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블랙 미러’에 비친 슬픈 아이러니, 첨단기술의 폐쇄성

등록 2020-06-05 20:42수정 2020-06-06 02:32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 4―블랙 뮤지엄>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IMDb)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IMDb)

아버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미국에 온 니시(러티샤 라이트)는 황량한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이상한 건물 하나를 발견한다. ‘롤로 헤인스의 블랙 뮤지엄’이라는 간판의 건물은 범죄와 관련된 물건들을 전시하는 곳이었다. 박물관의 소유주이자 관장인 롤로 헤인스(더글러스 호지)는 관람 시간이 아닌데도 니시에게 문을 열어주는 친절을 베푼다. 니시는 기묘한 전시품들에 큰 관심을 보이고, 그를 안내하던 롤로 헤인스는 물건들에 얽힌 “슬프고 역겨운 사연”들을 자세히 들려준다.

첨단기술 사회의 도래에 대한 섬뜩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는 에스에프(SF) 시리즈 <블랙 미러>는 반전을 거듭하는 특유의 정교한 플롯으로도 유명하다. <블랙 미러> 네번째 시즌의 ‘블랙 뮤지엄’은 그중에서도 최고의 에피소드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야기다. 플롯의 완성도도 뛰어나지만 ‘롤로 헤인스의 블랙 뮤지엄’이라는 박물관 자체가 ‘블랙 미러 유니버스’의 축소판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박물관의 주요 기념품은 시리즈의 지난 에피소드들에 등장했던 물건이고, 그 안에는 각 에피소드의 세계가 통째로 담겨 있다.

‘블랙 뮤지엄’ 에피소드부터가 <블랙 미러> 시리즈의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고 있다. 롤로 헤인스가 니시에게 들려주는 세 가지 사연은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이면서도 결국엔 하나로 연결되는 <블랙 미러>의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따른다. 첫째 사연은 한 의사의 공감 진단기에 관한 이야기다. 의사는 타인의 신체 감각을 똑같이 느끼는 공감 진단기를 신경에 이식하고 환자와 같은 고통을 감수하면서 많은 생명을 구하려 한다. 둘째는 작은 원숭이 인형에 얽힌 사연이다. 사연의 주인공인 남자는 식물인간이 된 아내를 잊지 못하고 아내의 의식을 다른 곳에 전송하기로 결심한다. 셋째는 한 사형수에 관한 기념품 이야기다. 유명 기상 캐스터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남겨질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디지털 자아에 대한 권리를 롤로 헤인스에게 양도한다.

세 개의 사연들은 주인공도 중심 소재도 다르지만, 전체적으로는 ‘갇힌 영혼’이라는 공통의 키워드를 지닌다. 발달한 기술이 막다른 골목에 있는 인간에게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갈 문을 열어주지만, 거기에 익숙해지고 나면 그 세계 역시 닫힌 곳이 되고 마는 슬픈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 폐쇄성이야말로 <블랙 미러>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의 핵심이며, 이를 잘 구현한 에피소드가 ‘블랙 뮤지엄’이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세번째 이야기다. 영화 <겟 아웃>을 연상시키는 사형수 이야기의 충격적인 반전과 인종차별 메시지는 현재 미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을 떠올리게 한다.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블랙 미러>는 그렇게 다시 한번 동시대의 이야기로 읽힌다. 티브이 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하이브, 민희진 오늘 고발…“‘뉴진스 계약 해지’ ‘빈껍데기 만들자’ 모의” 1.

하이브, 민희진 오늘 고발…“‘뉴진스 계약 해지’ ‘빈껍데기 만들자’ 모의”

‘범죄도시4’ 개봉 첫날 관객 82만…역대 오프닝 기록 4위 2.

‘범죄도시4’ 개봉 첫날 관객 82만…역대 오프닝 기록 4위

방시혁에 맞선 ‘민희진의 난’ 돌이킬 수 없다…뉴진스 앞날은? 3.

방시혁에 맞선 ‘민희진의 난’ 돌이킬 수 없다…뉴진스 앞날은?

동물이 사라진 세상, 인간이 고기가 돼 식탁에 [책&생각] 4.

동물이 사라진 세상, 인간이 고기가 돼 식탁에 [책&생각]

[인터뷰] 민희진 “난 저작권과 무관한 제작자…공식 깨고 싶은 사람” 5.

[인터뷰] 민희진 “난 저작권과 무관한 제작자…공식 깨고 싶은 사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