생활용수를 대는 저수조 용도도 겸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목간에 적힌 글자는 연구원과 목간학회 소속 전문가들이 적외선 사진 등을 검토한 결과 ‘上早(또는 軍)寺迎詔沙彌十十一年(상조사영조사미21년)’으로 판독됐다. ‘왕께서 일찌기 절에 영(조서)를 내린 것을 사미승(승려)들이 받아들였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早’를 ‘軍’으로 읽으면 ‘상군사’라는 절 이름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고 박 원장은 설명했다. 21년은 신라시대 전성기를 이끈 경덕왕 또는 성덕왕의 재위연도를 뜻할 가능성이 크다고 그는 주장했다. 눈금이 정밀하게 새겨진 목척(신라척)은 길이 22cm로, 신라 유적에서는 처음 확인되는 희귀유물이다. 당대 궁궐이나 저택, 연못 등을 건축·조영할 때 설계 측량의 기초 도구로 쓰였으며, 원래 길이는 당나라 자(당척)의 치수인 29cm였을 것으로 조사단은 보고 있다.

연못 삼면 귀퉁이에 각각 세워진 얼개로 묻혀 있다 발견된 통일신라시대의 귀면와. 지금껏 출토된 귀면와들 가운데 손꼽히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출토 위치의 특성상 물을 다스리는 용왕이나 용신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귀면와의 도상적 실체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근거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못 삼면 귀퉁이에 각각 세워진 얼개로 묻혀 있다 발견된 통일신라시대의 귀면와. 지금껏 출토된 귀면와들 가운데 손꼽히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출토 위치의 특성상 물을 다스리는 용왕이나 용신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귀면와의 도상적 실체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근거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조사된 황복사터 유적 동쪽 건물터의 수혈 구덩이에서 나온 정체불명의 토제품. 기와 재질에 표면에는 물방울 모양의 뚫음 무늬와 원형 스탬프 문양을 전면에 둘렀다. 비슷한 유형의 토기 제품이 보고된 바 없어 용도를 전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유물이다.
이번에 조사된 황복사터 유적 동쪽 건물터의 수혈 구덩이에서 나온 정체불명의 토제품. 기와 재질에 표면에는 물방울 모양의 뚫음 무늬와 원형 스탬프 문양을 전면에 둘렀다. 비슷한 유형의 토기 제품이 보고된 바 없어 용도를 전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유물이다.

연못 삼면 귀퉁이에서 나온 귀면와는 목간, 목척과 더불어 관심이 집중된 유물이었다. 역대 출토된 귀면와들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조형미를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왔다. 박 원장은 “출토된 자리가 연못 귀퉁이였다는 점에서 기와에 새겨진 귀신 혹은 괴수 문양이 물을 다스리는 용신 혹은 용왕으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처음 나온 셈”이라며 “이번 발견으로 귀면와 도상을 둘러싼 연구가 진일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못터 동북쪽 건물터 수혈(구덩이)에서 나온 정체불명의 토제품도 앞으로 학계의 관심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자루 같은 모양에 물방울 모양의 뚫음 무늬와 스탬프를 찍듯 ‘O’무늬(어자문)를 전면에 두른 것이 특징인데, 물건의 형태 등이 유사한 사례가 전혀 없어 현재로썬 용도를 짐작할 수 없다.

이번 조사에서는 대형 연못터 외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 여러 유적이 잇따라 드러났다. 전 황복사터 북쪽 담장터를 찾아내 사역의 북쪽 경계를 처음 확인했다. 남북대로와 동서도로의 자취도 유적 안팎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통해 통일신라시대 경주 도심 외곽인 낭산 동쪽의 보문동 지역까지 신라 왕경의 방리제에 따른 도시계획이 이뤄졌음을 알게 됐다고 연구원 쪽은 밝혔다.

경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