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동 마을에서 실태조사를 하면서 수습한 구석기시대의 뗀 석기.
대성동 마을. 마을회관에서 바라본 풍경으로 멀리 북한 기정동 마을의 대형 인공기가 보인다.
경기도 파주시에는 휴전선 비무장지대(DMZ) 안에서 유일하게 민간인이 농사를 짓고 살아온 동네가 있다. 숱한 언론 보도로 일반인에게도 친숙한 대성동 평화의 마을이다. 북한 선전 마을인 황해북도 판문군 기정동과 2km도 안 되는 거리에 이웃한 이 마을은 지난 60여년간 남북 대치 상황을 생생하게 증거해 온 장소였다. 1953년 휴전 이래 정착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 마을의 역사적 뿌리가 실제로는 수 만 년 전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최근 비무장지대 문화·자연유산 실태조사단을 꾸려 지난달 26~29일 대성동 마을을 처음 조사했으며, 그 결과 구석기시대의 뗀 석기를 비롯해 다양한 시대별 유물을 발견했다고 9일 발표했다.
대성동 마을 주변 지역의 구석기 유적 현황을 표시한 지도.
불과 1.8km 거리를 두고 남한 대성동 마을과 이웃한 북한 기정동 마을. 대성동 마을의 태극기 게양대와 기정동 마을의 인공기 게양대가 나란히 보인다. 김봉규 기자
발표된 자료에서, 우선 눈길을 쏠리는 유물은 마을 남쪽 구릉 일대에서 수습한 구석기시대 뗀석기 2점이다. 규암 재질로, 찌르개와 찍개류의 깨진 조각들로 추정된다. 찌르개는 사냥을 하거나 유기물에 구멍을 뚫을 때 썼던 도구다. 대개 날카로운 위 끝이 있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폭이 넓어지는 특징을 지닌다. 찍개는 돌의 가장자리 일부에 떼기를 가해 날을 세운 석기를 가리킨다.
이번에 확인된 찌르개는 전체 둘레 모양이 마름모꼴이며, 큰 몸돌에서 떼어낸 돌조각(격지)을 이용해 만들었다. 석기의 길이 축을 중심으로 양쪽 가장자리 날 부분을 잔손질해 날이 대칭을 이루도록 다듬은 흔적이 나타난다. 수습된 유물을 살펴본 한창균 연세대 교수는 “찌르개는 남한 지역에서도 출토된 사례가 드문 구석기 유물로 이번에 확인된 것은 모양새가 뚜렷하게 잘 남아있어 단연 주목된다”고 말했다. 구석기 유물들이 수습된 지역은 주변 일대보다 높은 구릉 꼭대기 쪽으로, 발굴조사를 벌여 토층을 파악하면 수습된 구석기들의 세부 연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연구소 쪽은 “규암 석재가 다수 확인돼 추가 조사를 하면, 구석기 유물들이 계속 나올 공산이 크다”고 밝혔다.
뗀석기 유물은 마을에서 가까운 개성공업지구 일대의 문화유적을 2004년 남북 당국이 공동조사할 당시에도 1점 발견됐다. 그 이듬해 북의 고고학술지 <조선고고연구>(2005년 2호)에 사진이 실리면서 남북 고고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학계는 남한 대성동 마을과 북한 기정동 마을에 대한 남북공동조사가 이뤄질 경우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근처 임진강 유역에서 적지 않은 구석기 유적이 조사됐고 두 마을은 임진강 지류인 사천을 중심으로 서로 마주 보며 이어지는 지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 다른 주요 유적은 대성동 마을 서쪽의 토축 성터인 태성(台城)이다. 군사분계선에서 400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점으로, 방문객을 위한 팔각정이 서는 등 후대 일부가 변형됐으나 전체적으로는 비교적 원형을 유지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동서 쪽으로 문터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서문터와 외곽 둘레에서는 고려~조선시대 토기·도자기·기와 조각들과 그보다 시기가 다소 이른 유물들까지 두루 확인됐다. 추가 발굴조사를 통해 정확한 축조 시기와 방법 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성터 북쪽에는 방어를 위해 옛 성곽 일부를 튀어나오게 한 치(雉)와 비슷한 얼개가 드러났다. 안전 문제로 접근이 어려워 레이저로 대상물 형상 등을 측정하는 지상라이다(LiDAR) 기기를 이용해 흔적을 파악했다고 한다.
조사단은 마을 주변 8곳을 매장 문화재가 묻혀있을 가능성이 큰 유물 산포지로 파악했다. 8곳의 드러난 지표면에 고려~조선 시대 기와·도자기 편 등이 흩어져 있었고,
접근이 어려운 구릉에서도 봉분 등이 드문드문 나타났다고 한다. 특히 구석기 유물이 발견된 마을 남쪽 구릉 일대에서는 고려 시대의 일휘문(日暉文:평평한 면에 원형 돌기 문양을 새겨넣은 것)이 있는 막새와 상감청자 조각·용머리 장식 조각을 비롯해 통일신라~조선 시대의 유물들이 다수 수습됐다. 남쪽 구릉의 경우 마을 일대에서 가장 높은 지대인 태성을 경계로 하는 중심지역이어서 중요한 위계의 건물이 자리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사실상 마을 대부분 지역에 매장 문화재가 분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연구소 쪽은 설명했다.
대성리 마을 부근의 능선에서 수습된 다양한 역사시대 유물들. 기왓조각과 전돌, 청자와 백자의 조각들이 보인다.
대성동은 1953년 정전협정이 이뤄진 뒤 비무장지대 남측 구역에서 주민이 거주할 수 있는 유일한 마을이 됐다. 1972년과 1980년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 종합개발계획에 의해 전형적인 농촌 모습과 전혀 다른 경관이 형성됐다.
사천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쪽 기정동 마을이 서쪽에 있어 두 마을이 서로 마주하는 형세를 띤다.
조사단이 파악한 대성동의 경관적 특징을 보면, 동네 주택은 모두 서쪽을 바라보고 서측면을 정면처럼 강조하는 디자인이며,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은 지형적 특색에 따라 층수를 높게 하는 주택 배치, 격자형의 택지 분할 등이 도드라졌다. 국기게양대
와 공회당(자유의 집) 등 다른 농촌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시설들이 자리 잡은 것도 특징이다. 공회당은 1959년 건립된 벽돌 건물로 재료의 특징을 조형적 요소로 활용한 디자인과 강재·목재를 삼각형 그물 모양으로 짜서 하중을 지탱하는 트러스 구조를 보여준다. 이런 요소를 통해 12×16m의 공간을 구성하는 등 당시로써는 구조와 시공, 디자인 면에서 주목할 만한 모더니즘 건축양식을 구현했다고 조사단쪽은 설명했다.
조사를 총괄한 연구소 연구기획과의 조은경 학예관은 “휴전 뒤 외부 정착민에 의해 형성된 대성동이 임진강변의 요지로서 선사시대부터 선조들의 생활 근거지였음이 새롭게 밝혀졌다는 의미가 크다”면서 “문화재청과 통일부의 협력사업으로 지난 달부터 추진된 비무장지대 실태조사의 시작 단계부터 괄목할 만한 성과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비무장 종합실태 조사사업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태봉 철원성, 고성 최동북단 감시초소(GP) 등과 대암산‧대우산 천연보호구역, 건봉산‧향로봉 천연보호구역 등 40여 개소를 대상으로 내년 5월까지 이어진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