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시네마 <그대 곁에 잠들다> 포스터. 네이버 제공
인기 최정상의 ‘천만 배우’ 이유신(이제훈)은 이상한 택배를 받은 뒤로 끔찍한 불면증에 시달린다. 그는 우연히 지역방송 라디오 디제이 윤하루(유인나)의 목소리를 듣고 잠이 든다. 이유신은 자신을 재울 수 있는 유일한 목소리의 소유자 윤하루를 고용하고, 윤하루는 매일 밤 이유신의 침대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준다. 그러면서 둘 사이에 묘한 감정이 싹튼다.
극장 개봉 영화가 아니다. 귀로 듣는 ‘오디오 시네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은 18일 <그대 곁에 잠들다> 등 세 편의 오디오 시네마를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그대 곁에 잠들다>는 동명의 웹소설이 원작이고, <두근두근두근거려> <남과 여>는 웹툰이 원작이다. 이제훈·유인나를 비롯해 찬열(엑소)·이세영, 김동욱·강소라 등 스타들이 목소리 출연을 했고, 방준석·달파란·김태성 등 영화음악 감독들이 연출을 맡았다. 아이디 ‘갓서른’은 84분 분량의 <그대 곁에 잠들다>를 듣고 “잠자리에 들면서 배경음(ASMR)처럼 켜놨는데, 이제훈·유인나 배우 목소리에 효과음까지! 진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아 집중해서 다 들어버렸다. 원작 웹소설도 정주행하려 한다”는 댓글을 남겼다.
오디오 시네마 <그대 곁에 잠들다>를 녹음하고 있는 배우 이제훈. 네이버 제공
웹소설이나 웹툰을 오디오 콘텐츠로 만드는 시도가 늘고 있다. 웹툰·웹소설 원작의 영화·드라마는 이전에도 많았지만, 최근 들어선 오디오 시네마, 오디오 드라마 등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귀로 들으면서 운전 등 다른 일을 하는 멀티태스킹이 쉬운데다, 인공지능(AI) 스피커가 800만대나 보급됐을 정도로 보편화하면서 오디오 콘텐츠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 오디오클립을 이끄는 이인희 책임리더는 “오디오 콘텐츠는 커넥티드 카, 인공지능 스피커 등 미래 플랫폼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고, 콘텐츠 활용도도 높아 성장 가능성 또한 무한하다”고 오디오 콘텐츠를 강화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오디오 시네마 <그대 곁에 잠들다>를 녹음하고 있는 배우 유인나. 네이버 제공
특히 웹소설을 오디오 드라마로 만든 사례가 많다. 네이버 오디오클립은 2018년부터 인기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디오 드라마를 서비스해왔다. 2018년에는 <신부가 필요해> <100일간의 에로스> <욕망하다> 세 편, 2019년에는 <내 사랑이 너만 원해> <끊을 수 없는 나쁜 짓> 두 편에 그쳤으나, 올해는 상반기에만 <휴거 1992> <아찔한 전남편> <오피스 누나 이야기> <썸남에서 겟남까지> <울어봐, 빌어도 좋고> 다섯 편으로 늘었다. <끊을 수 없는 나쁜 짓>은 누적 재생수 115만회에 이를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앞으로도 웹소설 <혼전계약서> 등이 오디오 드라마로 나올 예정이다.
오디오 시네마 <그대 곁에 잠들다>의 원작인 동명 웹소설 삽화. 네이버 제공
같은 웹소설 원작 오디오 콘텐츠라 해도 오디오 시네마와 오디오 드라마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차이가 있다. 이번에 새로 선보인 오디오 시네마 <그대 곁에 잠들다>는 2017년 96화로 연재된 플라비 작가의 웹소설이 원작이다. 방대한 내용을 84분 분량으로 줄이다 보니 크게 각색해 새로운 시나리오를 써야 했다. 반면 오디오 드라마는 보통 70~100화 분량으로 장기 연재한다. 유명 배우가 아니라 성우들이 웹소설을 거의 그대로 낭독하는데, 대부분 등장인물 시점의 독백과 대화로 이뤄져 있어 자연스럽게 드라마의 형태를 띤다.
이융희 청강문화산업대 교수(웹소설창작 전공)는 “일반 책 소설이 문어체를 쓴다면 웹소설은 구어체를 쓴다. 독자에게 마치 이야기를 해주는 것처럼 구술적 문체로 풀어나가고 인물들의 대사 비중을 높임으로써 현장감과 리듬감을 강조하는 게 웹소설의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성우들의 목소리를 입혀도 자연스럽다. 종이책의 문어체를 그대로 낭독하는 오디오북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웹소설 원작 오디오 드라마 <휴거 1992>. 네이버 제공
네이버 관계자는 “웹소설 원작 오디오 드라마는 기존 웹소설 팬들과 목소리 연기를 하는 성우의 팬들이 함께 즐기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웹소설을 먼저 접하고 오디오 드라마를 찾거나 거꾸로 오디오 드라마를 먼저 접하고 웹소설을 찾아보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는 얘기다.
다만 풀어야 할 과제도 있다. 웹소설로 보면 2분이면 끝날 내용이 오디오 드라마로는 최소 10분이 넘어가면서 특유의 속도감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오디오 시네마처럼 대대적으로 각색한 시나리오를 쓰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모든 작품을 그렇게 하기엔 비용과 품이 많이 든다. 이융희 교수는 “웹소설은 출퇴근 시간이나 짧은 휴식시간에 잠깐씩 읽기 좋은 콘텐츠이기 때문에 속도감이 중요하다”며 “웹소설 원작을 그대로 오디오로 옮기기보다는 속도감을 잃지 않도록 적절히 각색해야 오디오 드라마가 더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